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스티커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진다. 이유는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사치’였고, 동시에 ‘첫 번째 혼쭐’이었기 때문이다.
10살, 어느 명절날, 할머니 댁에서 친척들에게 용돈을 꽤나 많이 받았던 적이 있다.
엄마도 대략 금액을 알고 계셨지만, 그때는 여느 명절 때와 달리 집에 와서도 며칠 동안 용돈에 대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며칠 더 용돈을 가지고 있다가 나는 과감한 결심을 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 늘 가지고 싶었던 스티커를 돈만큼 다 사버린 것이다.
며칠 뒤, 아니나 다를까 사달이 났다. 기억이 나셨던 건지 명절 때 받은 용돈의 행방을 물으셨고, 나는 주춤주춤 하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그날 나는 방문이 안에서 잠긴 채, 방 빗자루가 거꾸로 들린 채로 엄마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기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하… 나는 그 뒤로 얼마간 문방구 앞을 얼씬도 못했다. 멍이 시퍼렇게 들 정도로 두들겨 맞아서일까?
스티커를 사면 맞는다는 트라우마가 생겨, 그리 좋아하던 각양각색 지우개도 여러 모양의 얇은 스티커도 한동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믿기지 않겠지만, 50이 넘은 지금도 스티커를 사다 모은다.
아내의 잔소리를 잠시 들어야 하지만, 내 돈 내산.
옥션에서 차량용 스티커와 캠핑용 스티커를 내 맘대로 사다 모은다.
한 번은 캠핑용 스티커를 십만 원 넘게 구매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너무 좋은 나머지 기다리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 30km 넘게 달려가서 택배를 직접 수령했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스티커가 뭐 그렇게 대단해?”
그렇다. 아주 작고 얇은 조각이다. 하지만 내겐 그것이 금단의 열매였고, 지금은 자유의 상징이다.
혼나도 좋다. 기다리지 못하고 달려가 택배를 받아오는 그 설렘은,
여전히 그때 그 아이가 내 안에 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