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_ 호스트랑 (또) 싸웠습니다.

빌어먹을 노동시간 때문에

by 사람 여행자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동안 잘 쌓아온 정이 떠날 때 저지른 잘못 하나로 돌이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곤 합니다.

마지막이기에 뒷수습할 기회조차 없어요.


어째서 데니는 제가 떠나기 직전,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을까요.

추가 근무를 요구할 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이곳에 8박 9일 지냈습니다.

정확히는 7일 하고 18시간 정도 지냈을 거예요.

한편 데니의 조건은 7일을 머무는데 25시간의 노동력을 제공하라는 것이었죠.


어느덧 약속한 노동시간을 다 채웠을 때쯤 그가 말했습니다.

모두 합해 28시간하고 30분을 채워야 한다고요.


"윤. 너는 저번 주 목요일 오후 4시 30분에 왔어. 그러니까 이번 주 목요일 오후 4시 30분이 지나면,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거야. 금요일에 떠난다고 했으니 정확히 하루를 더 있는 거잖아? 7일을 지내는 데 25시간이니까, 하루는 3시간 30분. 모두 합해 28시간하고 30분을 채워야 하는 거야."


진짜 재수 없었습니다.

예기 치도 않은 3시간 30분이 추가된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쩜 이렇게 정이 없을 수가 있죠?

그간 데니와 함께 쌓은 추억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것 같았습니다.

하루라도 못 봐주는 건가요? 저는 열 시간의 비행 끝에, 시차 적응도 못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왜 이렇게 이해타산적이냐고 저는 물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금요일 아침에 떠나니까, 추가 노동시간은 3시간 30분이 아니라 2시간 정도 돼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데니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어색한 순간이 오는지 모르겠다며, 지금까지 저에게 제공했던 모든 혜택을 일일이 열거했어요.

어르신 고집 하나는 절대 꺾을 수 없는 걸까요?

오히려 그로서는 제가 이기적으로 굴고 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노동시간을 매일 기록해야 했던 출근부. 제일 아래에 제 이름이 있네요.


사실, 며칠 전 똑같은 일이 또 있었습니다.

미국인 커플 에나와 맥이 이곳을 떠날 때였어요.

그들이 생각하기에 노동시간을 다 채운 줄 알았는데, 데니의 계산법으로 또 3시간 정도 시간이 남은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시했어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겠죠.


데니는 커플이 떠나는 날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뒤돌아서서 불평을 터놓았습니다.

하루 동안 공짜로 놀고먹다 가다니. 책임감이 너무 없고 이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그러면 안 되겠구나 했어요.

(이때는 데니가 추가 노동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마무리를 잘 맺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이론적으로 따지면 데니의 방식이 맞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저도 할 말은 있습니다.


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까지 노동 시간에 계산하는 호스트는 잘 없어요. 여기까지 오는 데 고생했고 다시 빠져나가는 데 고생할 텐데,

그 정도는 암묵적으로 봐줍니다.

그런 배려가 데니한테 없다는 게 조금 (많이) 아쉽더라고요.


세상 어디에 100% 만족할 호스트가 있겠습니까.

(사실 있었습니다. 스위스, 이탈리아, 멕시코에서 만났어요)

데니와 저는 문화적 배경이 달라도 너무 다른 곳에서 자랐고, 나이 차이도 어마어마하잖아요.

적어도 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서로 살아온 세상 자체가 다른 두 인물이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게 아닐까요?

데니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데니도 저를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고집을 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자.


그걸 배우기 위해 이곳까지 온 거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한국 사람의 시선에서 정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느낀 게,

이곳에서는 당연한 삶의 방식일 수 도 있으니 까요.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20대에 20개국 가기, 라는 꿈이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배낭여행을 더욱 쉽게 떠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합니다.

저는 작가 지망생 윤경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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