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먼저 미래로 간다> : 여성과 넷플릭스
* 아래의 글은 엔터테인먼트 안내서 <여자들은 먼저 미래로 간다>에 실려있습니다.
나는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혼내곤 하는 가계부 어플을 사용하고 있다. 사정이 있어 택시를 많이 탄 주에는 “이럴 거면 차라리 차를 타세요”라고 조언하기도 하고, 커피를 많이 마셨다며 카페인 초과 알림을 보내기도 한다. 그 가계부 어플이 최근 내게 알려준 절약 조언은 바로 ‘안보는 TV 수신 해지하고 돈 아끼기’였다. TV나 셋톱박스가 없는 가구는 전기 요금에 포함되어있는 TV 수신료를 해지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 월에 2,500원씩 부과된 수신료 환급 신청도 가능하다. 환급 신청을 고민해볼 겸, 얼마나 오랫동안 TV 시청을 안 했는지 돌아보는 것은 꽤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시간에 맞춰 TV를 켜고 한국 방송을 보는 전통적 TV 시청을 한 일은 거의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일 때문이 아니라면 한국 방송을 다시보기로라도 시청하는 일은 드물었으며, 최근 1~2년 사이 무엇인가를 본다면, 그리고 보고 이야기한다면 그 콘텐츠의 대부분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안에 있었다. 무엇인가 보면서 웃고 싶든, 울고 싶든,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고 싶든 나는 넷플릭스를 택한다. 넷플릭스 안에서, 나는 안전하다고 느낀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를 볼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결국 한국 방송을 볼 때는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넷플릭스에서는 내가 굳이 그 안의 한국 콘텐츠 일부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무방비 상태에서 여성 혐오 개그나 자막을 접하거나 성범죄 혐의가 있는 연예인의 얼굴을 볼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갑자기 광고가 끼어들지도 않고 노골적인 PPL과 만날 확률도 낮다. 나는 넷플릭스에 가입한 후 여성들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보면서 한국 방송에서 본 적 없는 코미디에 대한 감을 익혔고, 인종과 페미니즘 이슈를 코미디로 소화하는 앨리 웡과 해나 개즈비를 만났다. 여성이 주인공인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을 봤고, 또 보고 있다. 이렇게 지난 몇 년 간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안에 누적되어 온 여성 서사의 시트콤, 드라마 시리즈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보는 경험은, 더더욱 TV를 켜지 않게 만들었다. 한국 방송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정말 단 한순간도 없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나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좋아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에도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일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언제나 궁금해하며 답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사건과 소동, 대화가 기본인 이 장르가 지금도 유효할 수 있을까? 두 성별 사이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내 취향을 따라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한국 방송을 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 이성애 로맨스를 다루고 있으며 많은 수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포함될 한국 미니시리즈 중에 작은 변화의 조짐이라도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무리 노력해도 떠올릴 수 없다. 남성 캐릭터의 폭력성과 여성의 대상화로 상징되는 K-로맨스 드라마는 이제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인데, 제작사들은 현실성을 위해서인지 이 장르에 성범죄에 연루된 남자 배우를 쓰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한국 영화는 어떤가? 2018년 282만 관객을 동원하며 오랜만에 유의미한 흥행을 거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 <너의 결혼식>을 떠올리면 한숨만 나온다. 이 퇴보에 가까운 로맨스 서사를 보면서도 오직 남자가 마지막에 자신의 과거를 반성한다는 이유로 점수를 줘야 하는 상황은 너무 참담하지 않은가.
반면 넷플릭스는 ‘21세기에 제대로 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일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힌트 정도는 줄 수 있는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10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과도 같은 작품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여성 주인공의 인종을 원작 그대로 동양인으로 유지하는 것만으로 이 장르가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자 주인공의 인종 때문에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다던 이 작품의 조회 수는 무려 8천만 이상을 기록했다.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 또한 흥미로운 로맨틱 코미디다. 유색인종 상사들이 등장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인종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두 주인공의 첫 만남에서부터 여자가 남자에게 그가 백인 남성으로서 받아왔을 혜택에 대해 쏘아붙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이 두 사람의 호흡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여자 주인공 하퍼(조이 도이치)와 그의 상사인 크리스틴(루시 리우)와의 관계와, 그 안에서 하퍼가 직업인이자 한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이다. 2018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된 이 두 작품은 같은 해에 북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헐리우드 상업영화 <빅식>과 함께 로맨틱 코미디로서 꽤 의미 있는 장르적 진전을 보여준다.
