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4
혼자 인 줄로만 알았는데,
가을이다.
낙엽이 떨어지고 스산한 기운이 몸을 감싸는 오늘,
시어머니에게서 톡이 왔다.
“너를 보며 응원한다.
나는 너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긴 세월의 온기가 켜켜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늘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분이었다. 연락이 조금만 뜸해져도 “요즘 무슨 일 있지?”라며 먼저 수화기를 드셨고, 통화 중 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면 “괜찮니?”라고 다정하게 물으셨다. 내 마음의 파동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사람, 그분은 그런 존재였다.
강산이 한 번 넘고 반이 더 흐르는 시간 동안,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내 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었고, 내가 넘어질 때마다 기꺼이 등을 내어주셨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내가 새로운 출발을 결심했을 때다. 잘 살아보겠다며 다른 남자를 만나 새로 시집을 간다는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냉장고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어머니, 세상에 시집가는 며느리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는 시어머니가 어디 있어요?”라며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어머니는 “여깄다!”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이건 우리 며느리가 새 출발 하는 데 필요한 거잖아. 다른 건 몰라도 냉장고는 꼭 있어야지.”
그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며느리라는 역할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그 거대한 마음 앞에 나는 속수무책이 되었다.
어머님은 잘 살아 보겠다고 다른 남자 만나 새로 시집간다는 며느리에게 냉장고를 선물해 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하지만 삶은 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불행한 일을 겪고 다시 돌아와 힘겹게 버티던 나를,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다그치지 않으셨다. 왜 다시 돌아왔느냐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도 않으셨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내가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불행한 일을 겪고 다시 돌아와 힘겹게 버티던 나를 그분은 ‘있는 그대로’ 믿어주셨다.
시집 갔다 다시 돌아온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셨다.
성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가 되고 나니 차가운 세상은 살얼음보다 차가웠다.
첫째를 낳기도 전에 아이의 아빠가 하늘로 떠났을 때, 사람들은 잔인한 말을 쏟아냈다.
“서방 잡아먹은 X.”, “팔자 사나운 X.”
막내를 낳고 나니 "더러운 X"이라는 꼬리표가 하나 더 붙었다. 그 말들이 내 등에 날카로운 돌덩이처럼 박혔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달랐다.
"그 나쁜 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어. 나쁜 XX, 우리 착한 며느리를.. 에잇 나쁜X "
나 대신 크게 욕해주시고는
"그런데 나는 네가 돌아와서 너무 좋다."
그 한마디에 나는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세상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해도 돌아갈 품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했다.
혹시나 시댁에 내려가는 길이 고단할까 봐, “이번엔 그냥 쉬어라. 여긴 다 괜찮다.”
하며 그리운 마음을 꼭 눌러 담으셨다.
사실은 보고 싶으셨을 텐데, 내 마음이 무거워질까 봐 먼저 배려해주신 것이다.
만나면 항상 팔짱을 먼저 끼시고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맛난 음식도 함께 한다. 큰 아이와 막내. 모두 함께.
어머니 곁에는 늘 그림자처럼 시아버지가 계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던 나에게, 아버님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품’을 다시 선물해 주신 분이었다.
내가 큰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늦깎이복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님은 종종 직접 차를 몰고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다.
“누빼야,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마음 가는 대로 해라. 넌 뭐가 되어도 크게 될 사람이다.
그냥 지금처럼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된다.”
그 말과 함께 주섬주섬 몇 만 원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시던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에 쥔 지폐가 아니라, 그 손끝에서 전해지던 따뜻한 믿음이 온몸을 울렸다. 그분의 목소리가 내 귀를 울릴 때마다 내 안에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의 장면은 지금도 내 마음 한켠에 영화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내 삶의 등불이 되어준다.
그분들 덕분에 사람은 누군가의 믿음 안에서 자란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진짜 어른이란,
누군가를 통째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믿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어머님은 언제나 말씀하신다.
“넌 잘하고 있어. 네가 얼마나 대견한지 몰라.”
아버지는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시며, 가끔씩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다.”는 말로 마음을 대신 전하신다.
그 두 분이 있었기에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온기를 느낀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며느리였으며, 이제는 누군가의 엄마로 서 있는 지금,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믿음으로 마음을 키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믿음이 되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어쩌면 내가 J의 아빠를 만난 이유가 가장으로만 살았던 나에게 부모를 만나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