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우리는 세 명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세상을 탐험하고 싶었던 트리오.
방학이란 이름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텐트와 배낭을 메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여름이면 산이었고, 계곡이었고, 겨울이면 형 몰래 끌고 나온 팔팔이와 VF의 엔진 소리를 일으키며
어둠을 달렸다.
1987년의 양산은 아직 비포장이 일상인 무공해시절.
주위가 모두 청정지역이었지만 우리는 더 청정지역을 찾아 산으로 계곡으로 다녔다.
빨간 완행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고, 우리도 그 먼지 속에서 조금은 더 깨끗한 공기를 찾아
산으로 들어갔다.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이고, 밥을 해 먹으며 눅눅해진 종이 트럼프카드로 며칠을 살다가
탈진하듯 생거지가 되어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본
아버지의 기가 찬 헛웃음 소리가 아직 귀에 맴돈다.
그 여름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지도가 없어도 우리 마음속엔 시원한 계곡이 있었고 튼튼한 다리는
언제나 가볍게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통도사의 깊은 암자 계곡.
우리는 물장난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딱밤 맞기 종이 카드 판이 슬슬 달아오를 때였고
텐트를 친지 서너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그 순간 텐트의 지퍼가 천천히 열리더니 한 손에 수박을 든 아버지가 얼굴을 쓱 내미시는 거였다.
대낮이었고 우리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세 명 모두가 앉은 채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아버지는 텐트 주위를 10여분 돌아보시고는 근엄한 목소리로 "조심하게 놀다가 내려와~" 그 한마디를 남기고, 허허 웃으며 그는 다시 길을 내려갔다.
단연코 미행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GPS도 없고, 배낭에 발신기도 없던 시절 그 깊은 곳까지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혹여나 아이들끼리 가서 나쁜 짓(음주나 흡연)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아주 멀리 떨어져서 처음부터 미행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52살이 된 지금도 그 삼총사가 만나 옛날 얘기를 할 때면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그때는 몰랐다. 그 미행은, 사랑이라는 걸.
그날의 수박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의 허허 웃음소리는 골전도이어폰처럼 머릿속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