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칼럼 제안으로

삶은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한 오페라

by 세실리아

지지난주,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한 일간지에서 오페라 고정 연재를 제안해 왔다. 몇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두었었다. 습관처럼 글을 끄적여 온 덕에 운 좋게 한 번에 승인을 받았지만, 몇 편의 음악 글을 올린 뒤 계속 방치하고 지냈다. 그러다 다시 브런치를 찾은 건 순전히 오페라를 더 깊이 만나고 싶다는 갈망 때문이었다.

재작년, 102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뵙던 날들이 떠오른다. 요양원 침상 위에서 앙상한 몸으로 누워 계시던 모습. 아들과 손녀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할머니는 그저 배가 고프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차마 그 앞에서 "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는 할 수 없었다. 고통 없이 평안히 가시길 바라는 기도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 뒷모습은 머지않아 마주할 나의 미래이기도 했다. 백 세 시대, 정년 이후의 20년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사진을 배워볼까, 상담사나 관광통역안내사를 준비해 볼까 고민하다가 느닷없이 자격증에 필요한 토익시험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정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사랑해 왔는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 끝에 '음악'이 남았다. 평생 가장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은 전공을 살려보기로 했다. 이미 이 분야는 연주자와 평론가, 강연자로 가득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판이 다를 것 같았다. 교단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노래해 온 경험, 무대와 연습실에서 체득한 감각, 읽고 생각하며 쌓은 언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지닌 사람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노래를 아는 사람이 쓰는 글, 그리고 언어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이 선명해졌다. 틈틈이 책을 사고, 중고 플랫폼에 오페라 감상 모임을 개설하고, 관련 서적을 차근히 읽었다. 그러다 마주한 칼럼 기고 제안. 고료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영상과 숏폼이 넘치는,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 누군가 내 글을 발견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고무적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가장 밀도 높은 행복은 음악과 책 곁에 있었다. 대학원 재학 시절, 신촌과 강남을 오가는 지하철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책을 읽던 시간들. 한 번은 옆 사람에게 커피를 쏟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 어두운 지하에서의 시간은 무엇보다 풍요로웠다. 지금도 나는 마음이 어수선할 때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는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머릿속 소음은 잦아들고 신기하게도 생각이 차분히 정리된다. 읽다 보면 결국 쓰게 된다고 했던가. 편협하고 협소한 독서 수준에 불과하지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열여섯, 성악을 처음 배울 때 숙제로 받은 가곡이 너무 궁금해 집까지 한 시간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던 그 첫사랑의 마음을 담고 싶다. 내 글은 몇 번 못 가다가 지면에서 금방 사라질 수도 있고, 매체의 방향과 맞지 않아 거절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다. 나는 이미 내 주제를 잘 파악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최호섭_세월이 가면(1988)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올해의 마지막 눈일지도 모른다. 문득 떠오른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을 반복해 듣는다. 오페라를 말하다가 뭔 대중가요냐 하겠지만, 좋은 음악에는 사실 경계가 없다. 80·90년대 가요부터 재즈, 오래된 팝송에도 우리네 삶의 희비극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페라가 별 건가. 삶보다 더 치열하고 아름다운 종합예술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삶은,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한 오페라다.

매거진의 이전글오페라 「리골레토 Rigolet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