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나비부인 Madama Butterfly」

G. Puccini(1858-1924, 이탈리아)

by 세실리아

엊저녁, 견진성사 교리 시간이었다. 강의 끝에서 신부님은 한자어 '愛(사랑 애)'자에 담긴 형상을 가만히 짚어주셨다. 늘 곁에 두어 무심했던 글자를 이토록 유심히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손톱(爪)이 마음(心)을 덮고, 그 위에 지붕(冖)이 얹힌 채 천천히 걷는(夊) 모양. 손으로 마음을 움켜쥔 채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모습이라고 했다.


말씀에 여운이 남아 집에 돌아와 한자사전을 찾아보았다. 고대 금문에 보이는 '애' 자는 더 단순했다. 가슴 한가운데 심장을 그려 넣은 형상. 사람이 제 가슴속 심장을 온전히 품고 있는 모습이 시간이 흐르며 손으로 심장을 감싸 안은 소전의 형태로 변했다고 한다. 사랑이란 어쩌면, 제 안의 가장 뜨거운 것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는 일인지도 모른다.

애.jpg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문득, 작년 11월의 어느 아침이 떠오른다. 학과 예술제를 앞두고, 연습실 한쪽에 놓인 3단짜리 합창 단상을 점검하던 중이었다. 설치 방법을 가늠하며 묵직한 철제 구조물을 밀어 보던 순간, 양쪽 손끝이 그 틈에 끼이고 말았다. 짧은 비명이 터졌다. 오른손은 살점이 벗겨진 정도였지만, 왼손 중지는 심각해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더 또렷해졌고, 병원에서 찍은 영상 속에는 손톱 아래 뼈가 반쯤 절단되어 있었다. 당일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도 당황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아픈 감각만이 전부였다. 수술 후 마취가 풀리자 통증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진통제를 찾았다. 다음 날 회진을 온 의사는 말초신경이 모인 부위라 통증이 더 예민한 것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던 손톱 밑의 작은 뼈. 그 작은 부위가 온 신경을 끌어당긴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손톱 밑의 뼈가 으깨지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랑도 이와 닮지 않았을까. 지키고 싶어 덮어 쥔 마음이 다칠 때, 우리는 생각보다 깊이 흔들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와 단둘이 보았던 내 생애 첫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 내내 거의 잠이 든지라 줄거리는 희미하지만, 무대 중앙에 하얀 제복을 입고 서 있던 핑커톤의 잔상만큼은 또렷하다. 그를 기다리다 끝내 삶을 놓아버린 여인, 초초상.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이가 더 많이 아픈 법이다. 그리고 기다림과 헌신은 대개 한쪽의 몫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식을 향해서든, 연인을 향해서든, 소중한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제 손톱 하나쯤은 기꺼이 내어줄 듯이 자신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붙든다. 우리가 초초상을 보며 연민하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 각자의 손끝 어딘가에 저마다의 통증이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페라 나비부인 Madama Butterfly

1900년, 푸치니는 오페라 〈토스카 Tosca〉의 초연 이후 새로운 소재를 찾고 있었다. 그 무렵 런던에서 한 편의 연극을 보게 되는데, 미국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데이비드 벨라스코 David Belasco(1853-1931,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무대에 올린 〈나비부인〉이었다. 이 연극의 원작은 미국 작가 존 루터 롱 John Luther Long의 단편소설로, 푸치니는 공연 직후 오페라 판권 계약을 추진할 만큼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국적 배경 속에서 버림받는 여성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야기와 벨라스코의 무대 감각은 그의 극적 본능을 자극했다. 그는 이 작품을 라 스칼라 La Scala 극장에서의 재기작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작업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03년 2월, 자동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으면서 작곡이 지연되었다. 아내 엘비라와의 갈등 등 개인적으로도 복잡한 가정사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이 작품에 각별한 열정을 쏟았고, 이 오페라는 그의 감성적 기질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응축된 결과물로 탄생했다. 초연은 1904년 2월 17일, 밀라노 스칼라 극장 Teatro alla Scala에서 토스카니니 Arturo Toscanini의 지휘로 열렸다. 그러나 공연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초초상 역을 맡은 소프라노 로지나 스토르키오가 토스카니니와 내연 관계였고, 이에 관객석에서는 야유와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그녀의 배를 봐. 토스카니니의 아이를 가졌어"라는 식의 모욕적 조롱까지 돌았다. 이는 당시 출판사 리코르디의 경쟁사였던 손초뇨 측의 조직적 방해였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깊은 상처를 입은 푸치니는 곧 작품을 개작했다. 2막의 구조를 조정하고 극적 긴장을 다듬었다. 그 결과, 브레시아에서의 재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후〈나비부인〉은 전세계 오페라 극장의 핵심 레퍼토리로 자리 잡는다.


