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몸의 역사

절망의 마침표를 희망의 쉼표로 바꾸는 기술들

by HAN

며칠 전, 휠체어에 앉아 있던 박위 씨가 재활 장비를 이용해 일어선 사진을 보았습니다.

박위 씨는 2014년 낙상 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으나 재활을 통해 상체 움직임을 회복했고,

드디어 서게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과학동아에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보았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꿈꾸지 못했던 시절 전 '정말 가능할까'라는 질문 대신,

'사람들은 왜 그런 상상을 할까'가 궁금했었습니다.


꿈꾼다는 것은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사랑의 외침일 것입니다.


이제 저는 꿈꾸는 사람이 되었고,

전 그날, 누군가의 외침에 대한 메아리를 들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꿈꾸고 더 큰 사랑의 외침이 온 하늘을 덮길 기대합니다.


그 사랑의 외침은, 때로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몸의 역사 앞에서 더욱 간절해집니다.


다시, 첫걸음

한순간의 사고나 질병은 우리 몸에 지울 수 없는 역사를 새깁니다.

척수 손상으로 휠체어에 새겨진 마비의 역사,

뇌졸중으로 한쪽 몸에 남겨진 불완전함의 역사,

절단으로 인해 사라진 신체의 빈 공간이라는 역사.

이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결말’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전 글들을 통해 통증의 소음을 잠재우고,

우울의 꺼진 회로에 불을 켰습니다.

그렇다면 뇌와 몸을 잇는 길이 끊어지고,

명령 체계가 무너진 이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신경과학은 이제 ‘관리’를 넘어,

몸의 역사를 ‘재편집’하는 도구를 우리에게 쥐여주고 있습니다.


몸과의 대화를 돕는 기술들: 길을 열고, 말을 걸고, 힘을 보태다

재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술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 몸과 소통합니다.

이들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 전자약 (VNS, SCS, FES 등)

몸속 시스템을 직접 수리하는 엔지니어입니다.

신경에 직접 전기 자극을 주어 신경계의 활동 자체를 변화시키고 조절합니다.

신경가소성을 촉진하거나(VNS), 통증 신호를 막는(SCS) 등

우리 몸의 생물학적 프로세스에 직접 개입하여 ‘치료’와 ‘조절’을 목표로 합니다.


*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CI/BMI)

마음의 말을 번역해 주는 통역사입니다.

뇌의 신호를 읽어 그 의도를 해석한 뒤,

외부 기계(로봇 팔, 컴퓨터 커서 등)를 움직이는 ‘명령’으로 변환합니다.

뇌의 의지를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 웨어러블 로봇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는 든든한 조력자입니다.

모터와 같은 기계적인 힘으로 사용자의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보조’합니다.


이 기술들은 때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때로는 서로의 손을 잡고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아래의 표는 이 기술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희망을 만들어가는지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재활 (1).png 검정 글씨는 전자약 기기, 파랑 글씨는 비전자약 기기


1부: 끊어진 길을 잇다 - 척수손상과 디지털 브리지

척수 손상은 뇌와 몸을 잇는 거대한 ‘통신 고속도로’가 무너져 내린 것과 같습니다.

뇌는 여전히 ‘걸어라’는 명령을 보내지만, 신호가 끊어진 다리에 닿지 못합니다.


이때 ‘통역사(BCI)’와 ‘엔지니어(FES)’가 만나 무너진 다리를 건너뛰는 ‘디지털 브리지(Digital Bridge)’를 놓습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먼저, ‘마음의 언어를 읽는 해독기’인 BCI가 ‘걷고 싶다’는 뇌의 신호를 실시간으로 읽어냅니다.

기능적 전기 자극(FES): 다음으로, 전자약의 일종인 FES가 ‘근육을 위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 다리 근육에 정교한 전기 신호를 보낼 준비를 합니다.

