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세운 목표였다.
계획이 아닌 충동, 냉철한 판단보다 오래된 기억에 의존한 도전.
아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위해 바이크로 달려간 113km의 2륜 전용도로 답사는, 그 이름만으로는 짜릿했지만, 실제로는 오르막 50km, 그중 30km는 극심한 경사였다. 터널 두 개는 말 그대로 ‘목숨 건’ 구간이었고, 죽지 않으려면 자전거를 끌며 걷는 수밖에 없는 구간이었다.
출발은 2023년 3월 21일, 오전 10시. 홍천 율전초등학교 앞에서. 아들은 들뜬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고, 나는 ‘괜찮겠지’ 하며 뒤따랐다. 하지만 고작 평지를 30여 분 달렸을 뿐인데, 나는 당황했다. 어쩌면 이러다가 내 허벅지가 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100킬로가 넘게 남았는데…
그 순간, 과거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제대 직후 해운대에서 양양까지 4일간 자전거 여행을 떠났던 그때. 군인 정신이 남아 있었고, 체력은 누구보다도 좋았다.
’ 난 아직 괜찮다’라고 그때의 나를 다시 꺼내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내 안에 없었다.
아들을 위한 도전이라 했지만, 사실은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 체력에 대한 증명이었다.
‘이렇게 늙은 아빠도 하니까 아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생겨도 당연히 할 수 있다’라는 걸 증명해 주기 위함이 더 맞겠다. 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멀찍이 편의점이 보였다. 나는 아들을 소리쳐 불렀다.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허우적대는 손짓까지 하며 여기에 서자고. 캔커피 한 잔으로 미친 듯 뛰던 심장은 이성을 되찾았지만, 바게트처럼 부풀어 오른 허벅지는 안정될 기미가 없었다.
그래도 아들은 신이 난 모양이다.
땀범벅이 되어 죽상을 하고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킥킥대며 웃는다. ‘아빤 이제 늙었어~~ㅋㅋㅋ’
잠깐의 휴식을 뒤로 한채 무거운 허벅지를 겨우 올려 안장에 올라탔다.
살인적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른 채 아들은 또다시 앞서 힘껏 달리고 있다.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는 오를 수 없었다. 밀고 밀고 또 밀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땀이 비 오듯 눈을 찔러도 절대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보이지 않을 만큼 앞서 가버린 아들이 1000 고지 이정표아래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1000 고지 기념사진 찍어야지!” 아들이 브이자를 그리며 페달을 밟았다. 나는 멈춰 선 채 카메라를 들었다.
내리막은 목을 타고 내리는 박하향처럼 시원했고 중력에 이끌려 내려가는 자전거는 마치 새처럼 하늘을 나는 듯했다. 이 시원함이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끝날까 봐 힘껏 달리지 못했다. 페달은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언제 다시 끌고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렇게 다시 오른 또 하나의 1000 고지. 또다시 끌바, 또 한 번 기념샷.
아들은 아빠를 이겨서 좋단다.
아들이 나를 이겨서 나도 좋단다.
조금은 묘한 감정이었다. 서로를 자랑스러워했던 순간이다.
앞서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릴 때부터 아빠랑 엄마가 끼고 살면서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많이 혼내고 주눅 들게 키워서 나약할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분명 아들은 나보다 튼튼했다.
늘 잔소리하는 아빠였지만 대학을 간 후부터는 늘 떨어져 지내니까 가끔 오면 무슨 말이 든
자꾸 말을 걸고 싶고,
같이 밥 먹고 싶고,
어디든 같이 다니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내내 잘해주지 못했던 순간들이 자꾸 떠올라 미안한 생각에 마음속 깊은 곳이 짠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강해진 아들에게 끈질긴 의지와 강한 믿음 같은 게 보여 안심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착하게 자라줘서 고맙고,
학원 한번 보내주지 못했는데 대학도 잘 가줘서 기특하고,
어느새 군대 갈 나이가 되어 이렇게 다 큰 모습을 보여줘서 대견해 보였다.
오는 내내 군대 가면 일러 줄 이야기가 많았지만 잔소리로 들릴까 많은 말을 삼키며
우리는 목적지인 강릉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해는 빠르게 저물어 가고 있었고 터질듯한 허벅지는 이미 시한폭탄이었다. 아마도 나의 느려진 속도와 오는 동안 편의점이란 편의점은 다 들러서 더 늦어진 것 같았다.
목적지 십 수 킬로를 남겨 두고 우리는 결국 용달차를 불러야 했다.
8시간 동안 허벅지가 터지는 경험을 하면서 많이 얘기하고 참 많이 웃었다.
용달 포터에 실려 안목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둑어둑 해지는 늦은 시간이었기에 서둘러 숙소를 잡고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고는 근처 밥집으로 향했다.
식당의자에 앉았을 땐 양쪽 엉덩이의 통증으로 둘이 동시에 나온 신음소리에, 저절로 터져 나온 웃음소리로 식당이 잠시 조용해졌었다. 마주보며 또 한번 웃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은 바닥난 체력의 합의로 애엄마를 불러야 했었다.
그렇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속초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해안 자전거길을 온 가족이 함께 달리고 싶다. 이 작은 나의 소망이 짧은 미래에 이루어지길.
아들아,
살다 보면 누구한테나 힘든 순간이 있다. 몸이 힘들 수 있고 마음이 힘들 수 있고.
그럴 때마다 기억해라.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너희 뒤에서 따뜻한 잔소리와 따뜻한 등을 내어줄 거란 걸.
군대 가면 훈련소에서는 선임이 시키는 대로 부대원들과 잘 어울리며 더 건강한 어른이 되어 돌아오길 아빠가 하루에도 백번씩 천 번씩 기도 할게.
내 아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