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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웅 Mar 20. 2018

9화: 한 번쯤 나를 돌아볼 때

일본으로 근속휴가를 떠나다


어느날부터 의문이 계속됐다.


엇인지 모를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표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러한 의문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근속휴가가 다가왔다.






1.
회사에서는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유급 휴가를 제공하고 있다. 일주일의 근속휴가에 자신의 연차를 3일까지 붙여서 사용할 수 있다.

워킹데이로 10일, 주말에 걸쳐서 쓰면 2주 동안 휴가를 쓸 수 있는 셈이다.



마침 계속되는 야근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한 번쯤 내가 일의 무게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정말 적절한 때에 기회가 찾아왔다.

한 편으로는 많은 동료 직원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비운 자리를 맡아줄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은 채 근속휴가를 떠났다.



2.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을 준비했다.

물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꼭 혼자 떠나보고 싶었다.


교토 아라시야마


들뜬 마음을 안고 떠난 곳은 일본 오사카와 교토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2박 3일간 참 잘 돌아다녔다.


시끌벅적한 오사카도 꽤나 인상 깊었지만 이번 여행의 취지에 제대로 부합한 곳은 교토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아라시야마'는 최적의 장소였다.


오사카 난바역에서 한큐 전철을 타고 아라시야마역으로 이동했다. 조금은 낡아 보이는 전철과 창밖의 한적한 풍경이 이동하는 길마저 여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사실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여유로움'을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플랜을 조정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는 'ASAP'이라 불리는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치쿠린 대나무숲


반면에 이곳에서는 분주함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라시야마의 한적한 거리와 아름다운 강, 대나무숲의 청량감을 느끼며 거닐었다. 보다 빠르게 시간을 달리는 것이 아닌 그저 제대로 된 템포로 걸었을 뿐인데, 그 차이는 새삼 크게 다가왔다.


대나무숲을 한창 거닐던 중 나도 모르게 멈춰 서게 되었다. 치쿠린 대나무숲 중간에는 전철이 지나가는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눈 앞에서 빠르게 전철이 지나갔고, 고개를 돌려 점점 멀어지는 전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언제 전철이 지나갔냐는 듯이 조용해진 철길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저 멈춰서서 멍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처럼 멈춰 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멋진 풍경을 보거나, 길을 잃었거나, 아니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멈춰 서게 되는데, 이 순간들이 사실 여행을 더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만든다.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추억으로 새기고, 제대로 된 길을 찾음으로써 원래 생각한 대로 이동할 수 있다. 분주하게 앞으로 전진해야만 할 것 같지만, 사실 멈춰 섰을 때 여행은 더 진가를 발휘한다.


생각해보니 사람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입사한 후,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된 이후에는 다 안고 가는 것이 옳은 거라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취를 겪었지만 나 자신은 돌아보지 못했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멈춤은,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근속휴가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지 앞으로 무엇을 채워가고 덜어내야 할지 판단이 섰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아야 할지에 대해 정리가 되었다.

2주 간의 근속휴가는 나를 계속 물고 늘어졌던 의문에 대해 아주 훌륭한 대답, 그 자체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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