다른 장르 또한 마찬가지다. 2019년 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이름을 올린 <킹덤>의 김은희 작가는 한국 방송국이 아닌 넷플릭스를 플랫폼으로 선택한 이유로 “너무 잔인하기 때문에 기존 드라마 플랫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음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는 가능하다. 한국의 방송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장르물이나, 한국을 넘어서는 배경을 가진 작품,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한 작품의 경우, 넷플릭스를 플랫폼으로 삼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방송 시장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여성 서사의 작품이 그렇다. 원작자인 정세랑 작가가 직접 극본을 쓴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여성 감독인 이경미 감독의 연출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며 2020년 공개가 예정되어 있다. 지금 한국 여성이 장르 불문하고 여성에 대한 콘텐츠를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넷플릭스만큼 여성 서사를 많이 만날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시청자와 콘텐츠에 관련된 정확한 통계자료가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여성 서사 작품을 이전보다 많이, 혹은 다른 방송국이나 플랫폼에 비해 많이 제작하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방대한 콘텐츠의 양을 미루어 봤을 때 여성 서사 작품의 절대적인 양 또한 많다고 정리하는 정도가 타당할 것이다. 플랫폼으로서의 넷플릭스는 더 많은 시청자가 보고, 더 많은 충성 시청층이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 지속해서 구독자를 늘려가는 데 최우선의 목표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 간단한 시장 중심의 시각이 가진 장점은 적어도 넷플릭스 안에서는 더 많은 여성이 여성의 콘텐츠를 원하고 시청하면, 여성 관련 콘텐츠가 늘어나게 되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결정권자의 대부분이 중년 남성인 구조의 한국 방송국과 제작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하우스 오브 카드>가 #MeToo 고발 이후 케빈 스페이시 없이 새 시즌을 이어나간 점을 생각해본다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적어도 21세기에 존재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여성 시청자로서 여성 서사를 소비하고 그 소비가 또 다른 여성 서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경험하는 일은 당연히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여기까지 오면 넷플릭스와 한국 방송의 사이의 문제는 단순히 미국과 한국의 산업 규모의 차이로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 방송의 가장 큰 문제는 늙었다는 것이고, 방송 시스템은 그것을 방조하다 못해 장려해왔다. 세대별로 시청 행태가 급격히 변화하는 와중에도 시청률 집계 방식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상 방송 또한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 나가며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야 할 방송의 책무를 다하기는커녕, 주 시청층과 함께 노화하고 있다. 젊은 시청층을 잡겠다며 화제성만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로 존재하는 예능 방송의 클립은 본말을 전도시켜 예능 전체를 클립의 모음집처럼 만들고 있고, 지상파와 케이블 할 것 없이 프로그램의 콘셉트와 소재를 서로 베껴 차별화조차 되지 않는다. 이성 대상의 연애와 결혼을 무조건 장려하고,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으로 거리낌 없이 방송인들의 삶을 관음 한다. 지금 한국 방송의 젠더 감수성은 어떤가? 실제 범죄로 처벌받았거나 범죄 혐의가 있었던 출연자가 있는 프로그램을 제외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몇 개나 될까? 2019년 초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벌어진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일 빅뱅의 승리를 둘러싼 문제들을 생각해보자. 탑 아이돌이면서도 속물 사업가이기를 자처한 승리의 캐릭터와 서사를 기꺼이 끌어안고 예능적 재미 안으로 포섭해 온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 범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 방송은 화면 안팎 모두에서 안전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위험하고 상당히 많은 경우에 유해하다.
다시 넷플릭스 이야기로 돌아가자. <빨간 머리 앤>의 시즌3은 SNS를 통한 팬들의 홍보와 지지를 통해 제작이 성사됐고, 이 과정은 역시 관계자들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넷플릭스는 서비스의 기반인 웹을 통해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이를 측정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넷플릭스는 시청자들이 반응하는 콘텐츠에 돈을 쓴다. 그렇다면 여성 서사의 필요성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존재하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여성 관련 콘텐츠는 어디로 갈까? 그 콘텐츠를 볼 사람이 있는 곳, 다양한 여성 서사의 작품을 만나는 일을 이미 경험해본 시청자가 있는 플랫폼을 향할 것이다. 세상에!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가 또 만들어지고 그걸 또 볼 수 있다니! 정말 넷플릭스가 숫자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면, 어쩌면 이 플랫폼을 통해, 여성들은 숫자로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응원이 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경험은, 넷플릭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축적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넷플릭스를 켜고 여자들의 이야기를 보다가 잠들 것이다. 기다리는 <원데이 앳 어 타임>이 없는 것은 조금 쓸쓸하지만, 넷플릭스를 해지할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없는 TV는 끌 일도 없으므로 수신료 환급 신청을 할지 말지는 내일 생각하겠다.
글. 윤이나
위 글이 실려있는 헤이메이트의 포켓북 시리즈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