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Verdi(1813-1901, 이탈리아)
초등학교 운동장이 아직 모래바닥이던 시절이었다.
"야, 마빡!"
체육 시간, 등 뒤에서 남자아이 하나가 나를 가리키며 "마빡"이라고 불렀다. 이마가 넓어야 복이 온다며 훤히 드러내 묶어주시던 엄마의 손길이 무색하게, 나는 자꾸만 머리카락을 앞으로 끌어내렸다. 그 시절의 놀림은 악의 없는 동조나 짓궂은 장난에 가까웠기에, 그 기억은 상처라기보다 시간이 덧칠된 유년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모든 말이 이토록 가볍게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날카로워진다. "장난이었어", "예민하긴", "고작 말 한마디 가지고"와 같은 변명들은 가벼운 농담이라는 방패 뒤로 비겁하게 숨는다. 칼은 피를 흘리게 하지만, 말은 보이지 않는 곳에 흔적을 남긴다. 어린 시절의 별명은 추억이 될 수 있을지언정, 타인을 무너뜨리는 조롱은 결코 장난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영혼에 새겨지는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다. 오늘날 우리는 칼을 들지 않는다. 대신 손끝으로 문장을 남긴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무심코 던진 한 줄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밤거리를 헤매게 하는 저주가 되기도 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인공은 비극의 끝에서 자신이 휘둘렀던 혀의 무게를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되돌려 받는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늘 누구를 향해 어떤 언어를 들고 서 있는가. 그리고 그 언어는 정말로 별 뜻 없이 던진 '무해한 장난'에 불과한가.
〈리골레토〉속 광대는 단순히 웃음을 파는 인물이 아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궁정의 광대(Jester)는 다른 신하들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언어를 허락받았던 인물이었다. 때로는 조롱과 풍자를 통해 권력을 비틀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무기는 '혀'였으며, 때로는 그 말이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고 권력의 위선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왕은 즐긴다」가 보여주듯, 리골레토는 타인의 불행을 비웃으며 권력에 기생하는 인간의 비틀린 모습을 드러낸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통해 외형의 기형보다 더 처참한 '내면의 왜곡'에 시선을 둔다. 리골레토는 공작의 권력 뒤에 숨어 귀족들의 아내와 딸들을 냉소적으로 조롱한다.
Pari siamo! io la lingua, egli ha il pugnale
"우리는 닮았네! 내가 혀를 가졌고, 그는 칼을 가졌으니."
몬테로네를 비웃던 리골레토 앞에 나타난 자객 스파라푸칠레는 상징적인 거울이다. 물리적 살인자인 스파라푸칠레와 말로 상처를 입히는 리골레토 사이의 간극은 그리 멀지 않다. 조롱과 혐오가 일상이 된 오늘날, 혀끝의 폭력은 이제 아이들의 교실 안까지 침입해 서로를 향한 방아쇠가 된다. '친구들이 하니까', '안 하면 소외될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무심코 던진 말은, 칼을 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죄가 될 수 없다. 리골레토가 마주한 비극은 어쩌면 언어라는 무기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서늘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오페라 리골레토 Rigoletto
원작 빅토르 위고 Victor Hugo의「Le roi s'amuse 왕은 즐긴다, 1832」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Francesco Maria Piave
1810년 베네치아의 무라노에서 유리 세공 산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1876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난 대본가, 비평가, 번역가, 무대 기획자. 60편의 오페라 대본을 썼으며, 특히 베르디의 작품을 통해 오페라 대본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에르나니 Ernani》, 《리골레토 Rigoletto,》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시몬 보까네그라》, 《운명의 힘과》 같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을 남겼다. 1851년 3월 11일 가에따노 마레스의 지휘로 이루어진 초연은 대성공을 거둔다. 베르디를 비롯하여 출연진이 대환호를 받으며 특히 3막의 공작의 아리아 'La donna e mobile'는 초연 다음날부터 널리 퍼져 대중들로부터 사랑받게 된다. 이후 금세 이탈리아 전역과 유럽의 유명 오페라 극장 무대를 점령하게 되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부동의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작곡가 주제페 베르디 Giuseppe Verdi
초연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1851
등장인물
Duke of Mantua - 만토바 공작 / Tenor
Rigoletto 리골레토 - 만토바 공작의 광대 / Baritone
Gilda - 리골레토의 딸 / Soprano
Sparafucile 스파라푸칠레 - 청부살인자, 자객 / Bass
Maddalena 막달레나 - 스파라푸칠레의 누이 / M. Soprano
Giovanna 조반나 - 질다의 유모 / M. Soprano
Count Monterone 몬테로네 백작 - 딸의 명예를 더럽힌 공작을 저주하는 귀족 / Baritone
Marullo 마룰로 - 궁정 신하 / Baritone
Matteo Borsa 마테오 보르사 - 공작의 신하 / Tenor
Count Ceprano 체프라노 백작 / Bass
Countess Ceprano 체프라노 백작부인 / M. Soprano
2막 후반에 나오는 리골레토와 질다의 2중창. 템포와 리듬이 빨라지는 전형적인 베르디식 카발레타이다. 앞서 질다는 공작과의 만남과 유혹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 고백을 들은 리골레토는 분노와 모욕감에 휩싸이고, 그 정서가 폭발하며 시작되는 부분이 이 아리아에서 드러난다. '내로남불'도 무슨 이런 내로남불이 다 있을까? 남의 딸이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건 한낮 조롱거리로 만들면서, 가장 소중한 내 딸의 순결만큼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성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근데 음악은 또 너무 명곡인지라...
