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가장 후회되는 것은 그저 시험을 위한 공부만 했다는 거다. 모든 지식이 쓰이고, 매 과목이 소중했는데. 특히 음악, 미술, 체육 이런 과목은 너무 아쉽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야 빛이나 장면, 소리 등의 아름다움이 뭔지 알게 됐고,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왜 굶으면서 음악이나 연극, 영화 등을 고집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 그걸 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생각만 해도 멋지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3년 방영된 일일극 ‘못난이 주의보’를 보고 나서다. 공준수의 가족을 위한 희생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성장해가는 진실한 가족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이렇게 소개되는 드라마다.
지금도 공준수 이름을 기억할 만큼 감탄을 하면서 봤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답답하리 만큼 너무 착해서 '못난이'라고 이름 붙은 공준수, 그 삶을 아는 사람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주의보'. 제목도 너무 좋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으로 작가를 검색해봤다.
그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영화 '원더'다.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아이가 가족과 함께 사회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이영화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타인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너무 잘 표현해서다. 보이지 않아도 우린 모두 결핍을 가지고 있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하니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명대사,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강함은 힘이 센 것이 아니라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표출하는 것에 있으며 그 힘으로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거 같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못난이 주의보의 공준수도, 원더의 어기 가족도 해피앤딩을 맞기까지 오랜 인내의 시간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눈물의 시간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라 예쁜 영상으로 너무 아름답고 낭만적이게 표현되지만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가난은 더 치열한 희생을 요구하고, 상처는 더 잔인하다. 그럼에도 이런 드라마나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따스함이 주는 위로와,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어려움을 극복하는 희열 때문이 아닐까? 어떤 과정을 거칠지는 몰라도 해피앤딩으로 끝날 것을 기대하고 보니까.
우리 삶도 해피앤딩이라는 것을 알면 힘겨움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을 텐데.
한동안 범죄 소재 미드를 많이 봤었다. 산 사람을 벌레와 같이 관에 넣어서 땅에 묻는 악행을 저지르고 주인공들이 와서 구해주고. 상상으로 만든 장면이겠지만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난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한계를 넓혔던 거 같다.
윗 작품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힘겨움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힘겨움의 범위를 넓히고, 따스함과 위로를 남기기에 이런 작품들이 많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무언가로 따스함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