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나와 기술 사이의 질문
이른 아침, 어제와 다른 새로운 햇살을 보았습니다.
나뭇잎이 새 옷을 자랑하듯 행복한 모습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변화를 부추기는 AI관련 기사들에 잠 못 이루던 날에도,
여전히 나무는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햇살에 감사하며.
시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중요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 시선을 다시 나무에 돌리게 된 것은,
김현아 교수님의 강연 영상에서 들은 '죽음의 모호한 경계'라는 말 때문입니다.
"요즘 의사들은 사망진단서에 ‘심정지’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심장이 멎어도 ECMO(체외막 산소공급 장치)가 혈액을 대신 순환시키면, 법적·의학적으로 여전히 생명이 유지된 상태로 보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 유예시키면서, 우리는 ‘언제부터 진짜 죽음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의학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순간, 저는 전자약과 감정 조절 기술, 그리고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정체성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사랑의 마음-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자약(Bioelectronic Medicine)은 뇌에 미세한 전기 신호를 보내 우울, 불안, 통증 같은 감정을 조절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삶을 되돌려주는 기적 같은 기술이지만, 동시에 근원적인 질문을 남깁니다.
"내가 느끼는 이 평온함은 정말 나의 것일까?
아니면 전자약이 만들어낸 조율된 상태일 뿐일까?”
기술 앞에서 감정의 진정성, 즉 ‘이것이 내 감정이다’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통해 로봇 팔을 조종하는 사용자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그냥 기계가 아니라, 내 팔이예요."
기계가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의 경계는 두개골을 넘어 회로와 알고리즘에까지 확장됩니다.
‘자아’는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술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유동적인 네트워크가 됩니다.
전자약이 내면의 감정 상태를 조절하고,
AI가 그 상태에 맞춰 최적의 위로를 건네는 세상.
여기서 우리는 과연 스스로 느끼고 결정하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잘 설계된 감정의 경로에 반응하는 시스템일까요?
이 질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철학적 추상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임상 현장에서 시작된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등장한 ‘AI 정신병’이라는 신조어는,
AI와의 관계에 과도하게 몰입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서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AI 챗봇에게 의지하고,
심지어 결혼식까지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현상은 AI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자약 역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의 감정 회로에 깊숙이 개입합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임상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DBS(뇌심부자극술): 특정 뇌 부위를 자극해 우울증, OCD 완화 (FDA 승인)
VNS(미주신경자극기): 부교감신경 자극을 통해 PTSD/간질 치료
tDCS/TMS: 비침습 자극으로 기억·감정 안정화 (일부 연구 중)
폐쇄루프 전자약: 실시간 감정 신호 감지 후 자동 자극 (연구 단계)
감정은 더 이상 온전히 나의 의지로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조율 가능한 생체 신호가 되었고,
전자약은 그 신호를 다루는 가장 정밀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전자약이 내부에서 감정을 조절한다면,
AI는 외부에서 그 감정을 비추고 위로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점점 “기계에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AI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완벽하게 공감하는 척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감정 없는 대화, 갈등 없는 관계에 익숙해질수록
타인의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려는 공감 능력은 퇴화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불편한 마찰을 동반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바로 그 마찰 속에서 일어납니다.
AI가 제공하는 매끄러운 위로에 의존할수록, 우리는 관계의 어려움을 회피하게 되고
이는 결국 심리적 회복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감정이 기술로 조율되고, 자아가 기계와 연결된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섭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감정은 진정 나의 것인가?”
“기술이 개입한 나를, 온전한 ‘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전자약은 이 모든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기술입니다.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전자약 개발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사진 속 개발자들의 마음에서 사랑을 보았습니다.
크고 웅장한 무언가가 아니라, 미세한 전자파로 아픈 신경을 어루만지는 ‘엄마의 약손’ 같은 기술.
아픈 배를 쓰다듬던 손이 약손이 된 이유는,
오랜 시간 축적된 엄마의 사랑이 담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삶의 희망을 전하는 기술 안에는
그것을 꿈꾸던 과학자들의 마음이 담겼을 것입니다.
전자약의 진정한 역할은 감정을 직접 만들어내기보다
엉키고 지친 신경 회로에 회복의 속삭임을 보내는 데 있을지 모릅니다.
뇌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고 건강한 리듬을 되찾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긍정적 힘입니다.
스스로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되찾게 돕는 것,
저는 이것이 기술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라 믿습니다.
그 기술의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사용하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기술이 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면,
이제 우리 인간은 그 기술에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18회 몸에게 말을 거는 기술, 그리고 우리의 대답,
이 시리즈의 마지막 문을 함께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