1막 1장 - 만토바 공작 궁정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나는 만토바 공작의 궁정 무도회장. 귀족 신사와 부인들이 화려한 복장을 하고 춤과 음악 속에 취해 있다. 무도회 한가운데서 만토바 공작은 친구 보르사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최근 마음을 사로잡은 이름 모를 평민 여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당에서 그녀를 본 이후, 매일 밤 그 집 근처를 맴돌지만 그녀의 정체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매번 밤마다 그 집에 한 남자가 드나드는데, 그녀는 그 남자의 정체도 모른다는 것이다. 공작은 여러 귀부인들 사이에서도 특히 체프라노 백작 부인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보르사는 "남편이 들으면 위험하다"고 경고하지만 공작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곧 아리아 'Questa o quella 이 여자건 저 여자건'를 부르며 여인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노래한다. 그에게 사랑은 진지한 헌신이 아니라 순간의 즐거움이다. 오늘 이 여자가 좋으면 내일은 또 다른 여자가 좋을 뿐, 그에게 사랑은 변덕과 자유의 이름으로 포장된 쾌락이다. 이때 체프라노 백작 부인이 등장한다. 그녀를 본 공작은 곧장 다가가 노골적으로 유혹하며 그녀의 손을 잡는다. 부인은 남편을 따라가야 한다며 거절하지만, 공작은 그 손을 놓지 않고 그녀를 이끌며 홀을 나선다. 뒤이어 나타난 리골레토는 그 장면을 비웃으며 체프라노 백작을 조롱한다. "그대 머리 위엔 무슨 생각이 있소, 백작?" 체프라노가 화를 내자 리골레토는 일부러 더 비꼰다. "그럴 만하죠. 부인이 저렇게 고우신데" 궁정 신하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리골레토의 독설은 모두에게 불쾌감을 남긴다. 곧 마룰로가 달려와 흥미로운 소식을 전한다. "리골레토에게 연인이 생겼대!" 모두가 비웃으며 "그 꼽추가 사랑을?" 하고 조롱한다. 무도회장은 웃음으로 들끓는다. 공작이 다시 돌아오자 리골레토는 그와 함께 체프라노를 노골적으로 놀려댄다. 공작이 "체프라노의 부인을 빼앗고 싶다"고 하자, 리골레토는 "지금 당장 납치하십시오"라며 부추긴다. 체프라노는 분노에 치를 떨며 검을 뽑지만, 리골레토는 "그 머리 쓸 데 없으니 베어버리시오"라고 조롱한다. 공작이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모욕당한 체프라노는 신하들을 모아 복수를 맹세한다. "저 광대를 가만두지 않겠다. 내일 밤, 그를 치자" 그러나 그 순간, 무도회의 음악이 멎는다. 몬테로네 백작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등장한 것이다. 그는 공작 앞에 서서 외친다. "공작이여! 내 딸의 명예를 짓밟고도 이토록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분노와 수치에 찬 그의 목소리가 홀 전체를 울린다. 리골레토는 그를 흉내 내며 비웃는다. "딸의 명예라니! 노인의 망상일 뿐이죠" 모두가 폭소를 터뜨린다. 그때 몬테로네는 리골레토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무겁게 외친다. "늙은 사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너, 딸의 불행을 비웃는 뱀 같은 자여, 너도 저주받으리라. 너와 네 주인, 둘 다!" 순간, 리골레토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가 '저주(la maledizione)'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음산한 공포가 그의 마음을 짓누른다. 모든 사람은 몬테로네를 조롱하며 끌어내지만, 리골레토는 더 이상 웃지 못한다. 그의 세계에 처음으로 '공포'가 스며든다. 이 저주는 곧 그의 삶 전체를 뒤흔들 비극의 서막이 된다.
