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간 ‘오해’가 시작될 때
지난 글에서 우리는 생명이라는 장엄한 교향곡을 연주하는 우리 몸 안의 오케스트라를 만났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소리를 내며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그 모습은, 생명 본연의 질서가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그 연주에도, 아주 미세한 균열이 시작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굉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사소해서 알아차리기 힘든, 첼로의 활이 아주 미세하게 엇나가는 소리, 플루트의 숨결이 한순간 가늘어지는 떨림 같은 것입니다. 전체의 조화 속에서는 묻혀버릴 정도의 작은 삐걱거림.
이것이 바로 우리 몸의 시스템들이 서로의 언어를 ‘오해’하기 시작하며, 생명의 선율이 길을 잃는 첫 순간입니다.
이 ‘오해’는 단순한 은유를 넘어,
우리 몸속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구체적인 생화학적 단절의 과정입니다.
정교하게 연결된 생명 시스템은 어떻게 길을 잃게 될까요?
실제로, 우리 몸의 소통 체계가 단절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세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이외에도 신호 전달 경로의 차단, 신호 간섭, 타이밍 오류, 유전적 손상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경계와 내분비계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라는 정밀한 언어로 소통합니다.
그러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나 불균형한 생활 습관은 이 신호 체계를 교란시킵니다.
마치 지휘자의 손짓이 무대 조명의 번짐에 휘어져 흐릿해지는 것처럼,
과도하게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은 이제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닌,
온몸을 피로하게 만드는 신경성 소음이 되어버립니다.
예: 잦은 야근, 인간관계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 등은 우리 몸을 끊임없이 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코르티솔 과잉으로 이어집니다.
반복되는 소음에 지친 연주자가 귀를 막아버리듯, 우리 세포도 같은 방식을 택합니다.
과도한 신호(예: 혈당을 낮추라는 인슐린 신호)가 끊임없이 쏟아지면,
세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신호를 받아들이는 ‘문(수용체)’을 닫아버립니다.
메신저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지만, 세포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습니다.
메시지를 보내도 받지 못하는, 가장 답답하고 치명적인 단절의 시작입니다.
예: 인슐린 저항성은 당 대사의 붕괴로 이어지며, 대사 질환의 출발점이 됩니다.
면역계가 사용하는 언어인 ‘사이토카인’은 본래 국소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밀한 신호입니다.
하지만 소통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면,
이 신호는 마치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왜곡된 정보처럼 변질됩니다.
“여기에 불이 났으니 끄라”는 정확한 메시지가,
온몸에 “모든 것을 불태우라”는 과잉 반응으로 확산됩니다.
예: 만성 염증은 혈관을 타고 흐르며, 멀리 떨어진 뇌신경계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시작된 단절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증상, 즉 세포 수준의 비명으로 나타납니다.
이유 없이 무거운 몸, 회복되지 않는 피로감은,
우리 몸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가 끊임없는 염증이라는 소음을 처리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며 보내는 신호입니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해지고 집중이 잘 안 되는 증상(브레인 포그)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뇌의 장벽을 넘어 뉴런 간의 섬세한 신호 교환을 방해할 때 나타나는
신경계의 통신 장애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모든 불편함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닙니다.
조화가 깨진 몸이 보내는 절박한 구조 신호이자,
생명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가장 정직한 보고서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고장’이나 ‘실패’라고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것은 생명이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하려다 벌어진 ‘조정 실패’ 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변화하는 환경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균형을 찾아가는, 섬세한 협상가입니다.
이 조율의 기술을 우리는 ‘항상성’이라 부릅니다.
항상성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조율하고 협상하는 능동적인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몸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과로와 스트레스, 잘못된 식습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몸은 더 이상 정상적인 협상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결국 수용체를 닫고, 염증을 일으키는 극단적인 방식으로라도
생명을 지키려는 절박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질병은, 그 슬픈 협상의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삐걱거리는 선율 속에서,
우리는 몸이 보내는 이 모든 고통스러운 신호가 사실은
회복의 리듬을 다시 부르기 위한 조용한 요청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포의 비명은 우리를 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기를 좀 봐주세요. 조율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간절한 신호입니다.
우리가 몸에게 보내는 아주 작은 관심, 부드러운 자극, 그리고 휴식이라는 응답.
그 작은 손짓이야말로 이 슬픈 협상을 끝내고,
새로운 조율을 시작하게 하는 첫 번째 손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흐려진 생명 신호를 다시 조율하려는 현대 의학의 섬세한 시도,
전자약이라는 기술을 살펴봅니다.
몸의 침묵에 말을 걸고, 시스템 간의 오해를 통역하려는 이 새로운 접근이
어떻게 회복의 리듬을 다시 불러오는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