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내집 마련기9
처음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삶은 늘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어느 날 나는 작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미혼모 시설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어둡고 낯선 방이었지만,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만큼은 그 어떤 집보다 따뜻해 보였다.
우리 둘의 첫 번째 집이었다.
미혼모 시설을 나오며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친정이었다.
그러나 친정은 언제나 완전히 편히 기대기 어려운 곳이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책임감이 뒤섞인 감정들은 오래 머물수록 더 무거워졌다.
아이의 울음소리 하나에도 괜스레 눈치가 보이던 날들. 나는 결국, 더 이상 이 집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모자원으로 향했다.
작은 방 하나였지만, 그 방에서 처음으로 ‘우리 둘만의 생활’이라는 걸 시작했다.
모자원에서의 일상은 규칙적이고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이 우리를 어느 정도 지탱해주었다.
매일 저녁 아이를 재우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조금만 더 힘내자. 조금만 더.
이후 서울의 친구 집에 잠시 몸을 의탁한 시간이 있었다.
짐을 정리할 필요도 없었던 짧은 머무름이었지만, 그 불안정함은 내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
언제든 떠나야 한다는 압박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기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이 아이는 언제쯤 한 집에서 오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음 집은 3층 가정집이었다. 다시 친정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오래된 집이었고, 창문 밖으로는 낯선 골목만 보였다. 가끔은 밤바람이 틈새로 스며들어 집 안이 서늘했지만 엄마와 동생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엄마의 얼굴을 보기가 여전히 미안했다. 본인의 팔자를 닮아 이렇게 되었다는 엄마이 죄책감이 더 컸을 테지만.)
그 다음 거처는 국민임대주택이었다. 낮은 임대료는 숨을 돌릴 여유를 주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약간의 평화를 누렸다.
아이가 조금 더 크고 안정적인 생활 리듬을 만들 수 있었던 곳.
그곳은 나에게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집이었다.
그러나 진짜 전환점은 그다음이었다.
분당의 첫 전세집.
전세 계약서를 쓰면서 손이 떨렸다.
내가 이렇게 큰 결정을 하다니. 대출도 끼어있던 탓이라 손이 부들댔다.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미뤄두었던 감정들이 갑자기 서글프게 밀려왔다.
서글픔 속에 묘한 자부심도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분당 전세집은 밝고 조용했다.
그곳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고, 다시 내 인생의 방향을 생각할 여유를 얻었다.
하지만 우리의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욕심때문이었다.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가 컸으면 하는 마음.
우리는 다시 한번 짐을 싸서 빌라로 이동했다.
이사할 때마다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다.
더는 예전처럼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이사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마음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지금의 광교 집에 도착했다. 창밖 풍경이 잘 내려다보이는 거실에 처음 서서, 나는 오래된 숨을 내쉬었다. 여기서라면… 여기서라면 조금 오래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도 또래 친구들과 공원에서 뛰어놀며 “엄마, 우리 집 좋아!”라고 말해주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나를 눈물 나게 했다.
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온 집들은 모두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겼다.
미혼모 시설은 용기를,
친정은 따뜻함과 미안함을,
모자원은 버티는 힘을,
친구 집은 불안 속의 희망을, 3층 집은 독립을,
임대주택은 안정감을, 분당 전세는 자존감을,
빌라는 선택의 자유를,
그리고 지금의 광교 집은 비로소 ‘정착’을 선물했다.
아들에게 “우리 집”이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해줄 수 있게 되기까지,
수없이 흔들렸고, 때로는 무너졌으며, 다시 일어섰다.
집을 찾는 여정은 결국, 나를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집은 벽과 지붕이 아니라, 나를 믿기 시작한 순간부터 생겨나는 것이라는 걸.
(이후 두 번의 이사를 하고 드디어 내집 마련을 할 수 있었다)
영구임대주택: 생계가 어려운 계층을 위한 가장 저렴한 주거 지원. 시세의 30% 내외로 임대료가 책정되는 경우도 있다.
국민임대주택: 무주택 서민,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주거를 할 수 있도록 제공된다. 시세의 60~80% 수준으로 임대료가 책정되고, 보증금과 월세 부담이 민간 시장에 비해 훨씬 낮다.
매입임대 / 전세임대 / 통합공공임대: 기존 주택을 매입하거나 전세로 들여와 무주택자에게 낮은 가격으로 재임대하는 제도. 경제적 여건이 다소 어려운 가구에게 기회를 준다.
이런 공공임대주택들은 단순히 “싼 집”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시세 대비 저렴한 임대료, 안정된 계약 기간, 무주택자 기준이라는 명확한 문턱
— 이 모든 것이 ‘주거 불안 → 삶의 불안’이라는 악순환을 끊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임대 기간에 있는 동안 악착같이 모아야 한다.
나라에서 주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빨리 탈출하기 위해 성장의 계기를 마련해야한다.
2025년 현재, 공공임대주택과 매입임대 주택의 공급 물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수만 가구가 예정되어 있어, 비교적 낮은 경쟁률로 확보 가능한 기회가 많다.
공공임대주택은 단순한 ‘임시 거처’가 아니라 장기 거주 가능하며, 때로는 분양 전환까지 가능한 유형도 있어 중장기 주거 계획을 세우기 좋은 기반이다.
내가 수차례 이사를 거치며 겪은 불안, 그 끝에서 만난 10년 뒤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안심, 아이를 재울 공간이 있다는 평온, 월세 걱정에서 벗어나 돈을 모을 여유 — 그 모든 것이 내 삶을 조금씩 바꾸었다.
만약 지금 집이 없거나, 전세/월세비 부담에 숨 막히고 있다면,
혹은 아이를 키우면서 안정적인 거처를 찾고 있다면,
나처럼 한 번쯤은 공공임대주택을 눈여겨보는 걸 추천한다.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집이 있어야 마음도 살아난다.”는 사실을 당신도 느낄 수 있을 거다.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