1막 2장
무대는 한밤중, 외딴 골목 끝. 왼편에는 담으로 둘러싸인 리골레토의 집이 있다. 그는 어두운 망토를 두르고 귀가하다가 검을 품은 낯선 남자 스파라푸칠레를 만난다. 스파라푸칠레는 '살인을 업으로 하는 자'로, 리골레토에게 "원수를 제거해주겠다"고 제안한다. 리골레토는 그 냉혹한 제안을 듣고 전율하며 "우리는 닮았다. 그는 칼로, 나는 말로 사람을 죽인다"고 독백한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조롱과 악담으로 사람을 상처 입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 저주의 말이 귓가에 맴돌며 불안에 사로잡힌 리골레토는 집으로 들어간다. 그의 딸 질다는 아버지를 애틋하게 맞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짙은 애정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리골레토의 병적인 보호욕과 두려움이 드러난다. 그는 딸에게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으며,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삶을 강요한다. 질다가 "어머니는 누구냐"고 묻자, 리골레토는 가난하고 추한 자신을 사랑해 준 아내의 죽음을 떠올리며 오열한다. 그의 사랑은 오직 질다 한 사람으로 좁혀져 있으며, 그녀는 그의 유일한 세계다. 리골레토가 나간 뒤 변장한 만토바 공작이 나타난다. 그는 이미 성당에서 질다를 본 적이 있었고,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리골레토의 부재를 기다려온 것이다. 가정교사 조반나의 묵인을 얻은 그는 집 안으로 숨어든다. 질다가 놀라지만, 공작의 달콤한 언변 "나는 가난한 학생 ‘구알티에르 말데’다"에 서서히 마음을 연다. 이들은 순수한 사랑의 언약처럼 보이는 듀엣을 부르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자의 거짓된 가면 아래 이루어진 유혹이다. 리골레토가 떠난 뒤, 궁정의 귀족들(보르사·체프라노·마룰로 등)이 복수와 조롱의 계획을 세우며 나타난다. 그들은 리골레토의 집이 공작의 정부의 집이라 속이고, 리골레토에게 눈을 가리게 한 뒤 자신들의 사다리를 잡게 한다. 그는 자신이 도와주는 줄도 모르고 딸의 납치를 돕게 되는 것이다. 질다는 비명을 지르며 끌려나가고, 리골레토는 눈가리개를 벗은 뒤 땅에 떨어진 딸의 스카프를 발견한다. 그제야 진실을 깨닫고 절규한다. "아! 저주가 이루어졌다!"
2막
무대는 만토바 공작의 궁전 응접실이다. 공작은 불안과 분노에 사로잡혀 홀로 등장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그녀가 내게서 빼앗겼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사랑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 그녀의 집은 텅 비어 있고 행방을 알 수 없다. 공작은 질다를 떠올리며 그녀의 순수한 눈빛이 자신을 한때나마 선한 인간으로 믿게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절규하듯 복수를 맹세하지만, 곧 그 말 속에는 그녀를 잃은 슬픔과 사랑이 얽혀 있다. 이때 마룰로, 보르사, 체프라노 등 궁정 신하들이 급히 들어와 리골레토의 애인을 납치했다고 보고한다. 공작은 놀라 묻는다. "리골레토의 애인이라고? 어디서?" 그들은 리골레토의 집에서 그녀를 데려왔다고 대답하며 자신들이 저지른 장난을 즐겁게 설명한다. 그들의 말이 끝나자 공작은 속으로 번쩍 깨닫는다. 그들이 납치한 여인이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질다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공작은 흥분에 차서 방을 나가며 말한다.
