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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선 Feb 05. 2018

너를 만나러 이곳으로 왔어,
스카겐

스카겐 Skagen







너를 만나러 이곳으로 왔어, 스카겐(Skagen)



산토리니의 푸르름을 가득 머금은 이 공간에는 뭔지 모를 여유와 낭만이 흐른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로의 이야기를 건네는 어느 노부부를 보고 있노라니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고은, ‘밥’>



나와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공기는 나와 다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삶을 동경하는 나는 시간이 흘러 지긋한 나이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곳에 다시 와서 차 한 잔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있기를 바라본다.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한 끼를 나누어 먹으며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18세기 후반에 모래바람에 묻혀버린 교회 Den Tilsandede Kirke가 스카겐의 랜드마크라고 하기에 이곳을 찾아보려 한다. 이른 새벽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또다시 나 자신과 싸움을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오늘도 걷고 있는 나는 다른 방향으로 잠시 길을 잃은 덕분에 우연히 눈이 맑은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은 외로운 여행자에게 계속하여 여행길에 오를 수 있도록 응원과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북유럽의 스카겐까지 오면서 수많은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그야말로 세상을 돌고 돌아 이곳에 도착한 나에게 잠깐이라도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묵묵히 여행을 계속해나가라는 독려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와 앞만 보며 하염없이 걸어가던 내게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눈앞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 그것은 마치 휘몰아치는 파도 같기도 하고, 거침없는 폭풍우이기도 하다. 끝없는 지평선 아래 넘실대는 파도 구름. 그 빛나는 하늘의 일출을 바라보면서 그토록 많은 북유럽의 화가들이 왜 스카겐을 찾는 것인지 그 이유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공간에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 누구라도 창작의 영감이 샘솟아 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욱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쉬울 뿐이다. 자연이 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선물 앞에 조금만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한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가만히, 조금만 더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염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초록빛 바다와 검푸른 바다를 이루는 북유럽의 끝자락 그레넨(Grenen). 


북해와 발트해가 만나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이색적인 바다, 그 끝에 내가 서 있다. 평소에 외로움을 많이 타지 않는 나이지만 세상 끝 바다에 와 있자니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온다. 해는 어느새 종적을 감춘 지 오래고 빗방울도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구글 지도를 보며 몇 번이고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지만, 휴대폰 배터리마저 소모되면 영락없이 나는 이곳에서 미아가 될 테니까… 








어둠 속에서 나는 끝없이 걷고 또 걸었고, 결국 두 바다가 맞부딪히는 파도 앞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나는 해가 지고 있다는 두려움도 잊은 채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이름 모를 행성에 발을 내민 기분이 든다. 그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있을 때였을까.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생명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을 것만 같은 이 척박한 땅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바다사자와의 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장면 앞에서 나는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으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사진작가 역으로 나오는 숀 펜의 대사가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나는 이번 페로제도와 덴마크 여행을 통해서 매번 그런 순간과 마주한다. 한동안 발걸음을 떼야한다는 사실도 잊고, 이 모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음에 행복하다. 또 이렇게 운이 좋은 날이 올까 싶은 마음에, 그냥 이렇게 이 아이들을 보내고 싶지 않기에 내 눈과 마음속에 고이고이 담아본다. 한편으로는 이 땅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몇 번이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이 뜨거운 무언가가 내 뺨을 타고 흐르고 있는 이 순간, 세상의 모든 경이로운 풍경 앞에서 나는 늘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수없이 걸으며 많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이 시간, 페로제도에서 함께 여행해 준 고마운 사람과 혼자 여행을 하며 만난 모든 이. 삶에 있어 사람과 사람이 함께한다는 것의 시너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 그 어디에 있든,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이 내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음에 나는 지금 혼자 있어도 조금도 외롭지 않은 날이다. 
















윤T의 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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