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테크 일지3: 장바구니는 비워도 영혼은 비울 수 없어

미혼모 내집마련기20

by 누드빼빼로

나의 일상은 대체로 짜다.

단순히 돈을 아끼는 차원을 넘어, 내 삶은 '짠테크'라는 단단한 생활 양식이 뿌리내려 있다. 사고 싶은 것이 생기면 결제 버튼 대신 장바구니에 담는 것으로 쇼핑 기분을 대신하고, 며칠 뒤 식어버린 물욕을 확인하며 장바구니를 비울 때 묘한 쾌감을 느낀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날에는 예쁜 쓰레기를 사는 대신 주식이나 발행어음을 한 주라도 더 산다. 숫자가 불어나는 것을 보며 지름신 강림에 기뻐한다. 누군가는 지독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돈이 불어나는 소리가 듣기 좋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도저히 소금기를 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문화생활과 여행"이다.

내 짠테크 철학이 무력해지는 유일한 곳이다.


가끔 기초생활수급자나 법정한부모에게 지급되는 문화바우처 소식을 접할 때면, 다른 어떤 복지보다도 그 혜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라에서 책을 사고 영화를 보라고 지원해준다니. 빠듯한 살림에 내 돈을 들여 새 책을 사는 것은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도 훌륭하지만, 내 서재에 꽂아두고 언제든 꺼내 보며 밑줄을 긋는 '내 책'을 대할 때의 시선은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 한 편, 뮤지컬 한 편을 보기 위해 몇 달을 아끼고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서, 예술을 향한 허기는 늘 나를 허기지게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화가와 작가, 그리고 무용가다. 인간의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정제하고 단련시켜 눈에 보이는 형태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들을 볼 때마다 경외감을 느낀다. 생각이 너무 많아 뇌가 쉬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글로, 그림으로, 혹은 몸짓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의 영역처럼 다가온다. 그들이 깎아내고 빚어낸 작품을 보는 시간은, 팍팍한 현실에 찌든 나를 잠시나마 고귀한 세계로 건너가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다.

비록 주머니 사정 때문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저렴한 전시 위주로 찾아다니지만, 이름 모를 그림 앞에서 받는 위로는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내 영혼을 채운다.

​나의 갈증은 정적인 감상에만 머물지 않고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재단된다. 단순히 좋은 곳에서 쉬기 위한 여행이 아니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그 치열한 과정 자체가 나에겐 최고의 행복이다. 한때 교직원 연수에서 수영도 못 하는 내가 덜컥 수상스키를 신청했던 적이 있다. 주변에선 다들 박장대소하며 만류했지만, 나는 물을 잔뜩 먹으면서도 일어서려 애썼다. 비록 멋지게 물 위를 가르지는 못했을지언정, 내가 몰랐던 세계에 내 몸을 던져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고소공포증은 나에게 단순한 심리적 두려움이 아니다. 전정기관의 이상으로 남들보다 평형감각이 예민해 높은 곳에 가면 안색이 파래지고 동공이 커지며 심한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런 내가 남산타워에 오르고 무려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했다. 남들은 즐기기 위해 타는 것이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도전이자 삶을 향한 일종의 투쟁이다. 사는 동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각을 다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 내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서라도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싶은 갈망이 공포보다 컸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미혼모로서 내 집 마련을 꿈꾸며 그렇게 지독하게 아끼면서, 왜 문화와 여행이라는 사치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느냐고. 이 두 가지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새로운 것을 탐닉하고 예술을 통해 영혼을 씻어내는 과정을 포기하는 순간, 내 삶은 곧장 절망의 구덩이로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탐닉의 자유'에 있었다.

​나는 여전히 짜게 산다. 하지만 내 영혼만큼은 누구보다 풍요롭게 살찌우고 싶다. 짠테크로 모은 돈이 내 집이라는 물리적인 울타리를 만들어준다면, 아끼지 않고 쏟아부은 문화와 여행의 경험들은 내 마음이 머물 공간을 넓혀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짠순이가 되기를 자처하며, 다음 여행지와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정리한다. 그것이 내가 짠테크로 각박해진 마음을 녹이고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주는 길잡이이자 이 세상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방식이다.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