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마스네 「베르테르」 후기

2026. 4. 24.

by 세실리아

어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베르테르 Werther》 공연이 있었다.

며칠간 미세먼지로 흐릿하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개어 서초동 우면산 자락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유난히 투명했다. 한강 건너 남산과 북한산의 봉우리가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올 만큼 청명한 날씨였다. 그런 오후에 마주한 오페라는 괴테의 원작이 지닌 고유의 서정성을 무대 위에 차분히 펼쳐 보였다.


이번 프로덕션의 연출은 영화감독 박종원이 맡았다. 영화 연출가다운 감각이 무대 곳곳에서 드러났다. 과한 상징이나 난해한 장치를 앞세우기보다 작품의 시대적 분위기를 고전적인 미감으로 정돈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나무와 집, 소품의 배치는 정밀하게 계산되어 있었고 무대는 단정하면서도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했다. 극의 정서에 충실한 미장센이라는 점에서 완성도 높은 연출이었다.


베르테르 역을 맡은 테너 김요한은 지적이고 풍부한 음색을 지닌 성악가다. 절제된 미성이 인물의 섬세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특히 베르테르의 심리를 발레로 형상화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일부에서는 이 장면이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반대였다. 언어와 음악만으로는 다 담기 어려운 베르테르의 격정적인 내면을 무용이라는 또 다른 예술 언어로 효과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오페라가 '종합예술'임을 상기한다면 이 장면은 이번 프로덕션의 예술적 밀도를 높이는 장치였다.


샤를로테 역의 메조소프라노 카리스 터커는 뛰어난 성악적 역량을 보여주었으나 배역과의 거리감은 다소 남았다. 메조소프라노 특유의 원숙하고 두터운 음색이 젊고 헌신적인 샤를로테의 이미지와 완전히 겹쳐지지는 않았다. 같은 성역이라 해도 음색의 스펙트럼은 넓다. 조금 더 가벼운 톤으로 접근했더라면 인물의 정서가 한층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음악적으로는 프랑스의 작곡가 쥘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 특유의 서정성이 작품 전반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과감한 불협이나 급격한 전조보다는 부드러운 선율과 세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감정의 흐름을 길게 이어간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들려오는 하프의 음색도 인상적이었다. 현악 위에 얹힌 하프의 울림은 음악의 낭만적 정서를 한층 부드럽게 드러냈다.


2막에 이르러 프랑스어 오페라의 우아함이 더욱 선명해졌다. 성악 예술에서는 언어 자체가 이미 음악의 일부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성당을 배경으로 한 장면의 연출도 전체 분위기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이 막에서 김요한의 역량은 더욱 빛을 발했다. 폭발적인 감정을 요구하는 장면에서도 발성은 안정적이었고, 격정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쉽지 않은 배역임에도 인물의 심리적 진폭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흥미로운 점은 '소피'가 등장할 때마다 관현악의 분위기가 확연히 밝아진다는 점이다. 가라앉던 선율이 환해지는 순간들은 단순한 캐릭터 대비를 넘어 음악적 장치처럼 읽힌다. 원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지닌 심리적 무게만큼이나 마스네의 음악 역시 전반적으로 어두운 정서를 품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소피의 등장은 일종의 '환기'처럼 작동한다. 샤를로테나 알베르에게는 맡기기 어려운 음악적 전환을 소피를 통해 풀어낸 선택은 꽤 효과적인 구성으로 보였다.


다만 3막에서는 아쉬움도 남았다. 초반 샤를로테의 아리아는 다소 장황하게 이어지며 극의 흐름을 정체시키는 인상을 주었다. 음악적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장면이 신파극처럼 흐르는 순간도 있었다. 무대 역시 비슷한 인상을 남겼다. 클라비어 한 대가 놓인 방, 자로 잰 듯 가지런히 꽂힌 책장, 정교하게 계산된 영상 전환까지 모든 요소가 지나치게 정확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 완벽함이 오히려 공간을 차갑게 만들었다.


책장의 책들이 조금 헝클어져 있었거나 영상이 보다 우회적인 암시를 던졌다면 어땠을까. 대다수 오페라의 인물들이 비교적 직관적인 감정 - 사랑, 배신, 죽음 등 - 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베르테르는 훨씬 더 내면적이고 복잡하다. 이를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무대는 관객이 상상할 여지를 좁힌다. 예술은 때로 1+1=2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베르테르의 내면을 발레로 표현한 시도는 분명 탁월했다. 다만 그 장면이 후반부에서 샤를로테의 내면을 표현할 때까지 반복되면서 처음의 강렬함이 다소 희석된 느낌은 아쉬웠다. 한 번의 등장이 작품의 백미로 남았더라면 더 인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집으로 내려가는 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공연이 끝나기 십여 분 전 극장을 나와야 했다. 커튼콜을 보지 못한 오페라는 어딘가 미완의 문장처럼 남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베르테르는 스스로 쏜 총상으로 죽음에 이르지만 그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길게 이어진다. 무대 위에서 거의 20분이 넘게 생사를 오가는 베르테르의 고통을 뒤로한 채 객석을 나섰다. 이후에도 그는 아마 몇 분은 죽지 않고 더 버텼을 것이다.


3분짜리 영상도 길다며 30초짜리 쇼츠가 유행하는 시대에 한 인물의 죽음을 30분 가까이 지켜보게 하는 예술은 현대의 대중에게 결코 쉬운 장르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 느린 시간이 주는 묘한 위안이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잠시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밤이었다. 공연 전, 우면산 자락의 맑은 공기 속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대화로 시작된 금요일 오후는 마스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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