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내집마련기24
누구에게나 가계부에서 지우개로 벅벅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 한 페이지쯤은 있기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스스로를 지독한 자린고비라 칭하며 십 원 한 장에도 벌벌 떨며 살았지만, 그런 철옹성 같은 지갑에도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존재했다. 내 집 마련이라는 종착지에 도착하기 전, 내 바구니에는 나도 모르게 줄줄 새고 있던 구멍들이 있었다. 이제야 번듯한 내 집 벽지에 등을 기대고 앉으니, 그 시절의 무모했던 지출들이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지불한 값비싼 수업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은 내 집 마련의 시계를 최소 2~3년은 늦춰버린, 나의 눈물겹고도 황당한 ‘지출 3대장’을 가감 없이 기록해 보려 한다.
1. ‘새 기분’이라는 마약, 이사 비용의 함정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위해, 우리 아이의 교육 환경을 위해 떠나는 거야”라는 아주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2~3년마다 반복된 이사는 주거 환경의 개선이 아니라, 정착하지 못한 마음이 부린 부질없는 부르주아적 유희였다. 이사를 한 번 할 때마다 복비, 이사비는 기본이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로 멀쩡한 가구를 바꾸거나 인테리어 소품을 사들였다. “이번에 이사 가면 내 삶도 달라지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은 사실 스스로를 떠돌이 삶으로 내모는 주문에 불과했다.
내 친구 중에는 서울의 한 전셋집에서 결혼 전까지 무려 10년을 버틴 ‘정착의 달인’이 있다. 친구는 그 낡은 집을 제 몸처럼 닦고 조이며, 가끔 가구 배치만 바꾸는 것으로 권태를 이겨내며 살뜰히 종잣돈을 모았다. 반면 나는 늘어나는 살림을 비울 생각은 않고, 짐에 밀려 더 큰 평수만 찾아다니는 미련한 짓을 반복했다. 역마살인지 정리 정돈의 부재인지 모를 그 이사 행렬만 멈췄어도, 나는 아마 지금보다 몇 년은 빨리 내 집을 마련했을 것이다. 공간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그 공간을 채운 나를 먼저 바꿨어야 했다는 사실을, 이삿짐 트럭에 실려 나간 복비들을 보며 뒤늦게 깨닫는다.
2. 불안을 결제했던 시간, 유아 시절의 과도한 사교육비
아이 J를 세상 누구보다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는 욕심은 엄마라는 이름의 눈을 멀게 했다. 말도 제대로 못 떼는 아이에게 ‘아기나라’부터 ‘한글나라’, '영어나라', 블럭놀이 등 각종 학습지 선생님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글 자모음을 깨치는 것보다, 아이가 세상의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는지 살피는 게 먼저였다. 그 비싼 학습지 대금 대신 차라리 좋은 그림책 몇 권을 사서 머리맡에서 읽어주고,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계절의 공기를 함께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뼈저리게 느끼는 진리가 하나 있다. 결국 공부의 성패는 학습지 장수가 아니라 ‘독서력’과 ‘정서적 안정’에서 갈린다는 사실이다. 전집을 들이밀며 아이의 수준을 체크할 게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함께 봐주는 여유가 진짜 교육이었다.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결제했던 그 수많은 교육비가 결국은 아이의 창의성을 짓누르고 내 통장 잔고만 갉아먹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J는 훌쩍 커버린 뒤였다.(그래서 둘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3. 건강염려증과 직업적 허세가 부른 ‘지름신’의 방문
나라고 매일 신령님처럼 청렴하게만 살았겠는가. 평소엔 무소유의 화신 같다가도 가끔 ‘지름신’이 강림하면 대책 없는 쇼핑의 늪에 빠지곤 했다. 특히 엄마의 기나긴 암 투병과 여러 번의 척추 수술을 곁에서 지켜보며 생긴 ‘건강염려증’은 내 지갑의 가장 큰 적이었다. 우리 집 구석구석에는 부항기, 적외선 치료기, 각종 저주파 마사지기 등 가정용 의료기기 박람회를 열어도 될 만큼의 장비들이 쌓여 있다. 물론 요긴하게 쓰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언젠가 아프면 써야지’라는 공포 마케팅에 속아 산 애물단지들이다. 내 몸의 통증을 기계에 맡기기 전에 규칙적인 운동과 올바른 자세를 먼저 갖췄어야 했는데, 나는 쉬운 길을 가려다 비싼 길을 선택했다.
직업적 허세가 부른 ‘정장 지출’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직장인이니까,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 코트와 치마는 필수지”라며 야심 차게 구입한 옷들이 옷장 안에서 화석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나는 치마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활동량이 많은 수업을 할 때 정장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갑옷일 뿐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내 일상에 정말 필요한 옷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 없이 ‘남들에게 보이는 나’에 집착했던 지출이었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깔끔한 옷 몇 벌이면 충분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옷값들을 모아 내 집의 벽지 한 장이라도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발랐을 텐데 말이다.
후회는 성장의 거름이 된다
이 세 가지 지출은 단순히 돈을 잃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불안, 허영, 그리고 조급함을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럭셔리한 삽질’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십 원짜리 이자 한 장에 감사할 줄 아는 단단한 집주인이 될 수 있었다.
혹시 지금도 누군가 “살까 말까”를 고민하며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다면, 한 번쯤 자문해 보길 권한다. 이것이 나를 위한 투자인지, 아니면 내 안의 결핍을 채우려는 임시방편인지 말이다. 낭비된 돈은 아깝지만, 그 낭비를 통해 배운 교훈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다. 오늘도 내 집 거실에 앉아, 더 이상은 필요 없는 마사지기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진짜 풍요가 무엇인지 되새긴다. 빚을 빛으로 바꾸는 과정은, 결국 내 안의 불필요한 욕망을 걷어내는 작업과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