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 님. 진료비는 14,600원입니다.”
카드를 건넸고 결제 후 영수증과 함께 돌려받았다. ‘약을 주겠지’하면서 서 있는 동안 생각했다. 요새 편의점이랑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고객이 직접 카드를 리더기에 꽂는데, 병원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나는 지금 ‘이것이 나의 신용입니다, 여기 있습니다’하고 건넨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카드를 건네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호주 갔을 때 직접 해야 하는 상황에 적응을 못했었지. 그때는 왜 이런 것까지 나에게 하라고 하는 거지 라는 느낌이었지만… 정도까지 생각했을 때, 시선이 느껴졌다.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 약을 여기서 받는 게 아닌가요? 처방전이 있나요?”
간호사 선생님의 눈이 내 바로 앞 접수대로 옮겨졌다. 그 눈을 따라갔다. 약통이 거기 있었다. 아마도 아까, ‘편의점이랑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하고 떠올렸던 때부터.
성인 ADHD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그 증상들을 접했을 때부터 나는 내가 ADHD가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진단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ADHD인 것이 내가 현재형으로 직면해야 하는 주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늘 ‘ADHD일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뭐?’라는 느낌이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현대인 대부분이 겪는 어려움이 좀 크기를 키워 찾아온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는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부분이 언제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일단 지금 문제만 아니면 되었다.
나는 지금 당장만 보고 지금의 기분에 따라 대부분의 결정을 내렸고 이런 현재의 내가 얼마 지나지 않은 미래의 나를 무척 고통스럽게 만들곤 했지만, 어떻게든 넘어가서 다시 현재가 되고 나면 금세 괜찮아졌다. 그래서 나는 하루 전까지 일에 치여 과거의 나를 원망했음을 까먹고 금세 무언가를 다시 했고, 누가 뭘 하자고 하면 신나서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을 냈으며 미래의 내가 욕할 거리를 싸들고 와 뿌듯하게 쌓아두었다. 그리고 마감일이 다가오면 다시는 하지 않기로 맹세와 다짐을 했으며 과거의 나는 누구였는지를 생각하고 걔를 저주하면서 어떻게든 그걸 했다. (해냈다고 썼다가 했다고 고쳤다. 해냈다-맡은 일이나 닥친 일을 능히 쳐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다 다음 날이 되거나 길다면 한 주쯤 지나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또 까먹었다. 그 와중에 새로운 일을 좋아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새로운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대체로 좋아했고, 일에서도 그랬기 때문에 새로운 거면 하겠다고 ‘저요 저요’ 손을 들어서 일을 또 늘려둔 다음, 잠시 까먹고 있다가 마감일이 다가오면 남이 받아둔 일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러면 또 울거나 나 자신을 욕하거나 체념하거나 하며 일을 했고, 끝내고 나면 과정은 까맣게 잊고 끝냈다는 사실만 기억했다.
문제는 드라마를 쓰게 되면서 벌어졌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는 8부작이다. 나는 2부작 단막극 분량이었던 데뷔작을 쓸 때도 드라마 작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했는데, 단막극과 미니시리즈는 아예 다른 장르의 글이었다. 그러니까 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는 이야기다. 쓰려고 보니까 그랬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계약금을 받았고, 그렇다는 건 일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었다. 프리랜서가 일을 시작하는 시점은 입금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끝나는 시점이 없었다. 물론 계약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모든 것이 미정인 작업이다. 물론 데뷔작 제목을 알려줘 봤자 아무도 모르는 신인 작가라는 것 때문에 더욱 그렇겠지만, 정해진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마감일조차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드라마는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지금의 나를 믿고 아주 꾸준히 작업하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고 만들어가는, 일과 삶과 이야기를 만드는 순서를 잘 아는 사람에게 맞는 장르였다. 마음에 쏙 드는 창문틀을 들고 와서는 “이 창문이 어울리는 집을 만들 거예요!”라고 큰 소리를 치고 대강의 구상도만 그린 다음에 뿌듯한 얼굴로 내놓고선, 누군가 훨씬 자세한 설계도가 필요하다고 이건 시작조차 아니라고 말하면 “정말요?”라고 되묻는 나와는 맞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해야했다. 무엇보다 끝내고 싶었다. 이걸 끝내지 않고서 맞이하는 다음은 내가 맞이하고 싶은 다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있었다.
