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효진,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나는 지금 이 책의 저자인 황효진 작가가 나에게 어제 B마트 배달로 보내준 고메 크리스피 핫도그를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핫도그에 대한 대가도, 원래 목적이었던 소화제에 대한 대가도 아님을 밝혀둔다. 어찌 됐건 황효진이라는 개인은 (순전히 돈냉돈까스+냉면을 너무 급하게 많이 먹어) 체한 친구에게 소화제를 보내면서 체한 게 나으면 먹을 핫도그와 '매실이 소화에 좋다'는 느낌만 주는 음료인 초록매실을 함께 보내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밝혀둔다.
스트레스가 잠이 들지 않는 증상으로 나타났던 지지난 마감 때는 잠드는 시간에 대한 압박이 심했는데, 온갖 염증과 두드러기에 시달렸던 지난 마감에 이어, 이번에는 일어나는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고질적 저혈압과 이례적 장마의 콜라보일 텐데, 거기에 지지부진한 마감이 더해지자 '침대에서 일어나기'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됐다. 수면지연은 내 지난 삶의 대부분 존재해 온 문제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한도 끝도 없이 늦어지는 기상 시간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 텐가'가 머릿속에서 신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일에는 매번 새삼스럽다. 수면 지연 증상은 다음날(자정이 지났으므로 실은 언제나 당일) 일찍(오전에) 일어나야 할 때 더 심해지는데, 이런 날에는 보통 알람을 네 개 정도 맞추고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1~3시간 정도 자고 일을 마친 뒤, 다시 12시간 이상을 자는 것으로 일상의 잘못된 균형을 영원히 맞추곤 한다.
지난 월요일도 비슷했다. [시스터후드] 녹음이 3시였으므로, 대충 1시에만 일어나도 준비해서 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이쯤에서 '1시 기상이 미션이라니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다.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꽃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효진 씨의 새 책이 나오는 날이었고, 좋은 날에는 '아름다움 만이 쓸모인 것'이 필요하다. 개봉이라든가 N만 관객 달성과 같은 축하가 필요한 게스트가 [시스터후드]에 출연할 때 꽃을 사곤 했던 그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려면 거기서부터 녹음실까지는 걸어가야 하고, 30분 혹은 그 이상의 여유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시간이 필요했고, 잠은 안 왔다. 일찌감치 누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잠이 안 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되게도 아홉 시 반쯤 사실상 기절을 한 나는, 한시 반에 울린 (무의식 중에 마지노선으로 맞춰놓은) 다섯 번째 알람을 듣고서야 눈을 떴고 30분의 여유 시간은커녕, 뭔가를 집어먹을 30분 조차 잃어버린 채로 세수만 겨우 하고 아무거나 걸쳐 입은 채로 뛰쳐나갔다. 정말 다행히 비가 좀 덜 내렸고, 마을버스는 딱 맞춰 도착해주었다.
그런데 꽃집이 닫혀있었다. 그 순간 띠링, 애플워치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택시 타고 녹음실 가는데 이나 님 걸어가는 거 봤어요' 효진 씨였다. 젠장. 서프라이즈도 틀렸다. 눈을 반쯤 뜬 채로(나는 일어났을 때 정말 심하게 붓는 타입이다) 잠시 서서 꽃집을 살펴보니 닫은 건 아니었고 곧 돌아온다고 되어있었다. 돌아온다고요? 언제요? 나는 성격이 급하므로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꽃집 사장님은 '바로 앞이에요'라고 말해주었다. 바로 앞이라니, 내가 바로 앞인데. 또 급한 성격으로 어딘지 따져 묻고싶었지만 내가 미친 손님이 되지 않을 수 있게 정말 바로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사장님이 오고 있었다. 다시 애플워치를 보니, 시간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녹음실까지 경보로 가면 돼.
