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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Mar 03. 2022

잘 먹고 잘 살아보겠습니다.


읽거나 본 이후, 절대 떨어질 수 없게 되는 문장이 있다. "봄이 왔다." 단 네 글자면 나는 바로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릴 수 있다. 강변을 걷는 사이 봄이 찾아왔고, 봄이 찾아온 세상이 아름답고, 찾아온 봄이 여전히 기쁘며, 그 사실을 견딜 수 없는 올리브. "잘 산다." 이 문장은 나를 황정은의 <연년세세>로 데려간다. 반사적으로 묻게 된다. "잘 산다는 게 대체 뭘까?"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은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황정은, '무명', <연년세세>


잘 모르면서.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따라오는 질문. 잘 사는 게 뭐야? 너 그게 뭔지 알아? 이순일도 모르는데, 너는 알고 있어?


이랑의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 수상소감을 보았다. 보고 나서 유튜브 검색창에 이렇게 쳤다. ''. 스페이스를 누르면 바로 검색 기록  위에 ' 듣고 있어요' 뜬다. 그걸 누른다.  번째, 혹은  번째에 떠있는 3 전에 올라온 영상을 재생한다. 시작된다. "이게 어떤 쓰임이 있을지 의미가 있을지 모르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V1LEZk3nCKQ


이 뮤직비디오의 댓글창에는 어디서, 어떻게 잘 듣고 있는지, 저마다의 사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것도 하나의 긴 댓글이 될 수 있겠다. 이 노래를 친구에게 추천받고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누가 읽을지 알 수 없는 책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 책이 어떤 쓰임이 있을지, 의미가 있을지 당연히 몰랐다. 인생이 재미있는 건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때도 지금도 생각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내가 모르는 미래에 어떤 사람들이 내가 만든 걸 보고 읽은 후 "즐거웠다 하고 기뻤다 하고 눈물 흘렸다" 할 줄 알았을 것이다. 삶이 기대대로 흘러간 적이 없으므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쓰는 재미가 점차 줄어들어갔지만, 사는 건 재미있었기 때문에 계속 살았다. 살면서 종종 이 노래를 들었다. 듣다가 가끔 울기도 했는데 눈물이 터지는 부분은 제각각이었다. 아마도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려주고 싶어요"에서 가장 많이 울었을 테지만, 그걸 셌겠냐.


그런데 이 노래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다른 부분이다. 나는 "바다의 왕이 큰 병이 나 고칠 방법이 없대요, 내 친구 해미는 얼마 전에 복강경 수술을 받았고..."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시간에 어떤 순간에 왜 이 노래를" 듣고 싶냐고 물었던 이랑은, 갑자기 별주부전과 친구들의 사연이 뒤섞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래를 듣던 나는 갑자기 설화의 청자가 된다. '유리의 강아지 담이의 암이 완치가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다가 울고 싶은 마음도 까먹고, "누나 저 군대 가기 전까지 재밌는 거 많이 하고 싶어요"라는 토 선생의 꾀에 웃기까지 한다. 미리 말을 해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간을 가져오는 건데.


어제 이 노래를 듣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음악이 끊기고 "여보세요" 대신 "어디냐"가 들린다. 어디겠어, 집이지. 엄마는 바로 하고싶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치가 빠지고 있는 둘째 조카는 앞니 네 개 중에 2번 4번 두 개가 없고, 3번은 당장 빠지게 생겼다. "할머니가 빼줄 수 있냐는 거야. 못한다고 했지. 아이고, 나는 그런 거 못한다." 무서워하면 이빨 요정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아이고, 나는 그런 거 모른다. 모르면 뭐 어때. 의사가 빼주겠지. 상상의 세계로 방어막을 만들어 두려움을 막아주는 일 같은 건 아이고 모르는 채로, 엄마는 나를 길렀다. 이빨 요정도, 이를 물어갈 까치도, 유치를 보관할 작은 상자도 없는 세계에서도, 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며칠 전에 확진된 친구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가 답이 없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있다는 얘기다. 엄마, 듣고 있어? 그건 그건데, 이제 줌 수업을 준비해야겠다고 한다. 지난달에 은퇴 권사가 됐으나 힘이 닿는 한 봉사를 멈추지 않을 박 권사님은, 요새 줌으로 기독교와 봉사와 부흥과 아무튼 무언가에 대해 강연을 듣고 있다. 지난주의 오티 때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아주 상심을 했었다마는, 이제는 소리도 잘 들리고 손들기도 잘한다. "그런데 마이크에 그 빗금은 뭐냐?" 그 빗금은 마이크가 꺼졌다는 뜻이야. 거기서부터 카메라에 빗금이 가있었던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곤, 자기 얼굴이 화면에 뜨지 않은 이유까지 유추해낸 엄마는 말한다. "너 때문에 아주 중한 걸 배웠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제 강연을 들어야 하니 끊자. 글 쓴다고 얼마나 힘들겠느냐마는 부디, "잘 먹고 잘 살아라."


노래는 다시 시작된다. "누구는 목숨을 찾고 누구는 사랑을 좇는 거겠죠. 잘 알고 있어요. 듣고 있어요. 기억하고 외우고도 있죠"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또 반사적으로 묻는다. 잘 산다는 게 뭘까? 엄마도 잘 모르면서. 대신 이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잘 산다"와 뗄 수 없게 되어버린 또다른 문장, 이랑의 수상 소감 마지막 문장이 따라온다. "잘 먹고 잘 살아보겠습니다." 나도 잘 모르지만. 아, 진짜. 태어나기 전에 미리 말을 해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더 많은 사랑을 가져오는 건데. 존나, 떼어주는 건데. 그러고 나니 노래가 끝났다. 화면 속의 이랑이 말한다.


"어떠셨습니까? 마지막에 이 두 줄만 하지 말고, 한 줄만 할까?"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이게 어떤 쓰임이 있을지 의미가 있을지 모르는데" 모르는데도. 실은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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