드라마가 문제가 된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드라마만 쓸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형편에서든, 나라는 인간이 가진 성격과 기질의 형편에서든 나는 단 하나의 이야기만을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러기를 요구했다. 드라마에만 온 시간을 다 바치지 않으면 진도를 나가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걸 깨달았으면 다른 일들을 좀 접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계약금이 전세금으로 깔려버리는 바람에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하지만 생활비가 있었다고 해서 내가 드라마만 쓸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을 것만 같은 것이다. 난 이것도 쓰고 저것도 만들고 이거에 대해서도 떠들고 저거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어떻게든 됐던 게, 올해 봄까지의 일이다. 2020년 2월에 대만에 다녀온 뒤 일 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매일매일 아주 잠깐이라도 일을 했다. 많이 할 때는 30시간도 했다.(이미 하루가 아니다) 그 사이에 쓴 책이 나왔고(나도 믿기지 않는다) 엄마는 전화를 할 때마다 그래도 이런 시기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올해 근로 장려금을 받는다. 수입이 너무 적기 때문에 노동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나라에서 노동을 더 하라는 장려 의미에서 주는 돈이다. 실제로 2020년 수입은 생활비조차 커버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일을 해도 세상과 통장은 내가 노동을 한다는 걸 몰랐다. 나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포함해 삶의 무엇인가가 분명히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이러다 내가 쓰러지거나 병을 얻어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러니까 분연히 떨쳐 일어나… 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마감을 했다. 이번 마감의 목표는 하나였다. 마감이 끝나면 병원에 가자. 가서 물어보자. 제가 ADHD가 맞나요?
현재형으로 직면한 주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ADHD가 왜 여기서 갑자기 등장하느냐 하면, 원래도 심각했던 집중력 부족의 문제가 거의 폭발 중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을 깨닫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냥 보통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남들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증거를 여기저기에서 주울 수 있었다. 나는 진행하는 팟캐스트의 대본을 반나절에 걸려 쓰는데, 동료는 한 시간이면 썼다. 두 대본의 퀄리티 차이는 전혀 없다. 유튜브 영상 같은 건 15초도 재생을 못했다. 영화관에 갇히지 않는 한, 아주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겨우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원래 멀티가 불가능한 인간인데 그나마 하나의 일도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을 했고, 그러다 보면 여섯 가지 일의 도중에 있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곤 했다.
책 <젊은 ADHD의 슬픔>을 읽으면서 알게 된 ADHD 자체 검사를 해본 것, 정확히는 그것보다는 그 점수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된 것도 ADHD를 눈앞으로 가져오게 된 이유였다. 20점이 넘으면 의심군인데 나는 41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때까지는 심각성을 몰랐다. <젊은 ADHD의 슬픔>의 저자인 정지음 작가가 61점이라고 책에 밝혀두었기 때문에, 나는 내 맘대로 41점이면 중간 점수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말에 검사를 한 친구들 중 나보다 점수가 높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대체로 10점 대였고, 높아도 20점대 초반이었다. 거기서 1차 충격을 받았다. 2차로 충격을 받은 것은 친구 한 명이 4점이 나왔기 때문이다. 4점이라고? 현대인이 4점이 나올 수가 있나? 그런데 그 친구는 우리 둘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나와 정반대의 기질과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는 친구였다. 4점과 41점 사이에서 나는 공허해졌다. 어떻게 봐도, 41점은 중간 점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자체 판단은 금물입니다. 병원을 가세요. 저도 갔잖아요)
