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나 Jan 17. 2024

<나 심은 데 나 자란다>를 읽은 열흘

감상도 일기도 아닌

약한 난독증이 있다. 이걸 난독증이라고 불러도 되는가에 대해 좀 고민이 있었는데, 읽기 어려우니까 난독이라고 해야겠지. 집중이 안 되는 상태이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문장의 의미를 입력하기 어렵다. 때로는 글자들이 덩어리 져서 보이는데, 어릴 때는 영어 독해의 문제인 줄 알았지만 셀프 빅 데이터를 더 쌓아보니 상태에 따라 한글도 그럴 때가 있다. 같은 문장을 열 번 정도 읽어도 그냥 흘러간다. 때로는 문단을 통째로 읽게 되는데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될 때 이 능력은 속독의 기술이 되고, 아무 생각이 없을 때는 그냥 난독의 증상이 된다. 심하면 당연히 책을 못 읽는다. 난독이라니까요.


근데 작가라는 나의 직업이 여기서 문제가 된다. 읽을 게 없는 경우가 없다. 읽고 싶다는 것도 문제다. 나는 언제나 책이 읽고 싶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읽으려고 시도한다. 실패해도 또다시 시도한다. 반복된 시도와 컨디션의 회복, 독서를 하기 좋은 외부적인 분위기, 그리고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강제성(예를 들어 추천사를 써야 한다거나)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면 글자 사이를 헤매는 일은 줄어든다. 보통은 그렇다.


이번에는 보통이 아니었다. 올 겨울 얘기다. 일을 정리하고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했다. 이사 이후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해졌다. 겨울을 타는 편인데 이번에는 기분도 꽤 괜찮았다. 운동과 요리를 시작했고, 하루에 8시간씩 자면서도 오전에 일어났다. 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 나로서는. 친구들이 근황을 물으면 대답했다. 너무 건강해. 잘 쉬고 있어. 체력이 좋아졌어. 집이 무척 마음에 들어. 난 괜찮아.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나? 책을 못 읽는데? 새해 들어 영화를 다섯 편 보고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을 열 편 보는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는데? 


책이 아예 안 읽혔다. 안 좋을 때보다 더욱 안 좋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책을 읽는 용도의 소파 혹은 편한 의자가 없어서는 아닌가 생각하며 오늘의집과 이케아를 뒤졌다. (적당한 가구는 아직도 못 찾았다) 그러면서 계속 시도했다. 원래도 책 여러 권을 한 번에 읽는 병렬 독서를 하기 때문에 읽으려는 책을 꺼내두고 무작정 들고 읽었다. 한 페이지를 읽으면 다행이었다. 작가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책 탓을 좀 했다. (다행히 두 권 빼고는 외국 책이다) 재미없어서 안 읽히는 듯? 그럴 리가. 재미까지 가기 전에 뇌가 텍스트를 입력을 안 했다. 문제가 뭐야? 문제가 뭐긴. 몸과 마음이 책을 읽을 만큼 건강하지 않은 거지.


영화를 볼 만큼은 건강하지만, 책을 읽을 만큼은 아닌 거야. 책을 읽기 위해 나는 에너지를 쓴다. 대충 훑어서 읽지 않는다. 재독이 아닌 이상 발췌독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성의 있게 읽는다. 그게 작가에 대한 예의라서… 일리가 있냐. 그렇게 읽지 않으면 읽었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난독증이 있는 주제에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러게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에너지가 아직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때보다 길어지고 있지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계속 읽으려고 해야 한다. 왜 그렇게까지? 글쎄요. 직업이니까요. 그리고, 좋아해서요. 전 좋아하면 주로 시간을 쓰는 타입입니다. 돈도 같이 쓰면 좋은데 그건 없을 때가 많아서.


그런 이유로 시간을 썼다. 작은 책 한 권을 읽기 위해서 열흘을. 병렬 독서를 관두고  한 권을 골랐다. 임진아 작가님의 <나 심은 데 나 자란다>를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는 데에 두었다. 침대 옆 스툴 위에, 책상에서 다시 테이블로, 거기서 가방으로 들어가서 인왕산 꼭대기를 같이 올랐다. 작은 크로스백에 함께 들어있던 물병에서 살짝 물이 새서 귀퉁이가 젖었다. 속지가 팥죽색인데 젖어 뒤쪽 몇 페이지에 붉은 물이 들었다. 좋게 생각해. 내 책이라는 증거지. 



그렇게 다 읽었다. 둘리 호빵 챕터를 읽던 시기가 특히 위기였는데, 둘리에 대해 검색을 하려다가 계속 딴짓의 연쇄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둘리 호빵을 찾아봤다가 만화동산에서 방영되었던 <아기 공룡 둘리>를 다시 올려주는 KBS의 채널명이 ‘옛날티비’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상관없는 SBS <옛날티비>(내가 막내작가로 일했던)를 떠올리고 2007년에 가 있는 식이었다. 그래도 돌아왔다. 돌아와서 다시 읽었다. 팥 앞에서 얼굴이 환해지는 임진아 작가님의 얼굴이 재생되고, 다시 재생되면서 시간이 흘렀다. 책갈피로 끼워 둔 올해 첫날 본 전시의 기념품이 착실히 책의 뒤쪽으로 옮겨갔다. 그래도 3/4 지점부터는 끊지 않고 읽었다. 어린 진아 작가님이 스무 개의 붕어빵을 안고 있다. 거기에 자막처럼 문장이 달린다. “그러면서도 나의 삶을 슬프게만 바라보지 않고 즐거운 쪽으로 애써 내달리던 나”. 다 읽었다. 어제저녁의 일이다. 


책을 다 읽으면 기록한다. 읽은 날짜를 기록하고, 문장을 옮긴다. 


“언제나 즉흥 놀이를 만들어 온 동네 아이들을 한 시간 내에 몰입하게 만들기 대장인 오빠는, 집에서도 크고 작은 놀이를 번번이 창조하며 한사코 즐겁게 사는 아이였다.”


‘한사코 즐겁게 사는 아이’라니. 이건 내가 되고 싶은 인간형이 아닌가. ‘한사코 즐겁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득 인용한 두 문장에서 ‘애써’와 ‘한사코’가 모두 ‘즐거움’을 꾸며주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애써서, 한사코 즐거운 쪽으로 내달려서 기어코 내가 좋아하는 맛을 일상에서 즐기며 살아가게 된 이야기라니. 멋지잖아. 멋진 책이다. 그러니까 여기까지가 독서다. 이게 너무 좋다는 얘기야, 나는.


원래의 계획은 <나 심은 데 나 자란다>와 붕어싸만코를 한 데 놓고 사진을 찍은 뒤에 여기까지가 독서다,라고 쓰려던 것이었으나 줌바를 하는 동안 눈이 왔고 집 앞 계단을 쓸 걱정에 편의점에 들르는 것을 까먹었기 때문에 그냥 저기까지만 독서로 한다.


그래서 올해, 아직까지는 책 한 권만 읽었다. 좋은 책이었고, 좋은 독서였다. 내일은 붕어싸만코를 사는 걸 까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명은아, 너는 네가 됐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