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지나며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다시 생각해 본다. 6-7년 전 난 처음으로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죽어가시는 과정을.
작은아이 고3 때 시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쓰러지고 난 후 모야모야 병이 있으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난 죽음에 대해 너무 몰랐고 철이 없었다. 난 가망이 없다는 말에 처음부터 미리 포기해서 바로 큰 병원으로 옮기지 못했다. 어머니가 뇌압이 너무 높아 뇌를 여는 수술을 하고 피 묻은 붕대를 두르고 중환자실로 오셨을 때 어머니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살고 싶으실까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에 악의가 있지는 않았다. 그 수술을 하고 나오시기를 혼자 밤 12시까지 기다리고 있었고, 1시간 반 거리를 울면서 집에 왔으니까. 그때는 몰랐다.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다들 직장을 다녀서 간병인을 둬야 했고 몇 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옮겨야 했다. 나는 기저귀등 필요한 물품과 간병인 드실 간단한 간식을 들고 병원을 드나들었다. 중간에 잠깐 좋아지셔서 간병인 말에 따라 만세도 하고, 손가락으로 숫자만큼 펴며 웃기도 하셨다. 말씀은 못하셨지만 쓰러지신 후에는 그때가 가장 행복하셨던 거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요양병원으로 옮기셨고 중환자실 같은 곳에 계셨다. 어머니 병원에 갈 때마다 '내가 너를 사랑함이라' 찬양을 머리맡에 틀어드렸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이 어머니에게 찬양의 가사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결정을 해야 했다. 알부민 수치가 떨어지고 빈혈도 심하셔서 수혈을 하셨는데 계속 반복하는 건 연명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그걸 결정하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었고 그때 많이 울었다. 물론 혼자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제일 어머니랑 가까이 있었기에 내 의견의 비중이 컸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10시쯤 병원에 들렀었다. 더운 날이어서 병원에 아이스크림을 사다 드렸는데 어머니는 추우신지 손이 싸늘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고 그다음 진행을 하는 동안 난 돌아가신 어머니와 둘이 있었다. 처음 돌아가신 분과 함께 있어봤고, 장례를 진행하는 과정을 처음 가까이 봤다. 관에 화장을 하고 누워계신 어머니, 태워지기 위해 관이 들어가는 과정.
어머니는 그렇게 1년 4개월의 힘겨운 병원생활을 끝내시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군입대했던 큰아이가 장례를 위해 왔었고, 아이를 부대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많이 왔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모두 애썼다고 말해주셨다.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병원에 가서 실제 어머니와는 잠깐 있는 게 다였고 어쩌면 어머니 입장에서 제일 서운한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난 어머니와 또 다른 분의 죽음을 보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뭔지 조금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철없던 마음과 결정이 마음에 짐처럼 남아있고 너무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