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클라우드 도시작가 로컬 공간 리뷰
본 콘텐츠는 스페이스클라우드의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 도시작가로 활동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도시작가는 도시 곳곳의 로컬 공간을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오로지 공부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그래서 공부 이외에 모든 것을 포기한 '고시원'은 작은 소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운 억눌린 공생의 공간이다. 얇은 벽 너머로 동료이자 경쟁자인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개인은 철저히 고립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방문했던 신림동 녹두거리 맞은편 고시촌 골목은 참으로 고요했다. 노량진과 함께 '고시촌의 메카'라 불렸던 명성과 달리 거리 곳곳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방문했던 시간이 오전이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사법시험 폐지의 여파로 고시생 숫자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방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으나 현재는 남는 방이 수두룩할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거리를 지켜 왔던 가게들도 하나하나 문을 닫았다. 고시원의 문제는 결국 마을의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었다.
도시작가로 방문한 고시촌 언덕길 초입 '에벤에셀고시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44개의 방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겨우 네 사람만 살고 있었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공동체를 회복하고,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람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 결과, 사회적기업 건축사사무소 '선랩(SUNLAB)'은 그동안 고시촌에서 쉽사리 볼 수 없었던 공유거주공간을 시도했고, 에벤에셀고시원은 '쉐어어스(SHARE-US)'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쉐어어스'는 기존 고시원의 문제점 중 하나였던 열약한 개인 공간을 최소화하여 주거비용을 절약하고, 대신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공간을 넓히는데 초점을 둔 공유거주공간이다. 쉐어하우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비어있는 유휴 공간을 충분히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재생시켰다는 점이다.
쉐어어스 1호점이라 할 수 있는 '서림길 라운지'의 첫인상은 고시원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곳곳에서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1층에 조성된 라운지는 웬만한 카페보다 따뜻하면서도,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찌 보면, '공유'라는 말과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고시원에서 활발한 공유가 일어나고 있었다. 1층 라운지는 주방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과 영어회화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해 선랩의 양우경 공간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물었다.
1. 쉐어어스는 낡은 고시원 건물을 리모델링한 신개념 공유거주공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공간 중에서 고시원을 리모델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우선 저희 소개부터 드리자면, '선랩건축사사무소'라는 설계사무소예요. 설계사무소에서 운영하는 공유공간에 대한 하나의 모델, 브랜드로 '쉐어어스'를 운영하고 있고요. 설계사무소이다 보니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전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처음에 에벤에셀고시원에 왔을 때 할아버지께서 관리하고 계셨는데, 44개의 방 중 4개의 방에만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사법고시가 폐지로 인해 수요가 많이 줄어들었고, 더 이상 사용이 되지 않는 공간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청년들을 위한 다른 주거모델을 제안해보기로 했죠.
1-1. 고시원을 리모델링 한 사례 이외에 다른 사례도 있나요?
주로 청년들 주거 관련된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서울시에 진행하고 있는 사회주택 관련된 일을 진행한 건이 몇 건 있고, 리모델링의 경우는 '쉐어어스'를 통해서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2.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많은 고시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리모델링 이전의 에벤에셀고시원 상황도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성인 남자가 방에 들어가면 팔을 뻗을 수 없을 만큼 좁고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그 좁은 공간에 책상과 침대가 다 들어가 있는 거죠. 에벤에셀고시원의 규모 자체도 크지 않은데, 한 층에 방이 10개씩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죠.
3. 기존의 고시원을 새로운 공유거주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우선, 가장 큰 변화는 방을 대폭 줄였다는 점이에요. 44개의 방을 19개로 줄였여요. 방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최대한 공유공간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1층 역시 원래는 방으로 가득 차있었는데 지금은 '커뮤니티 라운지'와 입주사 사무실 공간이 조성되었죠. 1층에는 공유주방도 있는데 2,3,4층에는 주방이 없어서 여기서 다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에요.
사실 '관계 맺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기존의 고시원은 사실 사람들끼리 마주칠 기회가 적잖아요? 1인 가구가 많이 사는 곳이다 보니 그런 것들이 익숙해지고, 관계를 맺는 것이 굉장히 힘들어지는 거죠. 최대한 그런 것들을 완화시키기 위해 기존의 원룸 구조가 아닌 공용 공간을 살려 사람들의 겹치도록 설계했어요.
물론, 누군가는 원하지 않는 구조일 수 있어요. 적당한 공유의 범주가 어디까인가는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만들되, 그 과정은 입주자들의 선택에 맡겼어요. '유닛 구조'는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유닛이라는 개념은 필수공유공간, 예를 들면 화장실, 샤워실을 같이 공유하는 모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1+1 유닛, 3 유닛, 6 유닛 등으로 인원수에 따라 필수공유공간을 나눠 쓰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요.
