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치를 항상 집에서 실을 이용해 엄마가 빼줬고 때론 어금니 같은 경우는 내가 혀로 흔들어서 손으로 빼곤 했었다.
유전이었을까? 새로 난 치아들은 어금니 빼고 하나같이 삐딱 삐딱했고 고르지 않게 났다.
그래서 면 음식을 먹을 때는 윗니와 혀를 사용해 겨우 끊어 먹었다. 지금도 자장면을 먹을 땐 항상 젓가락을 이용해 미리 열십자로 잘라놓고 먹는다.
9살쯤 되었을까.. 엄마를 따라 이모를 만나러 시내를 갔었다.
시내 식당, 엄마와 이모, 그리고 냉면 한 그릇을 먹던 날 일이었다.
세상에 태어 나서 처음으로 먹는 냉면이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냉면대접이 내 앞에 오르자마자 정신없이 젓가락을 들이대고
짜장면 먹듯 한 젓가락 입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냉면이 고기보다 질긴 음식인지 처음 안 때다.
결국, 면발을 끊지 못한 채 고스란히 그릇에 있던 절반이 목구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차가운 면이 끊임없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왔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오더니, 결국 손가락을 목구멍까지 넣어 주르륵 꺼내면서 '왝왝왝' 했다.
식당 안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엄마는 그들을 보고
“야가 와 이라노?” 이 소리와 함께 엄마는 내 머리를 내리쳤다.
당황한 눈동자, 얼어붙은 말투, 차가운 육수보다 더 차가운 표정.
그 순간, 나는 창피했던 게 아니라…
엄마의 그 말과 표정이 더 아팠다.
목구멍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차가운 육수는 몇 방울 눈물로 변해 뚝뚝 떨어 졌다.
나는 배가 너무 고팠던 거고
나는 그냥 숨이 막혔던 거고
면발 몇 가닥조차 끊지 못해 당황한 아이였을 뿐인데...
이후로 서른이 넘던 때까지 냉면을 비롯한 쫄면, 밀면을 먹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번 되지 않았지만 엄마와 식당을 갈 때면 엄마 눈치부터 살피는 트라우마가 생겼었다.
어릴 적 마음은 그렇게 배우지 않아도 될 것들을 너무 일찍 익히곤 한다.
부끄러움, 불안, 차가운 눈빛 같은 것들.
그래서 종종,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조차 나는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것 같다.
이젠 안다. 엄마도 어쩔 줄 몰랐던 거라는 걸.
지금은 그날의 당황함이 미안함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하지만 그걸 어린 나는 몰랐기에,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그래서 가끔은 테이블에 있는 냉면을 조심스레 바라보며 대접 위로 겹쳐진 그날의 기억과 냉면처럼 아주 질기고 투명하게 마음속 무언가와 연결된, 끊기지 않는 모자간의 끈을 떠 올린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내 아내와 성인이 돼버린 내 아이들과 함께 이름난 식당에서 냉면을 먹고 있다.
냉면이 나오면 일부러 내가 일일이 가위로 질긴 면발을 잘라준다.
내 유전자를 온몸으로 물려받은 내 딸이 남동생 몰래 피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