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지는 아이의 성장통

by 종호날다

나에게 학교란 배움의 공간이기보다, 매일 견뎌내야 하는 장소였다.

받아쓰기의 받침 하나가 왜 그렇게 어렵던지, 구구단 6단과 8단은 시커멓고 높은 허들처럼 느껴졌고, 책상에 일어나 국어책을 읽을 때면 손이 덜덜 떨렸다.

친구들 앞에서 글자를 더듬는다는 건 마치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매번 조용히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책 너머 선생님의 어이없다는 표정이 힐긋힐긋 보일 때면 소심했던 아이의 자신감은 더더더 무너지고 주눅 들었다

작은 오차도 허락되지 않던 그 교실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뒤처진 아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책 읽기의 어려움보다도 그 안에 스며든 불공정함이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생긴 불신.

어느 날, 친구 엄마가 담임선생님에게 하얀 봉투를 건네던 모습을 본 날, 뒤로 그 친구가 유독 따뜻한 눈길을 받던 모습은 내 마음속 깊숙이 박혔다. 아직 뭘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불공평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던 순간이었다.

그게 돈인 줄은 한참을 커서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우리 엄마도 그와 같은 하얀 봉투를 드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좋았던 기억들도 있었을 거다. 쉬는 시간의 웃음소리, 소풍날 김밥을 나눠 먹던 풍경.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 건 그런 소소한 즐거움보다, 작고 둔탁한 아픔들이다.

지금도 구구단을 외다 보면 6단과 8단이 헷갈려서 반대로 외곤 한다, 그리고 내가 쓴 글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문장이 툭툭 끊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느림이 나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식이고, 그때의 상처가 지금의 섬세한 마음을 만든 것이라는 걸.

어릴 때의 나는 자주 틀렸지만, 틀렸기 때문에 지금은 더 잘 보고,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