드라마 대본을 쓰는 구간에 <젊은 ADHD의 슬픔>을 읽었다. 이 구간일 때는 꼭 해야 하는 다른 일(연재, 팟캐스트)을 제외한 일은 받지도 하지도 않고 일과 운동만 한다. 약속을 잡지도 않고 놀지도 않으며,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책이나 영화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젊은 ADHD의 슬픔>을 읽은 건, 궁금했기 때문이다. ADHD에 대해서 내가 건조하게 알고 있는 정보 외에, ADHD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왜 진단을 받게 되었는지 혹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약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또 어떻게 바뀌는지가 궁금했다. 영원한 마감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자 언제나 남아있는 고통에 매일이 너무 괴로웠다. 나는 내가 고통스러울 때 보통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는 고통스럽고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데(2년 전 상담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건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작가로 살아갈 수 없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뭔가를 만들어냈다면 그건 다 운이었고, 이제 모두 끝났으며, 내가 붙들고 있는 이야기를 끝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정말 10초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다. 맥북 에어의 터치패드로 네 개의 한글파일과 여섯 개의 카톡창, 10개의 인터넷 브라우저 탭을 쉴 새 없이 오갔다. 그러다가 대사나 설정이 떠올랐는데 그게 당장 대본에 쓸만한 게 아니면 포스트잇에 적어서 대형 독서대에 일단 아무렇게나 붙였다. 대사 한 줄 지문 하나를 쓴 뒤에 갑자기 떠오른 일들, 예를 들자면 집안일이라든가 식물 물 주기라든가 발톱 깎기라든가 샴푸 소분이라든가 얼음 얼리기 같은 걸 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10초씩 무언가를 보는 걸 반복했다. 어디서든 1분 이상 머무르면 그게 최대치의 집중이었다. 정신을 차리면 헛웃음이 나왔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래도 15년을 이렇게 일해온 사람의, 경험에 기반한 아주 강렬하고도 적중률이 높은 예감이었다. 이 일을 끝내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어쩌면 근본적일 수도 있는 문제와 만나야 했다. ADHD가 늘어선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모든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드디어 하게 된 것이다.
7월의 마감이 끝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골라 둔 두 병원 중 한 병원은 초진 예약이 밀려 8월 중순이나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하나는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기가 길 수는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오라고 했다. 이런 경우 무조건 빠른 걸 택하기 때문에 두 번째 병원으로 갔다. 앞서서 오신 분들이 진료를 받고 나올 때 문이 열리면 선생님이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 목소리 톤이 밝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마음에 들어 하는 편이라서 객관적으로 신뢰하기는 좀 그렇지만, 일단은 좋은 선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진료실에서는 집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ADHD가 의심된다는 말을 한 후에, 대체로 어릴 때 이야기를 했다. ADHD는 어릴 때 발현되기 때문에 지금 아무리 집중력이나 그 외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해도, 어린 시절에 관련한 문제를 겪지 않았으면 다른 질병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냥 증거가 발에 차였다. 나는 여자아이들이 조용한 ADHD로 발현되는 양상과는 달랐다. 과잉행동과 충동성 쪽, 보통 남자아이들이 발현되는 방향의 사건들이 많았다.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큰 소리를 내고 그러다가 다치고 맞고 혼나는 쪽이었다.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를 중심으로 몇 가지 사건을 이야기하고 나서, 선생님이 두어 질문을 했다. 별로 무거운 질문이 아니라 가볍게 답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듣고 있었던 선생님이 입을 뗐다.
“윤이나 님은 약을 드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약은 저용량이고…”
네? 곧바로 약이요? 왜요? 검사를 하지 않나요? 바로 확진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집중력 관련한 검사도 있고, 뇌파 검사도 있다고 했던 것 같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체검사 같은 거와는 차별화되는 200문항 정도에 답변해야하는 검사지 같은 게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나는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저 말을 다 하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약을 먹어야 한다면, 제가 ADHD가 맞다는 건가요?”
의사 선생님은 뭐랄까, 쾌활한 느낌의 사람이었다. 웃는 눈으로 나를 한 번 보고는 살짝 하지만 명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 분들 중에 맞나 아닌가 아리까리한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에 검사를 해요. 윤이나 님은… 확실한 것 같네요.”