〈나비부인〉은 푸치니 음악의 다양한 색채가 응축된 작품이다. 그는 일본의 민요선율과 5음음계적 색채를 차용해 이국적인 정서를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서정적인 선율 감각을 유지했다. 온음음계와 5음음계의 사용은 오케스트레이션 속에 '동양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19세기 초·중반 유럽을 휩쓴 자포니즘과 맞닿아 있다. 동시에 이러한 음악적 장치는 서구가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오리엔탈리즘)을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의 우화로 읽힌다. 미국 해군 장교 핑커톤은 결혼을 가벼운 유희로 여기지만, 초초상에게는 그녀 삶의 전체였다. 초초라는 이름이 지닌 '나비'라는 뜻처럼, 연약하지만 한 번 불꽃에 뛰어들면 돌아오지 못하는 존재와도 같다. 초초상은 "울새가 둥지를 지을 때 돌아오겠다"라고 약속한 핑커톤을 3년이나 기다리며, 일본인 구혼자들을 거절한다. 2막 아리아 '어떤 갠 날'은 그 집착과 희망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작품에서 나비부인의 분량은 압도적이며, 리릭 소프라노의 섬세한 감정 표현을 극한까지 요구한다. 푸치니는 버림받는 여성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해 온 작곡가다. 부와 명성, 요트와 패션 같은 사치품을 누리던 그의 화려한 삶과 달리,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상처받는 여인의 내면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감성적이되 계산된 오케스트레이션, 세밀한 동기 전개, 극적 타이밍에 대한 본능은 그의 음악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일본의 소프라노 타마키 미우라 Tamaki Miura는 평생 약 2천 회에 걸쳐 나비부인을 노래하며 이 역할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그만큼 이 작품은 한 소프라노의 생애를 관통할 만큼 깊은 정서적 무게를 지닌다.〈나비부인〉은 푸치니의 상처와 집념, 시대의 이국적 취향 그리고 제국주의적 현실이 교차한 자리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Puccini 〈Madama Butterfly〉中 'Un bel di vedremo' / Asmik Grigorian

