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창가 쪽 성탄절 장식을 찍고 보니, 종이 많이 낡았다. 그 낡은 종을 바라보며 묘하게 마음이 아팠다. 낡음이 초라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오래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듯한 모습이 느껴져서였다.
낡은 종을 보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떠올린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무엇일까?
몇십 년 만에 큰 눈이 내리던 날이 떠오른다. 그날, 비행기가 연착되고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고생한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나는 철없는 아이처럼 행복했다. 손끝으로 눈의 감촉을 느끼며 길을 걷고, 사진을 찍었다. 눈모자를 쓴 빨간 소화전, 곶감처럼 매달린 노란색 나뭇잎, 동화 속 풍경 같은 눈 덮인 공원...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날의 풍경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내 마음속 깊은 위로가 되었다.
요즘 난, 내가 고장 난 장난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낡은 종을 보며 마음이 아팠던 것도 아마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닐 거 같다. 며칠 전 어린이들의 우울증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요구에 지치고,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받으며 조금씩 낡아져가고 있으니까.
고장 난 장난감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눈 덮인 풍경이 건넨 위로를.
춤추며 내려온 흰 눈처럼, 우리에겐 우리를 비추는 사랑이 있다. 신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 따스함 되어 우리를 감싸 안으면, 따스함으로 덮인 우리는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낡아져야만 볼 수 있다. 마치 상실을 경험한 뒤에 느껴지는 감사와도 같다. 우리는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 그 눈을 뜨고 바라보면, 각자의 그릇 안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애씀조차 고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고장 난 게 아니다. 따스함이 채워지길 꿈꾸며 기다리는 것이다.
따스함은 냉랭함 속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지금의 고통은 아름다움을 더하고, 그렇게 기다린 시간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가 될 것이다. 잠시 멈춰 서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따스함을 전하며 함께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음의 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희망을 깨우길 바란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따스함으로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다가 따스함 한 조각을 남기고 떠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고장 난 게 아니야.
마음이 고장 난 것처럼 느껴지는 이들을 위로하는 노래다. 그 마음은, 어쩌면 따스한 사랑을 갈망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시선이 따스함이 되어주길,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