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에 대한 단상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Peter Grimes'가 던지는 질문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재판정의 긴장감 속에서 막을 올린다. 어부 피터 그라임스는 견습 소년의 죽음을 둘러싼 심문에서 증거 불충분 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법정을 나서는 그를 기다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서늘한 침묵과 날 선 눈초리다. 판결이 메우지 못한 빈틈에서 의심은 확신으로, 경계는 혐오로 몸집을 불린다. 이 묘한 간극은 20세기 영국 어촌 마을만의 낡은 풍경이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군 한 유명 의사를 둘러싼 논란은, 이 오페라의 무대인 '보로우(Borough)'가 21세기의 디지털 공간으로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관계가 충분히 밝혀지기도 전에 온라인은 이미 심판의 광장이 되었다. 조롱과 멸시가 섞인 언어들이 '정의'라는 허울을 두르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훗날 수사 기관에 의해 일부 혐의가 '무혐의'로 밝혀진 뒤에도 대중이 각인한 인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의심이 확신이 되고, 그 확신이 집단적 광기로 증폭되는 과정은 오페라 속 어촌 마을의 배타성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물론 현실의 사건을 오페라 속 비극과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작품 속 그라임스 역시 결코 무고한 피해자로만 그려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거칠고 고집스러우며 좀처럼 타인과 마음을 통하지 못하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그러나 그의 결함이 공동체의 냉혹한 집단적 단죄를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라임스의 불완전함은 우리에게 더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사실'을 판별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누군가'를 단죄하고 싶은 욕망에 취해 있는가.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Peter Grimes
구성 3막
대본 Montague Slater(George Crabbe의 작품을 바탕으로 함)
초연 1945년 6월 7일, 런던 Sadler's Wells Theatre
배경 영국 동부의 어촌 마을
등장인물
피터 그라임스 Peter Grimes - 어부 / 테너
엘렌 오포드 Ellen Orford - 과부이며 마을의 학교 교사 / 소프라노
아주머니 Auntie - 여관 '보어(The Boar)'의 여주인 / 콘트랄토
조카 Niece - '보어(The Boar)' 여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조카 중 한 명 / 소프라노
발스트로드 Balstrode - 은퇴한 상선 선장 / 바리톤
세들리 부인 Mrs. Sedley - 임대 수입으로 생활하는 과부 / 메조소프라노
스왈로 Swallow - 변호사 / 베이스
밥 볼스 Bob Boles - 어부이자 감리교 신자 / 테너
호레이스 애덤스턴 목사 Rev. Horace Adams / 테너
홉슨 Hobson - 운송업자, 마차로 물건을 나르는 사람 / 베이스
네드 킨 Ned Keene - 약사이자 약장수, 약간의 돌팔이 기질을 지닌 인물 / 바리톤
존 John - 피터 그라임스의 견습 소년 / 무언 역할
줄거리
프롤로그
마을 회관에서 어부 피터 그라임스의 견습 소년이 바다에서 죽은 사건에 대한 심문이 열린다. 변호사 스왈로가 조사를 진행하고, 적대적인 마을 사람들 속에서 그라임스는 폭풍 속에서 물이 떨어져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스왈로는 이를 받아들여 소년의 죽음을 우발적 사고로 판결하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견습생을 두지 말라고 경고한다. 또한 소년을 돌봐 줄 여성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견습생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떠난 뒤, 마을의 교사이자 과부인 엘렌 오포드는 그라임스를 위로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하고, 더 나은 삶을 찾도록 돕겠다고 약속한다.
제1막
바닷가에서 마을 사람들은 다가오는 폭풍을 바라보고 있다. 은퇴한 선장 발스트로드는 폭풍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바다에서 돌아온 그라임스는 배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요청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외면한다. 결국 발스트로드와 약사 네드 킨이 그를 돕는다. 네드 킨은 고아원에서 새로운 견습 소년을 찾았다고 알린다. 마차꾼 홉슨은 소년을 데리러 가기를 꺼리지만, 엘렌이 함께 가겠다고 하자 마침내 수락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라임스를 비난하며 냉소적인 말을 던지고, 엘렌은 그들의 위선을 꾸짖는다. 폭풍이 거세지자 사람들은 흩어지고, 발스트로드는 그라임스에게 이 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라임스는 먼저 돈을 벌어 상점을 열고 엘렌과 결혼하겠다는 꿈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그날 밤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사람들은 '보어(The Boar)' 여관에 모인다. 술에 취한 어부 밥 볼스가 소란을 일으키고 긴장된 분위기가 흐른다. 그때 그라임스가 들어오자 갑자기 방 안이 조용해지고,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마침내 홉슨과 엘렌이 새 견습생 존을 데리고 도착한다. 그라임스는 소년을 데리고 즉시 폭풍 속으로 떠나 자신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제2막
몇 주 뒤, 일요일 아침. 마을 사람들이 교회로 향하는 동안 엘렌은 견습생 존과 함께 부두에 앉아 있다. 그녀는 소년의 목에 멍이 든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라임스가 소년을 데리러 와 다시 바다로 나가려 하자, 엘렌은 노력만으로는 평화를 살 수 없다며 소년을 쉬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라임스는 화를 내며 그녀를 때리고 소년을 데리고 떠난다. 이 장면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며 그라임스를 찾아가기로 결정한다. 오두막에서 그라임스는 소년에게 일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엘렌과 함께할 미래를 꿈꾸지만 동시에 죽은 첫 견습생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듣자 그는 소년을 서둘러 절벽 아래 배가 있는 곳으로 내려보낸다. 그러나 소년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만다. 그라임스는 그곳을 떠나고, 뒤늦게 도착한 마을 사람들은 비어 있고 정돈된 오두막만 발견한다. 일부는 자신들이 그를 오해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발스트로드는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상황의 진실을 짐작한다.
제3막
여름 저녁, 마을 회관에서는 춤이 열리고 여관은 사람들로 붐빈다. 세들리 부인은 그라임스가 소년을 살해했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발스트로드가 그라임스의 배가 돌아왔지만 소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엘렌은 바닷가에서 발견한 소년의 스웨터를 보여준다. 이를 계기로 마을 사람들은 다시 그라임스를 찾기 위한 수색에 나선다. 한편 그라임스는 정신이 무너진 채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엘렌과 발스트로드가 그를 찾아와 위로하려 하지만 그는 거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발스트로드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라고 조언한다.
에필로그
새벽이 밝자 마을 사람들은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멀리 바다에서 배 한 척이 가라앉는 모습이 목격되지만, 마을 사람들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