원작 존 루터 롱 John Luther Long의 단편소설 「Madame Butterfly, 1898」

대본 주제페 자코자 Giuseppe Giacosa, 루이지 일리카 Luigi Illica

초연 1904년 2월 17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언어 이탈리아어

등장인물

초초상(나비부인) – 일본 게이샤, 작품의 주인공 / Soprano

핑커톤(B. F. Pinkerton) – 미 해군 중위 / Tenor

샤플레스(Sharpless) – 나가사키 주재 미국 영사 / Baritone

스즈키(Suzuki) – 초초상의 하녀 / M.Soprano

고로(Goro) – 중매쟁이 / Tenor

케이트(Kate Pinkerton) – 핑커톤의 미국인 아내 / M.Soprano

야마도리 공(Prince Yamadori) – 일본 귀족 / Tenor

돌로레(Dolore) – 초초상의 아이 / Silent role

임페리얼 커미셔너(Commissioner) – 일본 제국 관리 / Bass

본즈(The Bonze) – 초초상의 숙부(승려) / Bass

이모(The Aunt) – 초초상의 친척 / Soprano

호적관(Registrar) – 혼인 담당 관리 / Bass

야쿠시데(Yakusidé) – 초초상의 숙부 / Bass

사촌(The Cousin) – 초초상의 친척 / Soprano

어머니(Mother) – 초초상의 어머니 / M.Soprano

줄거리

#제1막 20세기 초, 일본 나가사키

미 해군 장교 핑커톤은 언덕 위에 자리한 일본식 집을 둘러보고 있다. 중매쟁이 고로가 마련한 이 집에는 하인 셋과 열다섯 살의 게이샤 초초상 - '나비부인'이라 불리는 소녀가 신부로 따라온다. 결혼 계약과 집 임대는 형식상 장기 계약이지만, 사실상 언제든 파기할 수 있는 가벼운 약속이다. 미국 영사 샤플레스는 숨을 고르며 언덕을 올라와 이 결혼이 초초상에게는 삶 전체를 건 일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러나 핑커톤은 이를 하나의 경험쯤으로 여긴다. 세계를 항해하는 동안 각 항구에서 사랑을 누리다가, 언젠가는 '진짜 미국인 아내'와 정식으로 결혼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초초상은 친척들과 함께 도착한다. 몰락한 가문의 딸인 그녀는 생계를 위해 게이샤가 되었고, 이제는 남편의 종교를 따르기 위해 선교사를 찾아갔다고 고백한다. 결혼식은 진행되지만 불청객이 나타난다. 불교 승려인 숙부 본즈가 그녀를 저주하며 조상의 신을 배반했다고 꾸짖는다. 친척들은 충격 속에 떠나고, 초초상은 하루아침에 가족과 단절된다. 황혼이 내려앉고, 상처받은 소녀를 달래는 핑커톤의 말은 달콤하다. 두 사람은 정열적인 이중창 끝에 새로운 집으로 들어간다. 이 밤, 초초상은 자신의 전부를 내어준다.

#제2막 3년 뒤

핑커톤은 돌아오지 않았다. 초초상은 거의 빈손이 된 살림 속에서도 하녀 스즈키와 함께 남편의 귀환을 기다린다. 스즈키는 신들에게 기도하지만, 초초상은 일본의 신들보다 남편의 약속을 믿는다. 그는 "제비가 둥지를 틀 때 돌아오겠다"라고 했다. 일본의 제비는 세 번이나 둥지를 틀었지만, 그녀는 미국의 제비는 다를 것이라 스스로를 설득한다. 샤플레스가 편지를 들고 찾아온다. 핑커톤이 미국에서 재혼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영사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 사이 고로는 부유한 야마도리 공을 새 구혼자로 데려온다. 초초상은 단호히 거절한다. 자신은 미국 법에 따라 여전히 핑커톤의 아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녀는 어린 아들을 보여준다. 아이의 이름은 '슬픔(Sorrow)'.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오면 '기쁨(Joy)'으로 바뀔 것이다. 샤플레스는 더 이상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물러난다. 그때 항구에서 대포 소리가 울린다. 망원경으로 배의 이름을 확인한 초초상은 환희에 휩싸인다. 핑커톤의 배다. 그녀는 스즈키와 함께 집안을 꽃으로 가득 채우고, 아이와 함께 밤새도록 그를 기다린다. 희망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제3막 새벽

기다림에 지친 초초상이 깨어 있다. 그 사이 핑커톤은 샤플레스 그리고 미국인 아내 케이트와 함께 도착한다. 그들은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핑커톤은 뒤늦은 후회에 흔들리지만, 정작 초초상 앞에 설 용기는 없다. 초초상은 침실에서 달려 나와 케이트를 마주한다. 진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녀는 무너진다. 그러나 아이의 장래를 위해 그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단, 핑커톤이 직접 와서 데려가라고 말한다. 모두가 떠난 뒤, 초초상은 아버지가 자결할 때 사용했던 단검을 꺼낸다. 수치 속에 사느니 명예롭게 죽겠다는 선택이다. 아이를 잠시 안아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눈을 가려준 뒤 칼을 찌른다. 그 순간, 뒤늦게 달려온 핑커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의 외침은 끝내 닿지 못한 사랑처럼 허공에 남는다.

목소리의 음색에 따른 분류 ☞

- 레쩨로 leggiero: '가벼운·섬세한·경쾌한'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고음이 밝고, 통상 리릭보다 가볍고 투명한 음색을 지님
ex) 〈피가로의 결혼〉수잔나, 〈세빌리아의 이발사〉로지나
- 리릭 Lirico: 서정적이며 부드러운 음색으로 감정 표현이 섬세하고 인간적인 캐릭터에 적합
ex) 〈라 보엠〉미미, 〈나비부인〉초초상, 〈마술피리〉파미나
- 드라마티코 Drammatico: 풍부한 성량과 관현악을 뚫는 투사력이 있으며, 강한 감정 표현이 특징
ex) 베르디의〈아이다〉, 바그너〈신들의 황혼〉 브륀힐데
- 스핀토 Spinto: 이탈리아어로 '밀어붙인·찌르다'라는 뜻으로 리릭의 서정성과 드라마티코의 극적인 힘을 동시에 갖춘 목소리
ex) 베르디의 〈토스카〉, 〈운명의 힘〉외에 중기 오페라 작품 주역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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