1+1 유닛은 같이 쓰는 화장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 공간을 독립된 방으로 만들었어요. 출입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사적인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볼 수 있죠. 2 유닛은 1+1 유닛과 입주하는 인원은 같지만, 침대와 책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어 '함께 산다'는 느낌이 강한 구조입니다. 3 유닛과 6 유닛은 사람들과의 접점이 높아요. 각자의 방이 있지만 거실, 부엌, 발코니, 화장실 등을 같이 쓰기 때문이죠.
유닛 구조를 통해 입주자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성향에 맞게 공유하고 싶은 범위를 설정할 수 있어요. 친구랑 같이 살고 싶으면 1+1 유닛이나 2 유닛, 많은 사람과 함께 오손도손 살고 싶으면 3 유닛이나 6 유닛으로 사는 거죠.
4. 입주자분들은 보통 어떤 분들이 계시나요?
입주자분들은 강남권이나 서울 주요 지역에 직장을 다니시는 사회초년생분들도 계시고요. 아무래도 서울대 대학생들이 제일 많고, 각종 시험 준비하시는 분들이 주로 계세요. 연령대는 20대 초중반 분들이 대부분이죠.
4-1. 별도의 입주 조건이 있을까요?
저희가 입주시기를 2월과 7월로 잡고 있어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서 진행하는데 주계약 기간은 최소 6개월로 하고 있습니다. 1호점은 입주 기준이 따로 없고, 2호점과 3호점은 서울에서 주거한다던가, 소득분위가 어떻게 되는지 입주 자격 심사 진행하고 있어요.
5. 마을 커뮤니티 공간인만큼,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입구에서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저희가 정기적으로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오늘은 2호점 루프탑에서 가드닝 클래스가 진행되거든요.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격주에 한 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저희 입주자들에 한정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림동 전체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주로 청년 1인 가구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주제로 기획하고 있어요.
5-1. 프로그램 기획에 대한 고민이 참 많으실 거 같아요.
어떤 주제로 잡을지 고민이 참 많아요. 현재는 '1인 가구의 건강', '1인 가구의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 '1인 가구가 살면서 필요한 물품, 소품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창작활동' 이 세 가지를 큰 테마로 잡고 기획하고 있어요. 테마에 따라 캘리그래피, 요가, 가드닝, 워터팩, 캔들, 마음치유, 스툴, 시계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죠.
현재 3호점에는 지하 공방을 기획하고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직접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에요.
6. 공간이 지속해서 운영되기 위해서는 수익모델이 필요할텐데요. 입주 이외에 추가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있을까요?
1호점의 라운지, 2호점의 루프탑, 3호점의 공방까지 세 개의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면서 대관료와 같은 수입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지역의 특성이나 지리적 여건이 역세권처럼 사람이 몰리는 지역이 아니다 보니 크게 수익이 나지는 않아요.
그 외에는 기타 설계 업무나 주거 시설 설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역 내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공간이 필요하다 보니 저희 공간을 많이 찾아주시기도 합니다.
7. 수익모델 창출 이외에, 입주자들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어려움이 있을까요?
저희가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거든요. 아직까지는 크게 어려운 점이 없었는데 초반에 이런저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조금 어려웠던 거 같아요. 공간에 대한 이용 안내나 입주하시는 분들에 대한 서비스 제공 등 매번 새롭게 부딪히는 것들이 많았어요. 다행히 그럴 때마다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입주자분들이 공간 이용에 대해 '공간사용일지'를 자발적으로 써서 그 시간만큼 이용하고 계세요. 저희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입주자분들이 알아서 그렇게 시스템을 만들어주신 거죠.
8. 공식적인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3호점까지 오픈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쉐어어스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1호점은 라운지 커뮤니티, 2호점은 루프탑, 3호점은 작업실 형태의 지하 공방을 운영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호점 별 특수 공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4호점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오픈을 목표로, 현재 기본 설계 중에 있습니다. 또한, 공유공간에 대한 시스템을 매뉴얼화시키자는 생각이 있어요. 명확한 매뉴얼을 마련하면, 좀 더 원활한 운영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끝나고, 내심 궁금했던 질문 한 가지를 번외 질문으로 물었다. 리모델링을 통해 '쉐어어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벤에셀고시원'의 간판을 그대로 둔 이유가 궁금했다.
되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곳에 이런 고시원이 있었다'고,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마주한 에벤에셀고시원의 간판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허름하게만 보였던 첫인상과는 달리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당당함이 느껴졌달까. 비록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쓸모가 바래진 공간일지라도, 그 공간을 없애는 것 대신 새로운 쓸모를 찾고,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마음이 참 따뜻했다.
공간을 기록하는 도시작가로써,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청년으로써 앞으로 그들의 노력이 또 어떤 공간에 닿게 되고, 어떻게 변하게 될지 기대된다.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림길 117 1층 (출입구는 건물 뒤편에 있습니다.)
가격: 서림길 응접실 50,000원 (시간) / 휴게실, 독서실, 모임실, 회의실, 작업실 각 1,000원 (시간/인)
공간예약: 스페이스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