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따뜻하게 만드는 집 고르기

미혼모 내집마련기 8

by 누드빼빼로

동생의 발령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잠시 고민했고, 곧바로 결심했다.

왕복 세 시간, 길게는 네 시간까지 이어지는 출퇴근을 감당하는 것은 인간적인 삶이라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시간과 숨을 돌리는 시간까지 전부 도로 위에 내어주는 삶은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사를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가진 돈 안에서 가능한 지역을 하나씩 좁혀 갔더니

결국 성남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의 기준은 단순했다.

무엇보다 출근이 가능한가, 교통이 편리한가, 그리고 예산 안에서 집을 구할 수 있는가.

머리로는 정리했어도 마음은 쉽게 따라오지 않았다.

집을 보러 간 날,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판단을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1월의 찬 공기 속에서 J와 공인중개사분의 차에 올라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던 순간이었다.

‘야옹—’ 하고 고양이 한 마리가 차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고, 그 뒤로 바람에 날리던 종이 몇 장이 허공에서 허둥거리듯 흔들렸다.

그 순간, 이유 없이 마음 한 구석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바람 때문이었을까, 계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 때문이었을까.

다닥다닥 붙어서 비탈길을 따라 선 연립주택 같은 빌라들, 오래된 담벼락,

햇살이 잘 닿지 않아 그늘이 길게 깔린 골목.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어두워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결코 크지 않다.

국민임대 아파트 작은 평수였지만 방이 두 개, 볕이 참 잘 드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그 빛이 주는 온기 덕분에 작은 공간이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 집과 비교되어서였을까.

방 두 개의 작은 빌라였다. 원룸에서 옹기종기 살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좁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간의 크기보다는 삶의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작은 집에 사는 것은 큰 두려움이 아니었다.

문제는 ‘온기’였다.

동네 자체에 햇빛이 잘 들지 않아서인지, 아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인지, 골목을 걷는데 자꾸만 마음이 어두워졌다.

사람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어느 집에서 밥 냄새가 새어나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동네는 이상하게 더 삭막해 보였다.

집이 좁아서가 아니라, 동네 분위기가 견고한 회색빛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일상은 내 마음을 계속 차갑게 만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핑계는 넷이 살기는 좁아서요!,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욕먹이는 일일 테니까)

지금 돌아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1년 동안 출퇴근으로 꽤 고생했지만, 그 덕에 저축이 되었고 결국 방 두 개에 거실까지 있는, 두 블록만 걸으면 산책로와 놀이터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집은 해가 아주 잘 들었다는 점이다.

아침이면 방 안 가득 햇살이 쏟아지고, 저녁 무렵이면 기분이 좋아지는 노란빛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작은 따뜻함이 일상의 균형을 단단하게 잡아주었다.

살다 보면 깨닫는다.

‘집’이라는 공간을 고를 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넓이나 시설이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어떤 기운이라는 사실을.

고장은 고치면 된다.

낡은 곳은 수리하면 된다.

하지만 동네의 분위기, 햇빛의 방향, 사람 사는 소리, 골목의 온기는 노력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게 집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말한다.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모르겠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를 좋아한다.

저녁이면 누군가 창문을 열고 밥 냄새가 새어 나오는 동네,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까운 데서 들리는 동네,

작은 산이나 물길이 곁에 있어 계절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삭막함을 이기고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초품아, 역세권, 학세권, 미래 가치, 집값 상승 가능성을 먼저 말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의 온기가 있는지,

볕이 드는지,

마음이 편안한지를 본다.

집이란 나를 보호하는 공간이자 하루의 시작과 끝을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결국 ‘살기 좋은 곳’이란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안정되는 곳, 가족의 하루가 온기를 품을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집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


햇빛이 잘 드는지
– 남향 여부보다 실제로 하루 동안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가 더 중요하다.

동네의 온기
– 아이들 소리, 사람 사는 기척, 골목 분위기 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다.

생활 동선의 편안함
– 출퇴근과 장보기, 병원·학교 등의 접근성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지 본다.

가까운 자연
– 야트막한 산이나 공원, 산책로, 물길 등의 유무는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집이 주는 첫 느낌
–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존재하는 ‘따뜻하다/차갑다’의 감각을 무시하지 않는다.



집이라는 공간을 고를 때,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마음보다 ‘머물고 싶다’는 감정을 더 중시해야 한다.

삶의 질은 거창한 성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맞이하는 소소한 순간들

—하루 끝에 몸을 기대는 소파의 감촉,

창밖으로 스며드는 빛,

골목을 흐르는 공기의 결,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일상을 지탱하는 요소들에서 비롯된다.

이런 요소들이 포근하게 나를 감싸줄 때, 비로소 ‘살기 좋다’는 판단을 내린다.

결국 좋은 집을 고른다는 것은 앞으로의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따뜻한 동네를 선택하는 것은 내 마음의 온도를 지키겠다는 의지이고, 햇빛이 잘 드는 집을 고르는 것은 일상의 밝음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작은 자연과 골목의 숨결을 중요하게 여기는 선택은 주변과 어울려 살며 스스로의 숨구멍을 챙기겠다는 삶의 방식이다.

집을 고르는 기준에는 결국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과 삶을 바라보는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확신하게 되었다.

‘살기 좋은 곳’은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가장 온전히 지켜주는 곳에 있다.

그 온기가 인생의 버팀목이 되고, 집이라는 공간은 마음과 습관과 미래를 빚어내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된다.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를 묻는 일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마음과 이어지고, 결국 따뜻한 집은 삶을 바꾸며 좋은 동네는 마음을 단단히 세워준다.

이런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어디에 살든지 ‘살기 좋은 삶’을 스스로 만들어낼 힘을 갖게 된다.

공간이 주는 온기에서 시작된 작은 행복의 습관이 삶 전체를 바르게 세워주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감사하다.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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