디지털 브리지는 BCI가 읽어낸 뇌의 의도를 컴퓨터가 해석하여,

FES를 통해 다리 근육에 ‘움직여!’라는 명령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이는 단순히 걷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휠체어 위에서 세상을 올려다보던 시선이,

다시 서서 타인과 눈을 맞추는 시선으로 바뀌는 ‘존엄의 회복’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다시 일어서는, 몸의 역사가 새로 쓰이는 첫 문장입니다.


2부: 뇌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 뇌졸중과 신경가소성 촉진

뇌졸중은 뇌의 ‘운동 지휘 본부’에 지진이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지도’가 찢어진 것과 같습니다.

재활 치료는 이 찢어진 지도를 더듬더듬 다시 이어 붙이는 고된 과정입니다.


여기에 전자약인 미주신경자극술(VNS)은 ‘학습의 하이라이터’ 역할을 합니다.

환자가 재활 치료 중 의도했던 움직임을 ‘정확하게’ 성공하는 바로 그 순간,

목의 미주신경에 짧은 전기 자극을 줍니다.


이 자극은 뇌에 “방금 그 움직임은 매우 중요해! 이 길을 기억하고 강화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냅니다.

마치 중요한 부분에 형광펜을 긋듯, 올바른 운동 회로가 다시 그려지고 강화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속도를 폭발적으로 높여줍니다.


몇 달, 몇 년이 걸릴 재활의 역사를 몇 주로 단축시키는 ‘시간의 편집’입니다.

서툴게 셔츠 단추를 채우던 손이 다시 능숙해지고, 비뚤어지던 걸음걸이가 안정을 찾는 것.

이는 좌절의 역사를 지우고, ‘할 수 있다’는 성공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과정입니다.


3부: 감각을 되찾은 손 - 첨단 의수와 양방향 인터페이스

기존의 의수는 뇌의 명령이 몸으로 향하는 ‘일방통행 도로’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손’은 세상을 느끼고 그 정보를 다시 뇌로 보내는 ‘양방향 소통 창구’입니다.

의수 사용자는 컵을 얼마나 세게 쥐어야 깨지지 않는지 ‘느낄’ 수 없기에, 의수는 여전히 ‘도구’로 느껴집니다.

양방향 인터페이스(감각 되먹임 기술)는 이 일방통행 도로를 양방향으로 넓히는 혁신입니다.

뇌 → 의수 (명령): ‘손을 쥐겠다’는 생각을 더 직관적으로 의수에 전달합니다.

의수 → 뇌 (감각): 혁신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의수 손가락 끝 센서가 포착한 정보를, 팔의 남은 신경에 전달할 수 있는 전기 신호(전자약 원리)로 변환합니다. 뇌는 이 신호를 통해 의수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이는 ‘기능의 복원’을 넘어 ‘감각의 복원’을 의미합니다.

처음으로 의수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

이것은 상실의 역사 위에 ‘연결’과 ‘교감’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덮어쓰는,

가장 인간적인 기술의 진보입니다.


인간, 한계를 다시 정의하다

1.png

결국 재활의 끝은 ‘기능 회복’이 아니라 ‘삶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기술들은 단순히 끊어진 신경을 잇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의지와 세상과의 연결을 돕습니다.


전자약이 몸의 언어를 조율하고,

BCI가 마음의 문장을 번역하며,

로봇이 다시 일어설 힘을 보태는 이 모든 기술의 협주(協奏)는,

한 사람의 의지와 세상을 다시 잇는 교향곡이 됩니다.


기계와 사람, 의학과 철학, 그리고 꺾이지 않는 의지와 사회적 연대가 만나 한 개인이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이 기술들이 가진 진짜 가치이자,

우리가 스스로의 몸의 역사를 다시 쓸 용기와 희망을 얻는 이유입니다.


다음 이야기

지금까지 우리는 기술이 어떻게 끊어진 몸의 길을 잇고, 멈춰버린 움직임을 되살리는지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기술이 우리의 가장 내밀한 영역, 즉 '기억'과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사라져 가는 기억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

기억을 '설계'하는 시대의 가능성과

그 윤리적 질문, '우리는 어떤 기억과 함께 살고 싶은가?'에 대해 탐구해 봅니다.

어딘가에 닿기를.jpg 어딘가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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