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부질없는 상상을 한다. 만약 엄마가 우리 아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혹은 나라는 존재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지금보다 훨씬 '엄마답지 않은' 모습으로 찬란하게 행복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의 나에게 엄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우리 집은 늘 가난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는데, 엄마는 그 와중에도 책을 열댓 권씩 덜컥 사들이곤 했다. 집을 꾸미고 옷을 사는 일에는 또 어찌나 진심이었는지, 먹고 죽을 돈도 없다며 잔소리를 해대는 건 늘 어른인 엄마가 아니라 꼬마인 나였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둘 중 하나였다. 책을 읽고 있거나, 청소를 하고 있거나.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을 견디기에 책 속 세상은 유일한 도피처였을까. 친구라는 이름의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사기까지 당하며 만신창이가 된 엄마에게, 종이 냄새 가득한 책장은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세계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엄마의 ‘독서 잔혹사’는 외가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딸이 되어 집안일은 안 돕고 책만 읽는다고 외할머니께 꾸지람을 듣는 건 예삿일이었다. 엄마 인생에서 가장 혹독했던 시집살이의 기억조차 고된 노동이 아니었다. 윗집에서 빌려 읽던 책을 시어머니(나의 할머니)가 눈치채고는 다시는 빌려주지 못하게 막았던 일, 엄마는 그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고 했다.
어느 날은 장롱 깊숙한 곳에서 보물 찾기라도 하듯 책더미를 발견한 적이 있다. 《조선왕조 500년》 전집과 반짝이는 애니메이션 명작 동화였다. 할머니 몰래 숨겨둔 그 책들은 엄마가 세상에 내놓은 비밀스러운 반항이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결국 들통이 난 명작 동화는 그날부터 '읽는 도구'가 아니라 '벌 받는 도구'로 전락했다. 잘못을 저지른 날이면 나는 명작 동화 다섯 권을 양손에 높이 들고 벌을 서야 했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가 그렇게 무거운 공주들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책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반면 동생은 엄마를 닮아 책을 끼고 살았다. 엄마는 책 읽기를 거부하는 나를 강제로 책상 앞에 앉혔다. 그 강제로 독서한 세월이 무려 22년. 신기하게도 공대생이었던 나는 결국 국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나서야 독서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공들인 22년의 담금질 끝에, 나는 글로 세상을 배우고 글을 가르치며 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엄마의 고집스러운 집착이 결국 딸의 밥벌이가 된 셈이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낭만적인 엄마의 삶에 아빠는 거대한 해일 같은 복병이었다. 다정하기로 소문난 외할아버지 밑에서 5남매 중 유일한 외동딸로 귀하게 자란 엄마에게, 아빠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험준한 산과 같았으리라.
아빠는 음주가무를 사랑했고, 수려한 외모 덕에 늘 주변에 여인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성격 탓에 번 돈은 모조리 친구들에게 퍼주기 일쑤였다. 우리 집 쌀독이 비어가는 것보다 지인들의 쌀독이 비어있는 걸 못 참던 아빠 덕분에, 엄마와 두 딸의 저녁상은 늘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쌀집 아저씨가 우리 집 쌀독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봉지 쌀을 팔아주던 날, 엄마의 눈동자엔 어떤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을까.
더욱이 친가는 책과는 담을 쌓은 집안이었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과 무심함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일’은 곧 생존이었고, 가족을 굶기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도리였다. 그런 적막한 곳으로 시집온 스물 한 살의 엄마는 아마 매일 밤 소리 없이 울었을 것이다. 친정과는 너무나 다른 공기 속에서 책은 유일한 위안이었고, 고된 노동 끝에 맞이하는 유일한 휴식이었다.
집안 생계는 나 몰라라 하고 밖으로만 도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절망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다. 두 딸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스물아홉의 가녀린 엄마는 건설 현장으로 달려갔다. 흙먼지 날리는 그곳에서 등짐을 지는 거친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우아하게 책을 넘기던 그 손으로 벽돌을 나르고 모래를 퍼 올리며, 엄마는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중년이 된 엄마가 여전히 집을 꾸미고 자신을 가꾸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예전의 나는 “돈도 없는데 그만 좀 하지”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것은 허영이 아니라 ‘저항’이었다는 것을.
자신을 지우고 오직 ‘엄마’로만 살아야 했던 그 모진 세월이 얼마나 억울하고 시렸을까. 엄마는 지금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건설 현장의 거친 흙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도도하고 우아했던 한 여자의 삶으로 말이다.
오늘도 엄마의 책장에는 새 책이 꽂힌다. 이제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엄마가 고른 그 예쁜 옷이 참 잘 어울린다고, 오늘따라 엄마가 참 우아해 보인다고 말해준다. 그것이 엄마의 잃어버린 20대를 복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도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습관이 있었나요? 시간이 흘러 이해하게 된 그들의 진심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