그런데 (이 접속사를 또 쓰게 될지 몰랐지만) 꽃이 없었다. 수입꽃 시장은 화요일 새벽에 열고, 그래서 월요일에는 남은 꽃이 거의 없다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망연자실 서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효진 씨의 새 책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의 표지 색 배합으로 꽃다발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월요일에는 꽃집에 예쁜 꽃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살면서 도움이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어찌 됐건 시간도 꽃도 없었지만, 나는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책 표지를 사장님에게 보여주었다. 사장님이 한 부분을 확대하며 말했다. "이건 흰색이네요." 나는 반박했다. "하늘색인데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흰색이었다. 나는 디자이너가 되긴 글렀다.) "이건 코랄" "아뇨 오렌지색인데요" (이건 내가 맞았다. 쨍한 형광 주황이다) 그 와중에 색에 대한 합의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오렌지가 아주 약간 도는 장미와, 하늘색이 들어간 이름 모를 꽃, 그리고 "그냥... 초록이 많이 보이게 해 주세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책 표지 배경의 초록만이 희망이었다.
다행히도 나머지 20분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경보로 녹음실을 향해 간 나는, 도착해있던 있던 효진 씨에게 꽃을 선물했다. 책은 인터넷 서점에 공개가 된 상황이었지만 조금 기다려야 배송이 될 거라고 했다. 홍보는 동네 서점에 들어가는 금요일부터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래서 오늘 금요일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의미부여와 이벤트를 좋아하지만 치밀하지는 않다. 홍보에 적합하지 않달까. 그냥 책을 오늘 다 읽었기 때문에 바로 쓰는 것이다. 성격이 급하다고 말했던가?
실은 원래 책을 읽으면서는 이 책의 세 번째 문장에 등장한 '비 오는 날 하는 야외 수영'에 대해, 내가 오후 두 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오후 세시 반에 여의도 한강 수영장에 도착해 수영을 하다가 폭우와 마주했던 날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날 외에도 두 번 정도 더, 비 오는 날 같이 야외 수영을 했다. 지금은 폐허가 된 망원지구 한강 수영장이 여름이면 오픈하고, 사람들이 복닥복닥 모여 수영을 하고 라면을 먹는 일이 가능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못하게 되어버리는 바람에 갑자기 까마득해진 그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황효진 작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책을 쓰고, 팟캐스트를 만들고, 뉴스레터를 만들고, 잡지와 콘텐츠를 만드는 법에 대해서 강연과 워크숍을 하고,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인 빌라 선샤인에서 콘텐츠를 기획했다. 그중 일부를 함께 했고, 함께 하고 있다. 대체로 과정이 아닌 순간을 기록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무엇이 될지 안 될지 모를 일을 붙잡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모든 과정을 제대로 정리하고 마무리 지은 "무척 큰 힘이 있는 책"으로 완성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는 일은 흥미롭고 그 이상으로 경이롭다. 자신의 일에 대해 늘 '왜?'라고 질문하고, 기록하고, 맥락을 살핀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책이 중쇄를 거듭해서 찍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선명하게 바라는 바를 쓰려고 한다. 정말로 이 책이 잘 팔려서, 숫자로서의 인세가 작가 개인의 생활에 실제적인 보탬이 되길, 그가 '또다른 기회'만을 기대하며 피로해지지 않길 바란다. 출간을 요란하게 축하한 게 무색하게 책에 대해 생각하면 눈물만 나는 단행본을 쓴 사람으로서, 친구에게는 같은 슬픔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다음에 또 이것저것 축하하는 날에는 흰색과 오렌지 색의 꽃을 사야 하므로, 그 날은 월요일이 아니길, 제발 내가 오전에 일어나게 되기를.
갑자기 나만의 코멘터리 북
작고 얇더라도 최소한 책처럼 보이는 책을 만들려면 원고지 300매(약 6만 자) 분량의 글이 필요한데, 저와 동료는 이미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이니 절반씩 나누어 쓴다면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p63)
: 헤이메이트의 첫 책 <둘이 같이 프리랜서> 이야기.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충분히 감당은 못했다. 다시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 이런 식으로 마감을 잡아서 꼭 자신을 저주하는 시간이 생기는데, 같이 쓰는 책이라 어찌저찌 해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서 팟캐스트 채널을 운영한다는 건, 여기서 쌓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또 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언제까지나 '또 다른 기회'만을 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약간 피로해지지만, 일단은 이런 상태입니다. / 팟캐스트를 만드는 일것만으로 유의미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을까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저에게도 알려 주세요. (pp90-91)
: 저도 알려주세요. 제발요.
콘텐츠 만드는 과정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동료가 있다는 건, 단언하건대 굉장히 멋진 일입니다.
: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일입니다.
황효진,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읽고 보고 듣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