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배우며

사소한 생각

by HAN

이번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 카톡방에 이 글을 올렸었다.

부모님께~

오랜 시간의 걸음걸음이 길이 되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부모님의 땀과 눈물의 흔적을 느낍니다.

그 길이 너무 울퉁불퉁 헤서 멀미가 날 만큼 힘겨울 때도 있습니다.

그 길을 아이 다섯 어깨에 메고 걸으셨을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또 나의 아이들이 따라올 것을 생각하며

더 나은 길을 찾고자 하지만

다시 부모님이 가셨던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힘겨움이 발판이 되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길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 땅의 삶 마지막 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희가 앞서 가겠습니다.

저희가 앞에서 길을 개척하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애쓰셨어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022.5.8 자녀들 올림




그리고 하루 만에 알았다. 뒷부분이 잘못됐다는 걸, 우리가 앞서갈 수 없다는 걸.


어제 부모님과 외출할 일이 있었다. 뭔가를 사면서 택배를 받기로 했고 주소를 적어야 했다. 엄마네로 와야 하는 거라 엄마는 당연히 엄마가 주소를 적으려 하셨는데 그분은 굳이 언니에게 펜과 종이를 내미셨다.

오면서 엄마는 나이 들어서 무시당하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나이 드신 분에 대한 젊은 사람의 배려를 왜 이해 못 하느냐고 얘기했다. 나는 종종 엄마가 사소한 부분에서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러지 못하면서.


불현듯 올렸던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나의 불편한 마음은 엄마가 삶의 뒷자락으로 물러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우리가 앞으로 나가서 부모님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삶의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육신적인 보호는 해드릴 수 있을지언정 그 삶의 연륜을 갖추지 못했고, 갖추었다고 해도 자연스레 물러서지 않으신데 부모님을 뒤로 오라고 끌어내릴 수는 없는 거다.


엄마는 글씨를 잘 쓰신다. 허름한 외모의 할머니가 쓴 글씨를 보며 엄마 얼굴을 다시 보는 경우가 많다. 젊은 사람의 배려는,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며 해오셨던 것처럼 삶의 앞자락에 서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게 아닐까? 나이 들수록 변화에 발맞추기가 어렵다. 성격이나 집안 분위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갈등은 앞자락으로 나가시는 분들을 이제는 뒤로 오시라고 하면서 생기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자 살면서 배운 경험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때론 그 안경이 편견을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처럼 부모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잠깐씩은 그 안경을 빌려 쓰고 어떻게 보이는지 한 번은 헤아려 보면 어떨까?


생각은 이렇게 한다. 실천은 안 된다. 나는 오늘도 기어코 엄마에게 할 말을 다 하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