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게 말을 거는 기술, 그리고 우리의 대답

기술의 끝에서 사람을 이야기하다

by HAN

아픔이 너를 흔들 때


핏빛 안에 뒹굴던 널 보며 울었어

내 손이 전지전능한 손이라

네 아픔을 잡을 수 있다면


까맣게 타들어가는 너의 입술

그 속에서 잿더미가 되어가는 말들을

조금이라도 꺼내줄 수 있다면


너에게 닿지도 못한 손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빨갛게 물들었어


네 아픔은 그대로인데



이 시는 고통받는 이를 향한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우리를 지켜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 손이 닿지 못하는 그 깊은 고통에,

어쩌면 기술은 그 사랑을 전하는 작은 통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간절한 질문이 바로 이 긴 연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우리는 잃어버렸던 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몸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조율에 귀 기울였고,

전자약이 질병이라는 무게에 무너진 화음을 어떻게 회복시키는지

그 기술의 섬세함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술이 우리의 감정과 자아의 경계마저 허무는 시대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섰습니다.


이 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이제 기술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대답 1: 질문하는 존재로 남기

전자약 기술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래의 자료들은 이 기술이 이미 우리의 삶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가능성과 과제를 안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뇌심부자극술(DBS)부터 경두개 집속 초음파(tFUS)까지,

다양한 기술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 신경계에 말을 걸고 있고

류머티즘, 크론병,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서 유망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 예비 연구나 초기 임상 단계이므로,

장기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기술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Medtronic, Boston Scientific 같은 거대 기업들이 시장을 이끌어가는 지금,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개발자나 기업의 몫이 아닙니다.

기술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질문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 개발자, 의료인, 환자, 그리고 평범한 시민인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갈 때,

기술은 비로소 인간을 위한 따뜻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답 2: ‘엄마의 약손’ 같은 마음을 위하여

저는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전자약을 ‘엄마의 약손’ 같은 기술이라 생각했습니다.

아픈 배를 쓸어주던 그 따뜻한 토닥임처럼,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삶의 희망을 전하는 기술.

기술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것을 꿈꾸고 만든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돈보다는 사람을 향한 사랑에 더 가깝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기술이 본래의 의도를 잃고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누었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기술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이 효율이나 통제가 아니라,

서로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연결’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즉, ‘엄마의 약손’에 담겨있던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 아픔을 만지는 손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한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제가 손수 물에 얼음을 넣은 것은 이번 여름이 처음인 거 같습니다.

이 더위만큼 치열하게 질병을 포함한 '삶의 아픔'에 대해 고민하며,

전자약이라는 기술을 매개로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두려움에 떠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토닥이던 엄마의 속삭임, 아픈 배를 문질러주던 엄마의 사랑 담은 손길.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온전함이 아니라 그런 사랑의 몸짓일 것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 사랑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사랑을 잘 표현한 것이 전자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삶을 비추는 작은 빛과 온기를 찾고, 회복을 꿈꿀 수 있도록,

전자약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몸에게 말을 거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픔이 닿은 손

어쩌면 제 글은 질병과 아픔을 너무 여리고 아름답게만 표현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아픔의 진짜 모습은 이 그림과 더 닮아있습니다.


물감으로 범벅이 된 이 손은 상처이자 동시에 약입니다.

아픔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직접 만지고, 표현하는 행위 그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한 사람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손길일 것입니다.

기술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섬세한지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이 여정이 여러분에게도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소중한 가치들과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 연재가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그런 작은 온기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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