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상사로부터 욕설배달 서비스를 받았다

갓생일지 4

by 누드빼빼로

교사들 사이에는 “진짜 좋은 선생님은 명예퇴직을 선택한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돈다. 정년을 앞두고도 수업을 어려워하는 아이를 쉬는 시간마다 불러 다시 가르치는 노교사의 뒷모습을 볼 때면, 저게 바로 닮고 싶은 진짜 교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라는 조직 안에는 그 반대의 길, 즉 오로지 ‘승진’이라는 괴물에 잡아먹힌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참 투명하다. 본인은 화장실을 엉망으로 쓰면서 학생이 그러면 누구보다 불같이 화를 내고,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져 남의 물건을 제 것처럼 쓴다. 심지어 본인이 힘들다며 이미 약속된 수업을 못 하겠다고 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은 단연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함)’의 표본들이다.

​내가 모시던 한 중간 관리자가 그랬다. 그는 실력이 뛰어나 장학사 발령을 앞둔 우리 부장님을 몹시 무서워했다. 부장님께 화를 내고 싶은데 감히 그러지 못하니, 그 화살은 늘 만만한 나에게 돌아왔다. 그는 수시로 나를 불러 세워두고 부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나에게 쏟아냈다. 때로는 입에 담기 힘든 육두문자가 섞여 나왔다. 나는 그 앞에서 그저 죽은 듯이 서 있어야 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나의 위치. 그는 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어른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책임감도 컸다. 결국 그 굴레들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욕설 배달 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장학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더니, 조례 가봐야 한다며 일어서는 나를 굳이 다시 불러 세워 부장님 욕까지 얹어주었다. 그 1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몸속에 사리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절대로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저렇게 추한 권위 뒤에 숨지는 말아야지.

​최근 이사를 하며 짐을 정리하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써주신 가정통신문을 발견했다. 반듯한 글씨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ㅇㅇ아, 넌 세상을 많이 아는구나. 그런데 실력을 키우렴. 세상에 너를 돕는 사람은 없단다. 결국 네 실력이 너를 돕는단다.”
​그 문장을 읽는데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비록 기간제라는 이름으로 불안한 줄타기를 하던 시절이었지만, 내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려고 발버둥 쳤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잘 자라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무례한 관리자 밑에서도 내가 끝내 무너지지 않는 건, 언제든 내 실력을 믿고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은 단순히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이 아니었다. 나쁜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내 존엄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패였다.


​이제 나는 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아도 될 만큼의 실력을 쌓았고, 더 이상 저런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최악의 어른들을 보며 배운 역설적인 교훈이다. 실력을 키워라, 그래야 너를 지킬 수 있다. 그 방패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내가 원하는 교실을 스스로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