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미혼모가되었습니다 6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참 오만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근거 없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학원 뺑뺑이는 절대 안 돌릴 거야", "아이는 흙 파먹으며 뛰어놀아야지", "하고 싶은 것만 시키는 쿨한 엄마가 될 거야." 대단한 교육 철학이라도 있는 양 떠들었지만, 사실 그건 육아라는 실전 게임에 접속하기도 전의 튜토리얼 같은 소리였다.
그런데 막상 아이라는 거대한 변수가 내 삶에 침입하자, 나의 철공성 같던 원칙들은 하나둘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주 사소한 타협이었다. 학습지 하나, 문화센터 프로그램 하나를 신청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건 학원이 아니라 경험이니까 괜찮아." 그때는 몰랐다. 그게 원칙의 붕괴가 아니라, 비로소 내가 '현실 부모'로 입성하는 절차였다는 것을.
진짜 위기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찾아왔다. 맞벌이 부모의 고육지책인 돌봄교실. 아이는 그 공간을 견뎌내지 못했다. 재미없다며 칭얼대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형들이 무섭다며 울먹였고, 급기야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서툰 거짓말까지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그 속사정을 알게 된 날,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아이는 울면서 "차라리 혼자 집에 있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덟 살 아이를 빈집에 덩그러니 두는 건 방임이고, 억지로 돌봄교실에 밀어 넣는 건 고문이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게 경멸하던 '학원'이었다.
왕복 셔틀버스 타는 시간까지 포함해 장장 세 시간.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내 오랜 다짐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학원 셔틀버스에 아이를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참 복잡했다. '학원 안 보내겠다'던 그 호기로운 여자는 어디로 가고, 아이를 세 시간이나 길바닥에 뿌리게 만든 엄마만 남았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거봐, 너도 결국 별수 없지?"라며 비웃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정말 '실패'일까?
아이를 경쟁의 굴레에 밀어 넣고 싶지 않은 마음과,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은 둘 다 진심이었다. 남들과 다르게 키우고 싶지만 뒤처지게 하고 싶지는 않은 그 모순적인 마음 또한 부모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본능이었다. 내가 틀린 선택을 한 게 아니라, 그저 그 순간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우회로'를 찾은 것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답을 정해놓고 아이를 끌고 간 적이 없었다. 아이의 표정을 살피고, 아이의 눈물 섞인 고백을 듣고, 함께 고민하며 조금씩 방향을 수정해왔을 뿐이다. 비록 애초에 계획했던 직진 코스는 아니지만, 굽이굽이 돌아가는 이 길 위에도 분명 아이와 내가 함께 쌓아가는 서사가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정답을 아는 현자가 되는 과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끊임없이 "이게 맞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프로 고민러가 되는 일이었다. 내 선택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손을 놓지 않는 것. 어쩌면 그 불안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정직한 양육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흔들린다. 옆집 아이의 스케줄을 들으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의 지친 얼굴을 보면 다시 미안함이 차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흔들리고 있다는 건, 그만큼 아이를 세심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니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만 자라는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 과정에서 유연해지고, 솔직해지며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학원은 안 보내겠다던 뻣뻣했던 나는 죽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경로를 재탐색하는 유연한 엄마가 태어난 셈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완벽하지 않은 선택을 한다.
대신,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고민하고, 아이의 눈을 보며 다음 발자국을 내디딘다. 아마 앞으로도 수없이 흔들리겠지만 뭐 어떤가.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짚으며 함께 자라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