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에서 PTSD까지, 우리는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
기억은 우리 존재의 뿌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며,
내일을 꿈꾸게 만드는 힘.
하지만 이 단단해 보이는 기반은
때로 너무 쉽게 무너지거나,
오히려 우리를 옭아매는 감옥이 되기도 합니다.
첫째, 사라져 가는 기억
알츠하이머라는 침입자는 기억의 도서관에 불을 지릅니다.
가장 최근의 책부터 타들어가고,
마침내 어린 시절이라는 고전마저 재로 만듭니다.
결국 도서관의 주인인 ‘나’라는 서사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둘째, 사라지지 않는 기억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끔찍한 장면을 되감으며
현재를 과거의 감옥 속에 가둡니다.
뇌는 공포와 불안이 뒤섞인 기억을 분리하지 못해,
과거의 상처가 언제든 되살아나도록 허용합니다.
알츠하이머는 단순한 기억 상실이 아닙니다.
이 질병은 뇌의 ‘Default Mode Network(DMN)’-
멍하니 있을 때,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상상하며 ‘나’를 그리는 회로-
부터 서서히 해체하는 전략적 침입자입니다.
fMRI나 PET 연구를 통해,
해마와 전전두엽 피질을 잇는 이 네트워크가 가장 먼저 흔들리고
그 여파로 기억 저장소가 붕괴하는 경로가 확인되었습니다.
1) 시작점: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고장
해마(Hippocampus)와 내후각 피질(Entorhinal Cortex)이 무너집니다.
새로운 기억이 장기 저장으로 전환되지 못해,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태-
기억의 현재가 멈추는 순간입니다.
2) 확산: 도서관 전체로 번지는 불길
신경세포 파괴가 측두엽, 두정엽으로 확산됩니다.
의미 기억(“사과는 과일이다”), 언어 능력, 시공간 인식이 무너져
단어와 얼굴마저 잊게 됩니다.
가장 최근의 책부터 불타기 시작하는 장면과 같습니다.
3) 최후: 자아의 붕괴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이 공격받습니다.
이성과 판단, 사회적 행동, 자기 인식을 총 감독하는 이곳이 마비되면
삶의 모든 맥락이 사라지고,
‘나’라는 서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기억의 도서관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다시 책을 꽂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가 자아를 소멸시킨다면,
PTSD는 현재를 파괴합니다.
이들에게 기억은 추억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감기는 고통의 필름입니다.
뇌는 특정 기억에 달라붙은 공포와 불안을 분리하지 못해,
과거의 공포가 ‘재통합 창(window)’을 통해 언제든 되살아나도록 허용합니다.
결국 일상은 과거라는 감옥에 붙잡히고,
현재를 온전히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두 비극에 맞서는 과학적 무기 중 하나는 전자약(Bioelectronic Medicine)입니다.
약물이 아닌 전기 자극으로 뇌 회로를 조율하며,
기억의 손상과 과잉을 조절합니다.
아래 도표는 다양한 신경조절 기술과 각 기술의 작동 원리, 임상 단계, 적용 질환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제시되는 또 하나의 큰 그림은,
우리가 기억에 대해 어떤 선택지를 갖고 있는가입니다.
손상된 기억을 회복(Restoration)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쇠(Attenuation)하며,
행복한 기억을 강화(Enhancement)하는 일.
이제 과학은 이런 목표들을 실제 연구의 언어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 가지 선택지 앞에 서 있습니다.
첫째, ‘조율’
실패, 이별, 후회의 기억은 고통스럽지만
우리의 성장을 이끌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과정까지 지워버린다면,
삶의 깊이를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둘째, ‘강화’
행복한 기억을 더 생생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겪지 않은 긍정적 경험을 뇌에 이식한다면
우리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까요,
아니면 현실과 가상의 경계 속에서 혼란에 빠질까요?
셋째, '제거'
지나친 고통만 골라 지운다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지만
‘나’를 완성하던 굴곡마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성공과 기쁨만이 아니라,
실패와 상처, 후회까지 모여
입체적인 ‘나’를 만듭니다.
전자약을 비롯하여 뇌 신경 조절 기술은 인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불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작은 등불이 될 수도 있고,
잘못 쓰인다면 모든 것을 태워버릴 불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축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픈 기억을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욕망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갈지 모릅니다.
기술은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능성을 보여줄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설계하고 싶으신가요?
전자약과 인간성의 경계.
기억을 통해 살펴본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술과 결합된 나는 어디까지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치료와 향상의 경계에서,
우리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