"그녀가 여기 있다면 하늘이 다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사랑의 힘이 나를 부른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알게 될 것이다." 공작이 급히 퇴장한 뒤 리골레토가 들어온다. 그는 겉으로는 태연히 흥얼거리며 농담을 던지지만, 눈빛은 날카롭고 불안하다. 신하들은 그를 조롱하며 태연한 척하지만, 리골레토는 점점 진실을 감지한다. 그는 애써 웃으며 "오늘 밤은 참 고요했지요?"라고 던지며 신하들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손수건을 보고는 불안이 폭발한다. 결국, 그는 신하들이 자신의 집에서 납치한 여인이 바로 자신의 딸 질다임을 알아차린다. 리골레토는 절규한다. "그녀는 내 딸이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다! 그대들은 내 행복을 돈에 팔았구나, 저주받을 자들아!" 그는 문을 부수려 하지만 신하들이 막아서고 결국 절망 속에 무너진다. 그는 오만했던 광대의 가면을 벗고, 한 아버지로서 울부짖는다.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내 딸을 돌려다오. 세상에 나에겐 오직 그 아이뿐이다.." 그의 눈물과 간청에 눌린 신하들은 문을 연다. 질다가 방 안에서 달려나와 아버지 품에 안긴다. 질다는 흐느끼며 말한다. "아버지, 부끄러워요... 저를 용서해주세요" 리골레토는 신하들에게 소리친다. "당장 나가라! 공작이 온다면 내가 여기 있다고 전해라!" 그들은 광대의 절규에 압도되어 물러난다. 둘만 남은 자리에서 질다는 납치된 이후의 일을 아버지에게 고백한다.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한 젊은이가 자신에게 다가와 사랑을 고백했다고 말한다. 그는 가난한 학생이라 했고, 그녀는 순진하게 그를 믿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사실 공작이었다. 그날 밤,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이곳으로 끌려오면서 그녀는 모든 걸 잃었다고 고백한다. 리골레토는 절망에 빠진다. "하나님, 이게 저의 벌이군요. 내 죄로 인해 그 아이가 치욕을 당했구나" 그는 울부짖으며 복수를 맹세한다. 그때 몬테로네 백작이 경호원에게 이끌려 감옥으로 끌려가며 지나간다. 그는 공작의 초상화를 향해 "내 저주는 헛되었구나, 그대는 여전히 행복하겠지"라며 체념한다. 그 모습을 본 리골레토는 이를 악물고 말한다. "아니, 틀렸다. 그대의 원한은 내가 갚아주리라" 그는 공작의 초상 앞에서 외친다. "복수다! 무시무시한 복수! 하늘의 번개처럼 네게 떨어질 것이다!" 그의 외침은 인간의 분노이자 절망의 기도처럼 울려 퍼진다. 질다는 그런 아버지를 붙잡고 애원한다. "용서해 주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자비를 베푸실 거예요" 그러나 리골레토는 오직 복수를 향해 달려간다.
3막
무대는 만토바 근처, 민치오 강가의 낡은 여관 앞이다. 밤이 깊고 하늘에는 폭풍의 기운이 감돈다. 리골레토와 질다는 여관 바깥에서 숨어 있고, 안에서는 자객 스파라푸칠레가 술을 마시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리골레토는 질다에게 공작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아직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딸에게 그는 "네가 본다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라며 벽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순간, 평범한 군복 차림의 공작이 여관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여관 주인 스파라푸칠레에게 방과 술을 요구한 뒤, 유명한 아리아 '여자는 변덕스러워 La donna è mobile'를 부르며 가벼운 유희를 즐긴다. 곧 그의 연인 막달레나(스파라푸칠레의 여동생)이 나타나고, 공작은 능청스럽게 그녀를 유혹하며 희롱한다. 밖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질다는 충격과 절망에 빠진다. 공작의 사랑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리골레토는 복수를 다짐하며 딸에게 곧 집으로 돌아가 남장 차림으로 베로나로 피신하라고 지시한다. 질다는 눈물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리골레토는 여관 안으로 들어가 스파라푸칠레에게 공작을 죽이라는 청부를 맡긴다. 보수는 금화 스무 닢. 둘은 자정에 일을 마치기로 약속한다. 곧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고, 공작은 막달레나의 유혹에 머물기로 한다. 스파라푸칠레는 방을 내주고, 공작은 아무 의심 없이 잠이 든다. 그러나 막달레나의 마음은 흔들린다. 그녀는 잠든 공작을 보며 "이 젊은이는 죄가 있지만 너무 아름답다"며 그를 살려달라고 오빠에게 애원한다. 스파라푸칠레는 냉정히 말한다. "자정까지 누군가 찾아오면 그 자를 대신 죽이겠다." 이 말은 곧 질다의 운명을 부른다. 남장 차림으로 돌아온 질다는, 폭풍 속에서 여관 안의 대화를 엿듣는다. 막달레나가 공작을 구하려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그녀는 스스로 그를 대신해 죽기로 결심한다. "그가 죄를 지었어도 나는 그를 사랑했어요" 그녀는 문을 두드리며 거지로 위장해 하룻밤만 재워달라 청하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스파라푸칠레의 칼에 찔린다. 잠시 뒤 리골레토가 돌아와 시체가 든 자루를 인도받는다. 그는 스파라푸칠레에게 대금을 건네고 홀로 시체를 강물에 버리려 한다. 그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노래 공작의 목소리, 바로 '여자는 변덕스러워'가 울려 퍼진다. 리골레토는 혼란에 빠져 자루를 열어본다. 안에는 공작이 아니라 피투성이의 질다가 누워 있다. "나야, 아버지.." 질다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아버지의 용서를 구한다. "그를 용서해주세요. 하늘에서 어머니 곁에서 기도할게요.." 리골레토는 절규한다. "신이여! 나의 복수가 내 딸을 죽였단 말인가!" 그는 무너져 내리며 저 멀리 들려오는 저주의 메아리를 외친다. "아, 저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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