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의 엄마를 만난, 새벽 6시의 나

by 누드빼빼로

드라마 속 ‘엄마’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코스모스처럼 여리여리한 몸으로 “얘야, 밥 먹으렴” 하고 나긋나긋하게 부르는 모습.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가냘픈 대명사’와는 태생부터 거리가 멀었다. 자애로운 미소보다는 당찬 기세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보다는 “어디서든 꺾이지 마라”는 단호한 훈육이 내 유년의 배경음악이었다. 엄마는 우리를 온실 속 화초로 키우는 대신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야생화로 만들기 위해, 언제나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우악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우리를 몰아붙였다.

남편에 기대어 살기보다 "너희는 커서 꼭 커리우먼이 되어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엄마의 시계는 늘 새벽 5시에 맞춰져 있었다.

영하의 추위나 타는 듯한 무더위도 엄마의 성실함을 이기지는 못했다. 엄마는 해가 뜨기도 전에 아침을 차리고 우리를 깨운 뒤 곧장 전장 같은 출근길에 올랐다. 밤 9시가 넘어 돌아온 엄마의 ‘2차전’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배고픈 두 딸을 먹이고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나면 시계는 늘 자정을 넘겼다. 세탁기도 흔치 않던 시절이라 엄마는 그 차가운 물에 직접 손빨래를 해가며 가난의 흔적을 박박 문질러 지워냈다.
​어린 마음에는 그런 엄마가 참 야속했다. 남들처럼 손잡고 다정하게 놀아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렸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의기소침해진 나를 살뜰히 보듬어주는 대신 “기죽지 마!”라고 호통치는 엄마가 차갑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는 방식이 달랐을 뿐, 자기만의 정공법으로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담임교사의 차별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 날, 빵과 우유를 박스째 사 들고 학교로 들이닥치던 엄마의 기세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전사’ 같았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가난해 보이지 않았다. 늘 빳빳하게 다려진 옷을 입었고, 성급하기보다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배웠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엄마는 가난이라는 구질구질한 배경 앞에서도 ‘자존심’이라는 조명만큼은 끝까지 끄지 않았다. 부잣집 사모님 같은 우아함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사실 엄마는 그 누구보다 품격 있게 그 고된 시절을 통과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엄마가 되었다. 이제 내 시계는 새벽 6시에 맞춰져 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아침을 준비한다. 퇴근 후 부랴부랴 저녁을 차리고 아이와 놀아주다 아이가 잠들면 밀린 빨래를 갠다. 지친 몸을 침대에 뉘으며 문득 깨닫는다. ‘아, 나 정말 엄마를 닮았구나.’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었을 그 새벽잠을 떨치고, 고된 노동을 견디며 가족을 먹여 살리던 엄마의 마음. 그 우악스러웠던 생활력의 본명이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배운다.

​놀라운 건, 엄마가 그 치열한 사랑의 대상에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법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족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으면서도 엄마는 스스로가 ‘여자’이자 ‘나’라는 사실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엄마가 여전히 또래보다 열 살은 젊어 보이는 건 결코 세월이 비껴가서 얻은 요행이 아니다. 세수를 하고 크림을 바르는 사소한 과정조차 자신의 얼굴을 귀하게 대접했다. 피곤에 절어 쓰러질 법한 날에도 엄마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진한 화장을 하는 법은 없었지만 늘 정갈했다. 매일 걷기 운동을 거르지 않고 20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근육을 다지는 건, 단순한 건강관리를 넘어 ‘나를 잃지 않겠다’는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자기 증명이었다.

어릴 적,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날이면 김밥을 싸 들고 우리를 공원으로 데려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돗자리에 누워 우리는 뛰어놀게 두고, 엄마는 그 찰나의 여유 속에 파묻혀 책을 읽었다.


최근 세번째 척추수술을 받고 드디어(?​)평생을 일만 하던 엄마가 비로소 전업주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하루는 여전히 반짝인다. 아침 운동 후 소파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엄마. 최근에는 가드너 수업과 노래교실까지 섭렵하며 삶의 정원을 가꾸고 있다. 여행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짐을 싸는 엄마의 뒷모습은 늘 가볍고 경쾌하다.

​이제 엄마처럼 늙고 싶다.

치열하게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취향과 고결함을 잃지 않는 사람.

고된 노동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 마주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의 평화를 온전히 누릴 줄 아는 사람.

어릴 적 그렇게 닮기 싫어 도망쳤던 그 강인한 여자가 실은 내가 도달하고 싶은 가장 완벽한 롤모델이었음을,


나는 오늘 아침 6시의 거실에서 고백한다.

엄마를 닮은 내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