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까멜리아문학상 동상: 만년필

미혼모 내집 마련기 번외

by 누드빼빼로

올해 초, 생일 선물로 만년필을 받았다. 말로만 들었던 만년필 선물에 마음이 설렜다. 처음 접하는 만년필에 잉크를 넣는 것조차 힘들었다. 뚜껑은 어떻게 여는지 이렇게 넣어야하는지 저렇게 넣어야하는지 뚜껑을 잠그려니 잠기지도 않고. 낑낑대다가 잉크를 끼워 넣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만년필로 이름을 썼다.

“○○○”

일기장에 적어 놓았던 글귀도 이름 밑에 써보았다. “작은 한 걸음이 모여 큰 길이 된다.”

뭔가 예술적여보이고 부드러운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서툴고 느리지만, 이 만년필로 나만의 기록을 이어가겠다고 피식 웃었다. 왜 부모가 자녀에게 긴 세월 간직할 선물을 만년필로 주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볼펜이 더 익숙했고, 업무를 할 때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반년쯤 흐른 뒤, 나는 만년필을 서랍 속 깊숙이 넣어 두었다.

11월, 새해를 준비하며 새 일기장을 사고 서랍 속 만년필을 꺼냈다. 손에 쥐자 다시 느껴보는 만년필의 감촉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새 일기장을 만년필로 채우겠노라 다짐했지만 만년필은 일기장 바닥에 생채기만 낼 뿐이었다. 잉크가 말라 글씨가 잘 써지지 않은 탓이었다. ‘잉크가 굳었나’ 싶어 새 잉크를 넣고 하룻밤 세워두었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글씨는 흐르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 마음에서 멀어졌던 것처럼, 만년필도 오랜 방치로 제 역할을 잃었던 것이다.

삶도 비슷했다.

계약직으로 같은 직종에서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해는 동료들과 마음이 잘 맞아, 업무 외 시간에도 함께 웃고 떠들며 추억을 쌓았다. 크리스마스 즈음 큰 행사를 마치고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근처에 새로 생긴 맥주집이 생겨 호기심에 문을 열었다. 테이블은 칸칸이 문이 달린 방에 있었고 전화기로 주문하는 독특한 구조였다. 넷이 앉기에는 비좁은 공간에다 값도 비쌌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깨를 구기고 앉아 웃음과 수다로 반안을 가득 채웠다..

“여긴 연인이 단둘이 있어야 할 곳 같아요.”“그러게요, 그런데 참 재밌네요” 전화로 주문하는 것도 재밌고 블루투스 스피커로는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맘껏 바꾸어 들을 수 있었다. 생경한 경험을한 김에 요즘 학생들에게 유행한다는 VR 체험도 해보기로 했다. VR 체험을 하는 길 마저도 한 껏들뜨고 재미있었다.

VR 체험을 할 동안 익숙하지 않는 나는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기어다닌 덕에 깔깔깔 웃으며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 그 순간이 참 즐거웠다. 일과 육아에 지쳐 있던 나에게 그들은 활력소였고 나를 웃음 많고 호기심 많은 ‘나’ 자체로 살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 직장을 옮기고 각자 삶이 달라지면서 연락은 뜸해졌다. 결국 그 관계는, 서랍 속 만년필처럼 다시 꺼낼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나의 활력소를 텃밭에서 찾던 어느날이었다.

한 참 토마토가 자라던 초여름. 다른 이의 텃밭에 자라는 토마토는 예쁘고 깔끔하게 위로 쭉쭉 뻗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지만, 우리 토마토는 옆으로만 퍼져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다른 집 토마토들과는 뭔가 달랐다. 왜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만 퍼지는 걸까? 토마토 가지와 무성해진 잎은 그늘을 만들어 달팽이와 지렁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중심 줄기는 무거운 가지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졌다. 지난주 분명히 아들 가지 몇 개를 잘라냈음에도 또 다른 가지가 문제를 일으켰다.

아차 싶었다. 토마토 가지를 과감히 잘라내야 했지만, ‘조금 더 수확하고 싶다’는 욕심에 과감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아들 가지가 생기면 바로바로 잘라냈어야 했는데, 가지치기를 너무 늦게 한 것이다. 영글지 못하고 찢어진 가지에 아슬아슬 붙어있는 토마토 송이를 보고 마음이 아리고 안타까웠다.

가지치기를 제대로 못해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건강하고 좋은 가지만 남기고,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새순이 돋고 열매가 건강하게 자란다. 하지만 올해의 농사는 나의 미련함으로 토마토를 뽑아내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열무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새싹들이 다닥다닥 붙어 자라다 보니 뿌리가 얽혀버렸다. 수확은커녕 서로의 성장을 막고 있었다.

문득, ‘인간관계도,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을 챙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연락하고 내 귀로, 내 눈으로 사람들의 사정을 알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을 다 챙기며, 때로는 나를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이해하려 애썼다. 과거의 인연에 목매고,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이에게 상처받으며 속상한 마음을 담아두었다.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혀진 인간관계에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시 연락을 하기 위해 애썼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었다.

삶이라는 게 어려움이 닥치면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법인데 변한 나의 삶이 그들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슬펐다. 이미 말라버린 잉크가 담긴 만년필을 다시 사용할 수 없듯 잊혀진 인연은 다시 붙이기 어렵다.

그제야 마음속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오래된 인연들, 이미 말라버린 관계들을 천천히 정리했다. ‘좋았던 기억은 남기되, 붙잡지는 말자.’ 그것이 가지치기였다.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는 둘째의 웃음, 새로운 사람들의 인사, 작은 기쁨이 채워졌다.

삶은 변했고 인연은 끊어졌지만 아이를 통해 만나는 새로 인연들이 차례차례 내 삶을 채웠다. 코로나 19 시기에 산후조리원에서 유일한 조리원 동기, 새로운 직장에 만난 새로운 동료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

지나간 인연은 서랍 속 만년필처럼 추억으로 되었지만, 새로운 인연은 지금의 나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에 가지처럼 뻗어 나가고 있다.

다시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잉크가 흐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다시 손을 잡고, 다시 쓰는 경험이었다. 오래 잠들었던 잉크가 살아나듯, 삶과 관계도 다시 이어지고, 새로 뻗어 나간다.

삶은 잃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고 가지치기하며 자라는 일이다. 만년필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언제 나를 꺼내 쓸 거니?”

나는 웃으며 답한다.

“지금.”

그리고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다. 나, 첫째와 둘째, 그리고 새롭게 뿌리내리는 관계들의 이야기를. 옆으로 퍼지던 가지도, 솎아낸 열무 새싹도, 서랍 속 만년필도 모두 나의 삶과 관계를 배우게 하는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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