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내집마련기 22
내 집이라는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가장 큰 관문은 단연 대출이다. 미혼모로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를 시험에 들게 한 것도 결국 ‘빚’이었다. 많은 사람이 빚을 피하고 싶은 어둠이라 말하지만, 오늘 그 빚을 ‘빛’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택담보대출을 일으키며 원금균등상환 방식을 선택했다. 매달 일정한 원금을 갚아나가는 이 방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자가 조금씩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미미할지 몰라도, 한 달 한 달 성실히 원금이 줄어드는 것을 통장에서 확인할 때면 묘한 기쁨이 차오른다.
지난달보다 단돈 몇 백 원이라도 줄어든 숫자를 볼 때, 그 안에서 희망을 본다. 그 줄어든 몇 백 원은 단순히 숫자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난 한 달을 성실하게 버텨냈다는 훈장이자, 집이라는 완벽한 내 울타리에 아주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그렇게 나는 부채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빚의 철학에서 절대 허용되지 않는 영역이 하나 있다. 바로 신용대출, 흔히 말하는 ‘마이너스 통장’이다. 주변에 늘 마이너스 통장만큼은 멀리하라고 조언한다. 이율이 높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마이너스 통장이 주는 심리적 착각이다.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 잔고가 일상이 되면, 어느 순간 그 빚을 내 돈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빚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면 소비의 경계가 무너지고, 결국 이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난다. 물론 자기 통제가 철저한 이들도 있겠지만, 보통의 우리에게 마이너스 통장은 저축의 의지를 꺾고 삶을 빚의 늪에 머물게 하는 가장 달콤하고도 위험한 덫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지인이 있다. 국민임대아파트에 살고 있고 직업이 공무원인 이분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알뜰하다. 최근 5년 동안 옷 한 벌 사지 않고 사치품 근처에도 가지 않을 만큼 ‘비움’을 실천하는 분이다. 그런데 아이의 교육비와 치료비라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게 되었고, 오랜 기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용이 좋고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메우느라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한 탓에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왔을 때 계약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1순위 청약 통장을 쥐고도 마이너스 잔고에 발목이 잡힌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빚을 대하는 태도가 곧 삶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빚은 그것을 ‘빛’으로 빚어낼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살다 보면 부득이한 사정으로 빚을 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빚이 생겼다면 내 삶의 궤도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빚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활 방식은 하나도 바꾸지 않는다. 주말이면 외식을 하고, 남들 하는 것 다 하고, 사고 싶은 것을 다 사면서 어떻게 빚을 갚을 수 있겠는가. 빚이 생기기 이전과 같은 생활을 고수하면서 빚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일이다. 빚을 갚겠다는 의지는 반드시 구체적인 절제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나 역시 그런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등록금 50만 원이 부족해 대학에 붙은 동생을 붙잡고 "딱 1년만 더 고생해 보자"고 울며 설득하던 밤이 있었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간식을 차마 사주지 못해 장바구니에서 슬쩍 빼내던 서글픔 날도 기억한다. 가장 아픈 기억은 응급실에서였다.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를 걱정해야 할 시간에, 당장 나갈 검사비가 얼마일지를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병원비를 단 몇 천 원이라도 아낄 방법을 고민하며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그 순간들. 그 처절한 가난의 경험은 나에게 빚에 대한 지독한 공포와 동시에 그것을 털어내야 한다는 강렬한 동기를 심어주었다.
단돈 몇 푼에 울어보고 자존심이 무너지는 삶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빚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리고 그 무서운 것을 내 곁에 오래 둘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빚을 털어내기 위해 내 삶을 통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는 절대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남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기꺼이 반납했다. 그 과정은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매달 줄어드는 이자를 보며 느끼는 안도감은 그 어떤 소비가 주는 쾌락보다도 달콤했다.
빚을 갚아나가는 과정은 단순히 돈을 송금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졌던 내 삶의 질서를 바로잡고, 내 아이와 나를 위한 진정한 독립을 준비하는 성스러운 의식과 같다. 만약 지금 빚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생활을 점검해보길 권한다. 빚이 생겼음에도 여전히 이전과 같은 온도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빚을 갚는 고통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고통을 더 크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빚이 빛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담금질이 필요하다. 빚을 딛고 일어나 빛으로 나아가는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지만, 그 터널을 통과하고 났을 때 마주할 내 집은 단순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내 노력과 눈물로 빚어낸 보석이 될 것이다.
오늘도 줄어드는 이자 숫자를 확인하며 내 삶을 다독인다.
이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마침내 우리 가족의 앞날을 환히 밝히는 진짜 빛이 될 것이라고. 빚을 갚는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일인 동시에, 내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 있다고.
* 이 이야기는 미혼모의 집 마련과 생존을 기록한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