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_ 건강기능식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열정 빼면 시체? 의욕만 타오르는 인턴의 참담함

by 사람 여행자

부서 이동 성공했습니다!

지난 6개월간의 사업개발팀 인턴에서

이제는 마케팅팀 인턴으로 갑니다.


저는 여기서 콘텐츠 마케팅 일을 했어요.

회사 SNS에 어떤 콘텐츠를 올릴지 고민하고,

광고 소재, 카피라이트에 관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재밌었어요.

제가 또 경영학과 나왔잖아요.

오랜만에 마케팅 수업 팀플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왜 백내장 수술 같은 광고를 눈여겨보고 있냐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지치더라고요.

매일 같이 광고 아이디어와 카피를 생각하다 보니까,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광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출근길을 볼까요.

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 정류장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에도 광고가 있어요.

이제 강남 가는 2호선 지하철을 타러 갑니다.

지하철 계단 양쪽 벽, 스크린 도어, 지하철 내부, 모두 광고입니다.

심지어 안내 방송에도 광고가 나오죠.

"암 걱정에서 내리실 분?" 하면서.

출근하는 동안에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봅니다.

거기에 또 뭐 있죠?

이미지 광고, 5초 광고, 15초 광고 나옵니다.

이제 거리로 올라옵니다. 여긴 더 많아요.

휴대폰 대리점, 화장품 가게, 온통 세일 광고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쳐다도 안 봤을 광고죠.

기껏 해봐야 5개 정도 볼까요?

그런데 이제는 모든 광고를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어? 저 광고는 왜 나의 시선을 끌었지?'

'오 ㅋㅋ 이 광고 카피가 재밌다.'

'(유튜브 광고를 보면서) 내가 왜 skip 버튼을 안 눌렀지? 어떻게 3초 안에 내 관심을 얻었지?'


벤치마킹할 게 없는지

반대로 비판할 요소는 없는지

주의 깊게 봤습니다.


이제 막 인턴으로 입사했기에

저에게 전문 지식과 경험이 있겠습니다.

열정만 가득했죠.

하나를 알면 열을 알고 싶고,

빨리 성장하고 싶은 승부욕에 불꽃이 이글거렸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금방 지치더라고요.

공과 사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그 부작용으로는 몸이 아프기도 했지만,

미루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정보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서 붙들고는 있는 거죠.

그런데 보지는 않아요.

뉴스를 스크랩만 해두고,

벤치마킹할 광고를 사진으로만 찍어만 두고,

읽어야 할 마케팅 책만 사두는 거예요.

그리고 안 봐요.

그냥 저장만 합니다.

언젠가는 보겠지.

시간 있을 때 몰아서 공부하자고 미뤄둡니다.

정보 중독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쳐갔습니다.

나는 주니어니까 빨리 성장해야 해!

낭비할 시간이 없어!라는 생각으로.


출퇴근길에는 독서하고,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뒤 수영하고,

수영 끝나면 집에서 공부해요.

잠은 또 푹 못 자요.

눈을 감으면,

'오늘 회사에서 실수한 게 없나.'

'더 기발한 광고 아이디어는 없나.'

뭐 별에 별 생각 다합니다.


만성피로는 기본값이었죠.


원래 직장인이 그런 거라면서요.

다들 건강기능식품 여러 통 책상 위에 두고 먹더라고요.

저만 필사적으로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피곤함에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버텼습니다.


"혹시 챙겨 드시는 건강기능식품 있어요?"


하,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마법의 묘약이 필요했습니다.

런치 데이(한 달에 한 번, 무작위로 뽑힌 다른 부서 사람들과 길게 점심을 먹는 사내 행사)를 하다가 다른 직원들에게 물었어요.

대화는 제 피로의 원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잠을 잘 수 없는 불안함과 일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다고 대답했죠.


한 직원은 제게 '번아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해결책은 좋은 건강보조식품이 아니라 힘을 빼는 것이래요.

저처럼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결국 만성피로에 번아웃으로 이어지는 거래요.

힘을 쓸 때와 힘을 뺄 때를 구별해야 되는데,

모든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니까 탈 나는 거래요.

돌이켜보니까 맞더라고요.

음식 메뉴를 고를 때도 깊게 고민하는 제가,

다른 일을 할 때는 얼마나 고민하며 에너지를 쓸까요.


그 직원은 말은 대충 하자는 게 아니었어요.

"힘 빼도 될 때는 빼고, 그 에너지를 집중할 때 팍 써야 해요.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 지쳐버리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였습니다.

"제가 이전 회사에 있을 때, 사수가 저한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마라톤이라고. 당장 불꽃 튀는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그냥 꾸준히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빨리 성장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겠다는 제 욕심은 그냥 전력질주였네요.

넘어지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마라톤을 뛰는 게,

회사생활이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이러면 왜 이렇게 느리게 걷냐고 채찍질당하지는 않겠죠?)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20대에 20개국 가기, 라는 꿈이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배낭여행을 더욱 쉽게 떠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합니다.

저는 작가 지망생 윤경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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