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일지 1
학교라는 곳은 참 신비로운 공간이다. 매년 3월이면 이름표만 바뀐 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피, 땀, 그리고 '화장실 갈 시간'을 포기한 사투가 서려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10년여의 세월 동안 이 학교 저 학교를 유랑하며 웬만한 보직은 다 섭렵한 '학교 업무의 뷔페' 같은 존재다. 어떤 해인가는 도서관 사서부터 방송부, 교과부장, 학적, 문예, 자유학기, 생기부... 여기에 수업계와 동아리 2개, 스포츠 클럽에 순회교사까지. 아, 물론 본업인 담임과 국어 수업은 '기본 옵션'이었다. 물론 문제없이 1년을 잘 보냈다.
어느 때인가는 내가 하던 일을 이듬해 세 분의 선생님이 나눠 맡는 것을 보며 헛웃음을 삼킨 적도 있다. "아, 나는 그동안 세 사람분의 자아를 갈아 넣으며 살았구나." 허무함 뒤에 찾아온 건 '이제 어떤 새로운 일이 와도 두렵지 않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경험은 결국 깨달음을 남긴다는 만고의 진리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았다.
하지만 올해,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의 '인류'를 만났다.
3장짜리 '전설의 레전드' 가이드북
나의 전임자는 소문난 실력자였다. 해당 분야 강사로 뛸 만큼 '일 잘하는 사람'의 대명사였다. 기대를 품고 받은 인수인계 자료는 단 세 장. 내용은 심플했다. "이런 일을 해요." 끝.
학교 양식의 투표용지와 당선증 파일조차 구걸하듯 받아내야 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자료를 넘기기 싫구나. 말로는 강사로 뛸 때 다 나눠주는 건데 안줄게 뭐가있냐고 말했지만 난 받은 것이 없다.
덕분에 나는 '무(無)에서 유(無)를 창조'하는 조물주의 심정으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진짜 비극은 그분의 '이중성'에서 터졌다. 본인이 7년 동안 철저히 지켜왔다며 민원을 방어하기 위해 고쳐놓은 규정. 그런데 관리자와 이견이 생기자 그는 너무나 가볍게 말을 바꿨다.
"해석의 여지가 있으니 관리자님 말씀이 맞겠네요."
내가 규정대로,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원칙대로 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그는 비겁한 미소 뒤로 숨어버렸다. 관리자의 채용권 앞에 소신 따위는 유통기한 지난 우유보다 가치 없었나 보다. 결국 내 고집대로 규정을 지켜냈지만, 입안에는 씁쓸한 모래알이 씹히는 기분이었다. 실력은 전문가일지 몰라도, 인성은 할말하않.
화장실도 사치다!
요즘 내 입에선 10년 동안 봉인해두었던 거친 언어들이 랩처럼 쏟아진다. "아, 진짜 엿 같다." "더럽다."는 말이 추임새처럼 붙는다.
예전처럼 초과근무라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제는 집에서 나만 기다리는 어린 막내의 등하원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다. 정해진 시간 내에 세 사람 몫의 업무를 끝내야 하니, 지난주는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참았다. 방광의 비명보다 업무 포털의 알람 소리가 더 무서운 법이니까.
누군가는 "적당히 해라", "네 성격이 문제다"라고 하겠지만, 어쩌겠나. 이놈의 책임감이 내 DNA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고 믿으며 살아온 세월이 내 등 뒤를 떠밀고 있는 것을 말이다.
무책임한 당신들에게 보내는 '안녕'
인수인계를 '그따위'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히 한마디 하고 싶다.
일을 아무리 잘하고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해도, 마무리가 그 모양이면 당신은 전문가는커녕 '책임감 없는 사람'일 뿐이다. 마무리가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결국 인성이 바닥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진짜 그렇게 살지 말자."
당신이 던져두고 간 무책임의 파편을 치우느라 누군가는 오늘 점심도 굶고, 화장실도 못 가며, 아이를 데리러 가는 퇴근길에 눈물을 훔친다.
나는 오늘도 사표 대신 브런치를 쓴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지만, 적어도 나는 나중에 내 자리를 이어받을 누군가에게 '3장짜리 종이 쪼가리'를 던져주는 비겁한 선배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이상! 무려 2회나 브런치 글을 못 쓴 1인의 비겁한 변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