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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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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Sep 14. 2018

당분간은 이렇게, 웃다 잠들도록


016. 잠옷

웃다웃다 눈물을 찍어내야 할 정도가 되면 “많이 웃어 둬. 한국 가면 웃을 일 없을테니까.”하고 말하곤 했는데 그게 반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먹고, 웃고, 떠들고, 다시 먹고, 마시고, 다시 웃는 일들 만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엄청 작은 것을 사기 위해 몇번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사람들이, 편의점은 (현금이 없는) 나만 빼고 앞다투며 쏘려고 하는 사랑스러운 3박 4일이 흘러갔다. 나는 밤마다 아이패드를 동원해 영수증을 정리했고 친구들은 나를 마마상이라고 불렀다. 하루가 다르게 돈이 없어져 점점 쪼그라드는 마마상. 그래도 가오가 있지, 또 금방 어금니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는 마마상. 친구들의 뒷모습을 찍는 일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친구들이 덧붙이는 훈수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는 마마상. 활짝 웃는 사진이 찍힐 때면 어느새 호빵맨이 되어있는 마마상.

아, 진짜 이제 이 정도면 충분히 먹은 거 같애.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끝에 끝까지 먹고 마신 뒤 그렇게 말해놓고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각자의 오니기리와 술과 작은 디저트를 먹었다. 먹다보니 안되겠어서 식당에 들어가 카레와 우동을 먹고 하이볼을 마시다 파이널 콜을 듣고서야 탑승구로 달려갔다. 비행기로 오르는 계단에서 친구가 말했다. 여행의 요약이네.

그렇다. 바로 그런 여행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밤,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친구 중 한명이 작년 생일에 도쿄에서 선물로 사다 준 무인양품 잠옷을 입고 잠들 것이다. 그때는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후쿠오카에 같이 갈 줄 몰랐지만, 우리가 아는 게 어딨어. 뭐 계속 일단은 이렇게, 당분간은. 그래도 같아 있을 때는 웃으면서.  

아주 오래, 깨지 않고 잘테다.



그림일기 365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 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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