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토마스와 리자몽
여행 마지막 날, 관대한 친구들이 가게를 찾아주고 같이 골라주기까지 하며 겨우 산 조카들 선물을 오늘 줬다. 6세 큰 조카에게는 포켓볼 노란색과 리자몽을(나와 친구는 망나뇽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6세에게 바로 정정당했다), 3세 작은 조카에게는 토마스 블록을. 역시 포켓몬의 고향다운 완성도에 큰 조카는 만족을 표했고, 작은 조카는 뭐 그럴 시간도 없이 블럭을 쌓기 시작했다. 각자 신나게 잘 놀던 형제는, 생색내기 좋아하는 고모가 이것이 베푸는 사람의 행복인가를 느끼려던 즈음 곧바로 장난감 세력 다툼을 시작했고, 눈물과 비난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드라마를 찍으며 순식간에 여행 중 16000보 정도를 걸었을 때의 노곤함을 선사해주었다. 이제 고모 갈 거야. 니네는 니네 집에 살아. 말하다 보니 뭔가 당연한 얘기 같은데..? 일단 모르겠고 애들은 관심 없는데 매몰차게 돌아서는 길, 큰 조카가 물었다.
“고모! 내일 어디 가요?”
“응. 내일 고모랑 못 놀아.”
“어디 가는데요?”
“어디 가.”
“아, 다른 나라요?”
다른 나라요? 정말 가고 싶다, 다른 나라.
뭐하고 사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잘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미국(영국, 독일, 호주, 등등) 부자고모가 되는 것만이 나의 소원이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손을 흔들고 돌아왔다. 조카는 늘 하는 인사를 했다. 고모, 안녕히 가세요. 차조심하세요. 사랑해요!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