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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Oct 25. 2019

함께 더 제대로 보기 위해

<여자들은 같이 미래로 간다> 프롤로그

https://www.tumblbug.com/womentogether

이 글은 헤이메이트의 두 번째 포켓북 <여자들은 같이 미래로 간다>의 프롤로그입니다. 책이 궁금한 분들은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을 보여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가해자의 목소리로 그의 사정을 들을 필요가 없으며, 가해자의 언어를 이미지로 옮기면서까지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 어쩌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반면 책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는 가해자의 심리 변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서술합니다. 거기, 드라마에서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우리가 알고 다시 고민해보아야 할 하나 있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이 왜곡된 여성상을 갖게 된 이유로 미디어 콘텐츠를 지목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섯 살이었을 때 헐벗은 의상을 입고 결박되어있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를 보고 여성을 지배하고 노예로 삼고 공포와 굴욕을 주고 싶은 욕망에 눈 떴다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접하는 모든 영상이 이러한 방식으로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TV와 영화, 유튜브와 광고를 포함해 수도 없이 쏟아지는 영상들, 특히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이 지금도 그걸 접하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생각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성인에게도 마찬가지겠지요. 


    엔터테인먼트 비평서인 <여자들은 먼저 미래로 간다>를 출간한 후, 여러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성 서사의 기준에 관한 질문도 있었고, 더 좋은 여성 서사를 만들어갈 방법이 궁금하다는 질문도 있었으며, 평가하는 관점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 질문 안에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더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면 더욱더 그래야만 합니다. ‘나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면 역시 더더욱 그 안에서 질문하고, 비판하고, 제대로 보아야만 합니다. 제대로 보고 싶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가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바라고, 그렇게 바뀌고 싶다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먼저 가면서 같이 가고 있는 여성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그 질문에 대답해보기로 했습니다. <여자들은 같이 미래로 간다>는 스스로 쓴 각자의 답이면서, 함께 찾아가고 있는 답이기도 합니다.


    쏟아지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더 좋은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만드는 사람들은 더 나은 영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할리우드의 성 불균형을 연구하고 수치화하며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연구소를 설립한 배우 지나 데이비스는 “여성 국회의원을 당장 국회의 50%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할 수 있지만, TV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미디어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바뀔 수 있습니다. 현실의 차별을 없앨 수는 없지만 차별하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어 갈 수는 있고, 여성을 인간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보고 또 만드는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헤이메이트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대해서 읽고, 쓰고, 말하면서 그 길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워크북 <여자들은 같이 미래로 간다>를 통해 각자가 직접 고민하고 생각하고 찾고 또 읽은 내용을 기록해보며, 여성의 이야기를 보는 나만의 시선과 기준을 찾아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성 서사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고 제대로 보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가볍고 든든한 지도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길을 잃지 않도록, 같이 가면 좋겠습니다. 


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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