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내집마련기 21
신문고에 쓴 한 편의 글이 법을 움직였다
국토부와 LH 주택공사의 핑퐁 게임에서 결국 졌다고 생각했다.
보통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으면 늦어도 2주, 길어도 한 달 안에는 답변이 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나의 민원은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마음 한쪽은 늘 무거웠다.
나는 억울한 일을 겪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속이 울렁거리고, 열이 올랐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진땀이 흐른다. 신경성 통증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포기하기까지 두 달이 넘게 걸렸다. 매일 밤 울었다. 괜찮다가도 문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원해서 미혼모가 된 것도 아닌데, 제도의 틈에서 또 한 번 밀려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했다.
그렇게 마음을 접으려던 어느 날, 044로 시작하는 번호가 휴대전화 화면에 떴다. 스팸 전화가 워낙 많아 모르는 번호는 거의 받지 않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전화를 눌렀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한 주무관이었다. 최근 사무실 이전으로 답변이 늦어졌다는 말로 통화는 시작됐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는 내가 제출한 민원은 충분히 주거권 침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신혼부부에게 가점을 주고, 무주택 기간을 혼인신고일부터 계산하는 제도는 새로운 가정의 주거 안정을 위한 취지인데, 자녀를 출산해 실질적으로 새로운 가정을 이룬 경우 역시 같은 취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시행령을 검토해 보니, 내가 제기한 문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나의 경우 현 제도 상 구제의 방법이 없으나 이미 유족연금을 받고 있고, 명절과 주말이 겹쳐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사이 배우자가 사망했다는 사실, 결혼식이라는 실체가 있었고 아이를 출산했다는 점을 근거로 예비입주자 지위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덧붙였다. 원하면 순위를 1순위로 올려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지만조심스럽게 거절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처음에 받은 번호 그대로를 정당하게 인정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통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무관은 관련 법을 고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 혼자 할 수 없는 부분이어서 미혼모와 한부모 가족을 지원하는 단체 몇 곳을 떠올렸고, 대표들과 연결해 드렸다. 이후로 긴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미혼모 역시 신혼부부와 유사한 지위로 청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보완되었고,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던 대출과 주거 지원의 문이 조금 더 넓어졌다.
처음에는 그저 나 하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의 사연이 누군가에게는 다음 기회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덜 아픈 선택지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혼자 싸운 것 같았던 시간이, 사실은 많은 사람의 삶을 아주 조금 움직이고 있었던 셈이었다.
나는 국어 교사다. 늘 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국어를 배우는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다. 모든 시험 문제는 글로 만들어지고, 그것을 정확히 해석하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나누는 모든 대화와 세상의 정보는 결국 말과 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내가 가장 강조하는 국어를 공부해야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세상은 내가 바란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억울한 일이 있거나 불편한 일이 있을 때 참지 말라고. 더우면 덥다고 말해야 한다. 다만, 덥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화가 난다고 감정을 먼저 쏟아내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무엇이 불편한지, 왜 바뀌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 비록 바로 해결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국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너희들이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의 억울함을 대신 말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라고. 그것이 사회를 조금씩 나아지게 만드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이번 일은 내가 평소 하던 말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소중한 경험이었다. 속상하다고 소리만 친다고 세상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고, 왜 바뀌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말하는 힘.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태도. 그리고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모든 것이 모이면 제도 하나쯤은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그리고 약 6개월의 기다림 끝에 결국 10년 뒤 분양 전환이 되는 공공임대 주택에 입주했다. 아이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던 날, 오랫동안 참아왔던 숨을 그제야 내쉬는 기분이었다. 이제부터는 분양을 받기 위해 다시 돈을 모아야 한다. 더 성실하게, 더 단단하게.
국민신문고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억울했고, 지치지 않으려 애썼고, 아이를 위해 버텼을 뿐이다. 그 결과가 나 하나의 구제를 넘어 사회적 변화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작은 목소리 하나가 제도의 가장자리를 두드렸고, 그 울림이 누군가의 내일을 조금 바꾸었다. 나는 이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다시 말할 것이다.
불편하면 말해라. 억울하면 표현해라. 근거를 찾아 설명해라.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