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일지4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박수받는 것에 안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받는 것조차 거대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우리에게는 '미움받을 용기'가 절실하다. 하지만 조직을 이끄는 관리자들에게도 과연 그 용기가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던지는 '답정너'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정작 그들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안전하고 화려한 방패, '민주주의'를 꺼내 든다.
관리자는 누군가의 인사고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직업적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존재다. 그런 관리자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민주적 절차를 흉내 내는 것은 기만이다. "여러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결정했다"는 말은 보기도 좋고 명분도 훌륭하다. 하지만 세상일은 늘 아래의 의견이 온전하게 수용되거나 반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조직이라는 토양에서 제대로 실현되기 힘든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관리자의 이러한 행태는 종종 중간 관리자와 일반 직원 사이를 교묘하게 갈라놓으며, 조직의 근간을 흔든다.
진정한 리더십은 미움받을 용기에서 시작된다. 내가 내린 결정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온전히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는 것, 그것이 관리자가 가져야 할 고독한 의무다. 그러나 현실의 복판에서 우리는 종종 이와는 다른 풍경을 목격한다.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관철하면서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관리자들은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 과정에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섞어 넣음으로써 '모두의 합의'라는 면죄부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겉보기에는 유연하고 포용적인 조직 문화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권위가 숨어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간 관리자와 일반 직원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는 광경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왜 우리 조직 문화에 뿌리내리기 힘든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관리자는 중간 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직원의 의사를 직접 반영했다고 생색을 낸다. 그리고 "직원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하기 때문에 중간 관리자는 무조건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나는 이런 과정이 직원과 중간 관리자를 이간질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허울을 이용한 교묘한 권위주의에 불과하다.
어느 조직의 사례를 들어보자. 상급 관리자인 A는 이미 특정 사업의 방향을 확정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권위적인 인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실무를 책임지는 중간 관리자들을 건너뛰고 하위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여러분의 참신한 의견을 직접 듣고 싶다. 중간 관리자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유롭게 말해달라"며 환하게 웃었다.
직원들은 열광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사실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결과는 본부장이 원하던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그는 직원들이 쏟아낸 수많은 의견 중 오직 자신의 계획과 일치하는 부분만을 골라내어 '직원들의 강력한 요청'이라는 명분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현실적인 실무의 한계와 리스크를 관리하던 중간 관리자들의 고언은 '변화에 저항하는 태도'나 '기득권의 꼰대질'로 치부되었다.
결국 상급 관리자는 '직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 리더'라는 명예를 얻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실질적인 업무 책임을 지는 중간 관리자들은 실행 불가능한 과업을 떠안게 되었고, 직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관리자의 의지를 관철하는 도구로 소모되었을 뿐이다. 상급 관리자가 내세운 민주주의는 결국 조직 내의 신뢰 구조를 파괴하고,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정치적 도구였다.
또 다른 사례는 성과 지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상급 관리자 B는 부서원들이 도저히 달성하기 힘든 높은 목표치를 설정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를 강제로 지시하면 반발이 클 것을 우려해 '자율 목표 설정 위원회'라는 형식을 빌렸다. 그는 위원회에서 "여러분이 스스로 정한 목표이니만큼, 달성 시 확실한 보상을 약속한다"며 민주적 절차를 강조했다.
그러나 인사고과권을 쥐고 있는 관리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구성원은 없다. 직원들은 관리자의 의중을 살피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가혹한 목표치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관리자는 한 걸음 물러나 그 과정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결정된 것처럼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때, 관리자의 본색이 드러났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이것은 여러분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직접 결정한 목표였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책임은 오롯이 여러분에게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철저히 책임 회피의 수단이 되었다. 관리자는 강력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휘두르면서도, 실패의 책임만큼은 '민주적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아래로 전가했다. 구성원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들을 낭떠러지로 떠미는, 가장 비겁한 형태의 권위였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선량한 제도로만 믿는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의 민주주의가 관리자의 사익이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과 결합할 때, 그것은 독재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된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독재는 대항할 대상이라도 명확하다. 하지만 위장된 민주주의는 동료들 사이에 불신의 씨앗을 뿌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중간 관리자를 배제하고 직원의 의사를 직접 반영한다는 명분은 언뜻 보기에 파격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직의 위계와 체계는 단순히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분산하고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무시한 '직통 민주주의'는 결국 중간 관리자를 무능하게 만들고, 직원들을 관리자의 의도를 정당화하는 장기말로 이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단순히 의견을 묻는 행위가 아니다. 그 의견이 가져올 파장과 리스크까지 함께 고민하고, 최종적인 결과에 대해 관리자가 무거운 책임을 지는 과정이다. 관리자가 자신의 결정을 위해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려오는 순간, 그 조직의 자생적인 풀뿌리는 시들기 시작한다. 윗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내뱉는 대답은 소통이 아니라 복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날카롭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 조직에서 행해지는 그 수많은 민주적인 절차들이 혹시 관리자의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충족시키기 위한 연극은 아닌지, 혹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세련된 알리바이는 아닌지 말이다.
담백하게 현실을 직시해보자. 세상의 모든 일이 구성원 모두의 의견대로 흘러갈 수는 없다. 때로는 강력한 리더십과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다만, 그 결단을 내릴 때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를 씌워 타인을 기만하지는 말아야 한다. 차라리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말하는 투박한 진심이, 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교묘한 권위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정직한 리더십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관리자가 휘두르는 민주주의는 그 어떤 칼날보다 날카롭다. 그 칼날에 상처 입는 것은 결국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실무를 챙기는 중간 관리자와, 그들을 믿고 의지하려 했던 직원들이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의 두 얼굴 중, 가면에 가려진 일그러진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넘어,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진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이며, 조직이 건강하게 숨 쉬는 유일한 길이다.
* 오늘 너무 화가난 일개 직원의 칼럼입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