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_ 차가운 파스타가 준 교훈

어떤 일이든 미리 가정하지 마세요!

by 사람 여행자

아픈 몸을 이끌고 주중 하루 다섯 시간씩 일한 덕에 주말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때 조금이라도 쉬었다면 주말에도 잔업을 해야 했을 겁니다.


금쪽같은 주말.

저는 근처에 있는 주립공원으로 짧은 등산을 갔어요.

그 날 호스트 데니는 제 계획을 듣더니 수영복을 챙겨가라고 조언했습니다.

산속에 호수가 하나 있어 시원하게 수영 한번 하라고 말이죠.

"네~ 알겠어요!"

저는 대답만 이렇게 하고 수영복은 챙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호수에서 수영을 하냐고 코웃음을 쳤어요.

위험할 게 뻔했고, 고인 물이라 더러울 것 같았거든요.


호수를 가로지르며 헤엄을 치고 있는 어느 등산객이 보이시나요?

몇 시간 뒤, 저는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산속에서 마주한 호수는 살면서 보았던 그 어떤 호수보다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어요.

무더운 여름 태양 아래, 이름 모를 등산객 둘은 이미 겉옷을 훌렁 벗어던진 체 냅다 호수에 뛰어들었습니다.


수영금지 표지판이요?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수심이 깊긴 했는데 수영을 할 줄 안다면 위험한 것도 아니죠.

거센 물살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악어도 없었어요.


제가 만약 '호수에서 무슨 수영을?'이라는 가정을 미리 하지 않았더라면

또 한 번의 새로운 경험을 했을 겁니다.

반짝이는 호수의 물비늘을 가로지르며 자유롭게 헤엄쳤을 거예요.


'미리 가정하지 말라.'

사실, 이 교훈은 데니의 부엌에서 배웠습니다.

여느 가정이 그렇듯 부엌 냉장고에는 자석 하나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사진이며 메모가 많았는데요.

그중 저와 같은 손님들에게 말하는 공지사항이 하나 있더라고요.

화장실을 깨끗하게 써라, 에어컨 바람이 밖으로 나가지 전에 문을 빨리 닫아라 등

대부분 상식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중에는 "Don't assume anything"이라는 문장도 있었어요.

어떤 것이든 미리 가정하지 말라고?

다소 황당한 글귀에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었습니다.


왼쪽 검은색 냉장고에는 가지가지 메모로 가득합니다.


하루는 전날 먹다 남은 파스타를 데워먹으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어요.

그 순간, 데니가 나타나 말을 걸었습니다.

"윤. 너 차가운 파스타 먹어봤어?"

"네? 차가운 파스타요? 파스타를 차게 먹어요?"

"응.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파스타도 먹어 보면 맛있어. 한 번 먹어봐."

"에이~ 농담이죠? 파스타를 왜 차게 먹어요~ 장난치지 마요."

그러자 데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습니다.


"너 냉장고에 붙은 공지사항 안 읽어봤지? 자, 이것 봐봐. 미리 가정하지 말라! 너는 여태껏 차가운 파스타를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맛없을 거라고 미리 가정하고 있잖아. 이걸 전자레인지로 데워 버리는 순간, 차가운 파스타를 먹어볼 기회를 잃는 거라고"


묘하게 설득력 있었습니다.

다소 이상한 논리긴 했지만 반박할 여지가 없었어요.

제발 한 숟갈, 아니 한 포크라고 먹어보라는 그의 간절한(?) 요구에 마지못해 한입 먹었습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요.

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파스타만 먹었는데, 이렇게 차가운 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색다른 식감이었고 뜻밖의 경험이었습니다.

딱 거기까지.

저는 얼른 파스타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30초를 설정했어요.


이 사소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머릿속에서 또렷한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저건 맛없을 거야'라며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시도하지 않은 일,

심지어 '저 사람은 별로일 거야'라며 새로운 인연을 꺼린 일.

이 모든 상황이 알고 보니 미리 가정해서 생겼더라고요. 고정관념이었던 겁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저도 모르게 새로운 경험을 놓치고 있었다는 거죠.


한국에 돌아온 어느 날,

평생 먹지 않던 멸치 볶음 속 못생긴 꽈리고추를 한입 베어 물며 생각했어요.

그동안 꽈리고추는 못생겨서 맛없을 거라고 미리 가정했는데,

이 녀석 꽤 알싸한 게 맛있더라고요.


이름하여 차가운 파스타가 준 교훈이었습니다.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20대에 20개국 가기, 라는 꿈이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배낭여행을 더욱 쉽게 떠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합니다.

저는 작가 지망생 윤경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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