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미혼모가되었습니다 6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처의 말과 니체의 문장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지쳐 있을 때 가만히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말들을 찾다 보니,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삶을 통찰하는 여러 문장들이 나를 붙잡아주었다.
기독교의 사랑, 부처의 깨달음, 니체의 통찰이 서로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모두 ‘나’라는 한 사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나는 오래도록 한 가지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고, 동생과 차별을 받았고, 그래서 나는 늘 덜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
어린 시절에 자리 잡은 이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진 순간도 있었다.
특히 원하든 원치 않든, 큰아이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미혼모로 살아가게 되었을 때였다.
세상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평범하고 싶었지만, 평범함과는 먼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날마다 나를 찔러댔다.
‘정상 가족’을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렸고, 자존심을 넘어 자존감까지 무너뜨렸다.
면접장에 앉아 있으면 면접관은 서류보다 내 가족관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남편은 뭐 하세요?”
“아이는 있나요?”
정답을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거짓말에 서툴렀다.
사실대로 말했더니 사람들은 ‘사연’에만 관심을 가졌고, 나는 번번이 떨어졌다.
그 반복이 너무 길어지자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인가’라는 오해가 진짜 믿음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어느 날,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가 걱정 어린 말로 나를 조심스럽게 타이르던 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서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너무 예민했고, 너무 지쳐 있었다.
그래서 괜히 발끈했고, 충동이 솟구쳤다.
나는 줄을 목에 감고 "내가 죽으면 된다는 거네? 내가 죽으면 되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숨이 막히고 엄마를 생각하면 죄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죽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나 좀 봐줘. 나 좀 사랑해줘.”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 외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가장 어리석고 위험한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그날, 줄을 감으면 피가 얼굴로 몰려 퉁퉁 붓고 멍이 들어버린다는 아주 쓸모없고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가를 하루 쓰고 이튿날, 멍이 내려앉지 않는 상태로 출근을 해야 했다.
회사에서는 알레르기 때문에 숨이 막혀 이렇게 되었다고 둘러댔다.
평소 거짓말이 서툴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렇게 나의 삶은 무너져 있었고, 나는 그 무너진 곳에 그대로 앉아 울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단순한 문장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평온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가 대신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독이고 격려하고 위로해야 한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에 몇 번씩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괜찮아.”
“지금 잘하고 있어.”
“오늘도 버텼어, 고마워.”
마일리 사이러스의 노래 《Flowers》도 큰 울림을 주었다.
<I can buy myself flowers — 꽃은 내 손으로도 살 수 있고
Talk to myself for hours — 몇 시간이고 나 자신과 이야기할 수 있고
Yeah, I can love me better than you can — 그래, 난 너보다 더 날 잘 사랑할 수 있어.>
그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울컥했다. 가사를 찾고 난 뒤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길 바랐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고 안아주길 바랐다.
정작 내가 나에게 단 한 번도 그런 사랑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돌아보면, 극단적인 행동으로 엄마에게 보이고 싶었던 건 사실 하나였다.
“엄마, 나 좀 봐줘. 나 좀 사랑해줘.”
그 말을 단순하게 하면 될 일을, 나는 너무 복잡하게, 위험하게 표현했다.
이제는 안다.
“엄마, 나 힘들어. 나 좀 안아줘.”
그 한 문장이면 충분했을 거라는 것을.
삶은 때때로 우리를 수렁으로 끌어들이지만, 거기서 다시 걸어나오는 힘도 우리 안에 있다.
부처의 말처럼, 니체의 말처럼, 그리고 성경의 말처럼 — 결국 우리가 기대어야 할 것은 내면의 단단함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을 떠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
그 사랑이 단단해질수록, 나는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히 괜찮은.
너무 늦지도 않았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나를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