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대비해 사다 놓은 뽁뽁이를 방치하다가 며칠 전에야 붙였다. 뽁뽁이 붙여진 유리창에 닿은 감촉이 따스하다. 유리창을 보면서 시린 내 마음에도 뽁뽁이를 붙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마음에도 따스함을 입힐 수 있는 뽁뽁이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었던 몸을 일으켜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한 건 책 담는 주황색 뽁뽁이 봉투였다.
제목의 사진처럼, 내 마음 대신 옷 벗고 있던 나의 관절인형에게 주황색 뽁뽁이 옷을 입혀줬다.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처럼, 든든한 옷을 입고 있는 인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그림일기를 써봤다. 그 시작은 우연이었다. 그림 속 선을 꾸미다가, 선을 이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 글씨라는 생각이 들어 한 해를 돌아보며 떠오르는 마음을 적기 시작했다. 선을 테두리로 꾸미며 고민하다가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이 결국 한 해를 돌아보는 마음이 되었다. 두서없지만 그 마음을 이곳에 남겨둔다.
한 해가 간다. 연초에 불편했던 마음이 결국은 폭풍으로 다가와 허울을 부서뜨리고 씻어냈다. 어수선함이 정리되고 또 다른 나의 모습에 집중한다. 나에게 주신 재능을 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려고 성경을 읽는다. 온전히 집중할 수 없고, 상념들이 손을 멈추게 한다. 그래도 괜찮다. 방향을 정하고 그 길로 간다. 중요한 건 어수선함이 다시 나를 둘러싸도 방향을 잃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다시 가던 길을 갈 수 있는 거다. 아픔이 감사되고 또 다른 시도를 한다. 이래서 매 순간 감사할 수 있는 거구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건 한 해를 감사로 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방향을 잃지 않고 가던 길을 가려고 한다.
손에게 우아한 손 그림을 선물한 후, 발에게도 우아한 발 그림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아한 발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곡선, 깔끔한 모습? 하지만 그런 발로는 이 험난한 길을 걸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강한 심장을 그려 넣었다.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다. 그리고 그 안에 분홍빛 따스함으로 아름다움을 더했다.
따스함. 그 따스함은 얼음을 녹이고 자갈을 갈고 물 위를 걷게 한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뜬금없이 그림으로 사랑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스 눈을 뜨고 눈에 보이는 것을 이용해 그린 그림이 오른쪽 그림이다. 모자 같기도 한 이 그림의 제목은 따스함이다.
레모나가 담겼던 하트 모양 뚜껑으로 다른 방향의 하트 4개를 그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오일파스텔을 잡고 칠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들이 두꺼운 테두리색으로 경계를 이루고, 그 경계가 살짝씩 겹치면서 나름 조화를 이룬다. 테두리는 다른 색들을 이어주는 것이기도 하고, 넘지 말아야 할 경계이기도 하다.
선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서 만든 무늬가 그림을 부드럽게 하고 재미를 더한다. 배경은 그림에 사용한 색을 선으로 대충 칠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표현하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에 때로는 그 차이가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필요한 순간에는 연결되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각자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부족함을 바라보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화합과 따뜻함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기 전 종이에 귤껍질로 향을 입혀서 그림에서 귤향이 난다. 이 그림의 따스함에는 상큼한 사랑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