그렇게 나는 15분 정도의 상담으로 ADHD 의심군에서, ADHD인이 되어 진료실을 나오게 된 것이다. 보름 치의 약을 먹어본 뒤에 만나자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경쾌했으며, 당연히 세상은 그대로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도 그대로였다. ADHD 확진을 받았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진다거나,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거나, 모든 게 설명이 된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지루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ADHD일 수 있다는 사실에 이미 약간 질려있었다. 드라마 마감 때면 일종의 회피 기제로 마감을 제외한 어떤 것(루미큐브부터 한국 힙합의 역사나 수영까지 매번 바뀐다)에 짧게 중독되는 패턴이 있는데, 그게 이번에는 ADHD였던 것이다. <젊은 ADHD의 슬픔>과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를 순식간에 읽은 뒤(과몰입한 것에만 집중이 가능하다) 이미 ADHD와 확진과 그 전후 상황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을 했고, 과몰입의 시간은 지나버린 상황이었다. 너무 뒤늦게 받아든 확진일 뿐, 다 아는 얘기 같았다. 나 자신보다는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야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도만 궁금했다.
가족에게는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아서 일단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한 친구가 커피랑 케이크부터 먹고 생각하라며 스타벅스 쿠폰을 보내주었다.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 카페인 당분을 투입하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랐다. 내 삶에 벌어진 어떤 사건이, 나의 성격과 기질이, 그로 인해 내가 받은 일상적인 고통이나 나의 한계가 ADHD로 설명이 된다는 사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ADHD일 거라면 조금 더 극적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랐다. 그래야 재미라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도 재미있길 바라도 되나? 내가 그래서 ADHD인 것인가? 앞으로는 모든 행동을 할 때 ‘나는 ADHD니까’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건 정말 별론데. 확인이 되자마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이렇게 늦게 알게 됐다는 걸 나는 납득할 수 없다고 격렬하게 저항하고 싶어 졌다.
머릿속의 저항을 멈춘 건 배가 고팠고, 친구들이 웃겼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또 각자 반응하고 싶은 대로 반응했다. 다들 성인도 ADHD일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야 너 원래 그렇잖아’ ‘약을 먹어야 돼?’ 같은 식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다시 ‘내가 ADHD인데 그게 뭐?’ 상태가 되었다. 약이 잘 들어서 집중도가 올라가고 부작용이 없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ADHD인 것에 아무 동요가 없다는 게 좋았다. 어차피 이 파도는 내가 탈 것이었다.
근처에서 일을 마치고 우리 동네에 들른 친구와 밥을 먹고 지하철 역까지 잠시 걷기로 했다. 해가 기울어가는 데 맞추어 내려가기를 거부한 기온은 36도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친구는 양산을 반쯤 내밀어 내 머리를 가려주었다. 친구는 집으로, 나는 수영장으로 가야 했다.
“있잖아. ADHD한테는 유산소가 진짜 좋대. 나 수영하는 거 완전 잘하는 거 같아.”
친구가 말했다.
“근력 운동은 안 할 거야? 너한테 ADHD가 있는 거지, 니가 ADHD는 아니잖아. 근력 운동도 해.”
“하긴 그건 맞아. 천재네.”
신호가 바뀌었고, 우리는 같이 웃다 말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래, 이게 내가 바라는 이야기였어. 젊지도 않은 내가 ADHD여도 기쁜 일들.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기 위해 내발로 병원에 찾아갔고, 그곳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 받아 들고 나왔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며, 나는 여기서 웃고 있다는 것. 웃고 있으면 초록불이 켜지고, 우리는 각자 가야 할 방향으로 간다는 것. 나는 수많은 문장을 악착같이 ‘나는’으로 시작하는 인간이지만, 그게 ‘우리는’으로 바뀌는 순간을 언제나 사랑하고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근력운동도 할 거라고.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