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임대아파트가 준 것은 집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미혼모 내집 마련기 11

by 누드빼빼로

국민임대가 내게 해준 일은,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움직일 힘을 준 것에 가까웠다.

동생의 도움을 받아 공무원임대아파트에서 지낸 지 몇 해가 지나자, 결국 이사를 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그동안 꼬박꼬박 넣어둔 청약저축이 드디어 제 역할을 할 때였다.

한부모라고 해서 모두 같은 기준으로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기초생활수급 한부모는 영구임대에 입주할 수 있고 생계비와 여러 바우처가 지원된다.

법정한부모는 정부가 규정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임대 우선권이나 교육비·피복비 등이 제공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부모들의 표현으로 ‘일반 한부모’였다.

제도적으로는 한부모이지만, 나라에서 홍보하는 모든 한부모 혜택에서 제외되는 한부모.

그래서 늘 일반 가정과 경쟁해야 했다.

임대아파트에 문을 두드릴 때마다 떨어졌던 이유는 항상 같았다.

부양가족 수가 적다는 것. 미혼모라는 이유로 자녀가 하나뿐이었고, 점수는 늘 아슬아슬하게 모자랐다.

그래서 이번 당첨은 더 기적 같았다.

수원 거주 기간이 오래된 덕분에 만점을 받았고, 청약저축을 오래 유지한 점수가 큰 힘이 되었다.

비록 예비 50번대의 먼 번호였지만, 언젠가는 안정적인 집이 생긴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이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빨리,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입주 소식이 왔다.

906호.

늘 1층에만 살던 우리에게 높은 층이라는 사실은 작은 설렘이었다.

다만 공간은 지금보다 작았고, 그 때문에 동생은 독립을 결정했다.

공무원임대아파트의 전세금을 나누어 보증금을 돌려받았더니 우리 둘에게 각각 집을 구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름으로 집을 계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꾸준히 일한 덕분에 전세자금대출도 어렵지 않게 승인되었다.

동생에게는 2천만 원을 건넸다.

내가 반백수이던 시절, 생활비를 도맡아 내느라 제대로 저축도 못 했던 동생이었다.

기꺼이 도와주고 싶었다.

국민임대는 2년마다 갱신을 해야 했다. 살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민임대 아파트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렴한 임대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 같은 한부모에게 모자원이 그랬듯,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 같은 미혼모였던 지인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 아이가 학교에서 ‘휴거지’라 놀림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단지 어디에 사느냐가 아이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지인은 결국 큰 대출을 끼고 브랜드 아파트로 이사했다.

1년쯤 지나 들은 소식이었다.

잘됐다고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동시에 국민임대라는 공간의 의미를 곱씹게 되는 계기였다.


그리고 내게도 다음 문제가 다가왔다.

재계약 기준이 강화되면서 4년 차에는 소득 때문에 갱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은 곧, 다음 이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국민임대는 일반 전월세보다 확실히 저렴하다.

저렴하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더 모을 여력이 생긴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그게 국민임대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머물라는 곳이 아니라, 언젠가 옮겨갈 집을 준비하라는 신호.

그래서 차곡차곡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이를 전학시키지 않으려면 필요한 돈은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 보증금은 1억 남짓이었지만, 주변에서 두 칸 정도 옮기려면 3억은 넘게 필요했다.

부족한 금액을 대출로 채운다 해도, 매달 이자를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어야 했다.

적어도 내 손에 1억 2~3천만 원은 있어야 하고, 앞으로 5천만 원은 더 모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빠듯한 월급으로 가능할까 불안했지만, 엄마와 함께 다시 허리띠를 졸라맸다.

입주한 지 1년 반 만에 다시 이사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살던 시간은 나에게 단순히 ‘저렴한 집’ 이상의 의미였다.
애초에 국민임대라는 제도가 주거 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 공간이 내 삶에 남긴 자취가 선명해진다.

시세보다 60~80%가량 저렴한 임대료는 분명 내가 20~40%를 더 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여유가 바로 다음 집을 향해 마음을 걷게 해준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영원히 머무르는 장소라기보다는, 다시 일어설 시간을 마련해주는 쉼터 같다고 느꼈다. 조급하게 뛰어오르라는 뜻이 아니라,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나아가 보라고 말하는 곳.

저렴한 임대료만큼, 우리는 조금 더 모을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된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음 집의 풍경이 달라지는 건, 아마도 결국 우리 몫이다.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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